‘야권 단일화’ 넘어야 할 산들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10.03.09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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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이종현


정국이 빠르게 지방선거 국면으로 옮겨가고 있다. 공직자 사퇴 시한이 지난 것을 계기로 출마자들의 윤곽이 드러나는 가운데 민주당·민주노동당·창조한국당·진보신당·국민참여당 등 야 5당이 후보 단일화 논의에 물꼬를 터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 흐름은 앞으로도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크다. 일부 지방에서 이미 단일화 논의가 무르익고 있는 데다 국민참여당의 유시민 전 장관이 서울시장 선거 불출마를 밝힌 것도 유리한 국면을 조성했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야권의 ‘반MB 연합전선’ 구축을 낙관하기에는 이르다. 암초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런 난관을 뚫고 야권 단일화는 과연 성공할 것인가.

 

지방선거 판도가 요동치고 있다. 선거를 90일 앞두고 정치권에 지진이 일고 있다. 여야 거물 출마자들의 면면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미 현장에서는 선거 운동이 한창이다. 거리에서, 음식점에서 출마를 노리는 이들을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신경전도 치열하다. ‘성희롱 공방’ ‘부정 축재설’ ‘해바라기설’ ‘낙하산설’ 등 상대 후보를 둘러싼 흑색 선전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야권의 단일화 논의가 빨라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09년 7월 야 4당 대표들이 모여 현안을 논의하는 모습. ⓒ시사저널 이종현

 

6·2 지방선거는 현 정권을 중간 평가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 의도와 관계없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전초전이기도 하다. 미래를 내다보는 정치권의 각 주체들이 몸풀기를 하는 장이다. 몸을 제대로 풀지 않고 경기장에 올라가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치는 선거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모두가 사활을 걸고 뛰고 있다.

현 단계에서 지방선거를 둘러싼 최대 관심사는 야권의 이른바 ‘반MB 단일화’가 현실화할 것인지이다. 지금까지는 순항하는 듯이 보인다. 최소한 겉으로는 그렇다. 민주당·민주노동당·창조한 국당·진보신당·국민참여당 등 야 5당은 지난 3월4일 국회에서 “구체적 방안을 포함한 연합에 관한 협상을 3월15일까지 완료하기로 했다”라고 발표했다. 광역 및 기초단체장의 경우, 정당 지지율과 유력 후보 유무 등을 고려해 5당이 합의하는 지역들에 대한 후보를 정하고, 합의하지 못한 지역들에 대해서는 5당이 합의하는 경쟁 방식을 통해 후보를 정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단일화 논의에는 ‘희망과 대안’ 등 네 개 시민사회단체의 연석회의도 참여하고 있다.

“산에 오르는 것으로 치면 7부 능선까지 온 셈”

