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빈손’의 맑고 향기로운 회귀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10.03.16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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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무소유의 삶을 살아온 법정 스님이 지난 3월11일 완전한 무소유의 세계로 돌아갔다. 이 세상에 올 때와 같이 떠날 때도 빈손이었다. 언젠가 한 번은 돌아갈 길, 육신마저 버리고 홀홀히 떠났다. 법정 스님은 입적하기 전날 밤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해달라”라고 당부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라는 무소유의 지혜를 일깨워 주었다. 장례는 간소하게 치러졌다. 법정 스님은 평소 “관과 수의를 따로 마련하지 말고, 평소의 승복을 입은 상태로 다비해 달라”라고 했다.

ⓒ사진 이종현·유장훈 기자

그리고  “사리를 찾으려고 하지도 말고 탑도 세우지 마라”라고 했다. 이 모든 것이 번거롭고 부질없으니 괜한 수고를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우리 곁을 떠나는 법정 스님의 모습은 청