야권에서는 진작부터 물밑에서 후보 단일화 논의를 진행해왔다. 여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력한 후보가 없고, 정당 지지도 등에서도 뒤처지는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힘을 합치는 것밖에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4월 경기도교육감 선거가 야권에 던진 교훈이 컸다. 당시 야권은 김상곤 한신대 교수를 단일 후보로 내세워 당시 교육감이던 김진춘 후보를 7만여 표 차이로 물리쳤다. 위력을 확인한 야권의 ‘단일화 본능’은 이때부터 본격 작동했다.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지지부진했던 논의는 최근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현장에서의 흐름이 영향을 미쳤다. 경남 울산과 거제, 강원도 강릉 등 경향 각지에서 단일화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일부는 이미 틀을 잡은 곳도 있다. 국민참여당의 당원인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이 서울시장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도 영향이 컸다. ‘한명숙 서울시장, 유시민 경기도지사’ 후보 출마가 현실화한다면 야권으로서는 최강의 구도를 갖추는 셈이기 때문에 논의가 일거에 달아올랐다. 여권의 한 전략가는 “김문수-유시민 대결은 여권으로서는 위험한 구도이다. 유 전 장관이 단일 후보가 되면 많은 것을 결집시킬 수 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한 소식통은 “야권은 사분오열된 모습으로는 다 잡은 고기를 놓칠 수 있다는 절박감을 갖고 있다. 밑바닥에 반MB 정서가 팽배해 있다고 보고, 이것을 잘 끌어모으면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단일화 논의에 참여하고 있는 ‘희망과 대안’ 공동운영위원장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백승헌 회장은 지난 3월5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산에 오르는 것으로 비유하자면 7부 능선까지는 온 셈이다”라고 표현했다. 현실적으로 ‘단일화’를 이룰 수 있다고 전망하는 분위기이다. 유시민 전 장관도 불교방송에 출연해 “단일화한다는 마음 자세를 갖고 있으면 복잡해 질 것이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야권의 단일화 논의를 낙관하기에는 암초가 너무 많다고 지적하는 이들이 더 많다. 넘어야 할 고개가 한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선 어떻게 합의에 이를 것인가, 또 경쟁을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가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질 수 있다. ‘유력 후보’나 ‘정당 지지율’을 어떻게, 어디에 적용하느냐도 합의하기가 쉽지 않은 문제이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CBS라디오에 출연해 “사실은 넘어야 할 산이 많다”라고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단일화’는 상당한 반대급부가 있지 않는 이상 정당의 존립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당원들에게 다른 당 후보를 찍으라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총선과 대선까지 내다보아야 하는 입장에서 정당이 후보를 내지 않는 것은 넘쳐나는 출마자들을 어떻게 다독일 것인가를 넘어서는 생존의 문제이다. 진보신당의 한 관계자는 “진보신당의 경우 서울·경기에서 후보를 안 낸다는 데에는 당의 존립 문제가 걸려 있다. 일정한 지지율을 획득해야 다음 총선을 기약할 수 있다. 실제로 단일화를 이루어내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노회찬 서울시장, 심상정 경기도지사 카드’를 접기 어렵다는 것이다. 제1 야당인 민주당도 경기도에서 후보를 내지 않는 상황이 되면 내홍이 일 가능성이 있다. 경기도지사를 노리는 김진표 민주당의원의 한 측근은 “8층 건물 전체를 임대해 뛰고 있다. 조직도 다 갖추었다. (유 전 장관이 온다고 해도) 정면으로 돌파하자는 분위기이다”라고 전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실질적인 측면에 주목했다. “단일화를 하게 되면 찍어야 하는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의 번호가 달라진다. 홍보를 하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단일화 논의를 하는 과정 자체가 선거 운동을 하는 측면에서 효과가 크다. 나쁠 것은 없다”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강한 비판을 받기는 했지만 지난 2월24일 정동영 의원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선거용 전술 정당’을 만들어 번호를 통일시켜 지방선거에 임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던 것은 야권의 이런 고민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방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분수령은 결국 수도권의 성적이다. 정가에서는 야권이 그리는 최상의 조합이 ‘서울-한명숙, 경기-유시민, 인천-송영길’ 단일 후보라는 말이 나온다. 곽영욱 전 대한통운사장으로부터 5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기소된 야권의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 한명숙 전 총리는 4월9일 1심 선고가 예정되어 있다. 선거는 두 달 넘게 남아 있다. ‘단일 후보’로 가는 길에는 아직 변수가많다.

 

민주당을 대표해 협상을 진행 중인 윤호중 수석 사무부총장은 “지금까지 논의를 진행하면서 각 당이 서로의 입장을 잘 이해하게 되었다. 큰 어려움 없이 충분히 단일 후보가 가능하다”라고 밝혔다.

유권자의 의사가 반영되는 연합 방식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유권자들의 지지를 많이 받는, 당선 가능성이 큰 후보로 결정하겠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정치 협상을 통해 합의를 이루지 못한 지역은 경쟁 방식으로 뽑겠다고 했는데.

선거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유권자들의 뜻을 확인할 수 있는 방식으로 결정할 것이다. 물론 여론조사 방식일 수도 있다.

특정 정당의 독점 배제 원칙을 세웠는데, 민주당이 기득권을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

호남의 특수성이 있어서 최대한 노력을 하자고 합의한 것이다. 이를테면 4인 선거구를 2인 선거구로 분할한 지역의 경우, 선거 연합을 위한 전략 지역구로 선정하겠다는 방침이다.

각 당의 입장이 상충할 경우에는 어떻게 하나?

합의가 되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에 경쟁 방식을 수용하면 된다.

시민사회단체의 역할은 무엇이며, 직접 후보를 추천할 경우 어떻게 되나?

시민사회단체는 일종의 중재자 내지는 촉진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좋은 후보가 있다면 얼마든지 제안할 수 있다. 물론 합의는 정당이 하는 것인 만큼 5당이 합의를 해야 한다.

3월15일까지 협상이 완료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그 기간 내에 가능하리라고 본다.

공동 정책은 어떻게 추진하나?

일자리, 교육, 환경 등에서 광범위하게 공동 공약 형태로 나올 것이다.

후보 단일화가 이번 선거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는가?

수도권에서는 야권이 연합하면 거의 모든 지역에서 한나라당 후보를 앞서거나 오차 범위 내로 추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영남의 경우에도 민노당이 강세인 지역이 있고, 무소속 후보가 강세인 지역이 있어서 충분히 당선자를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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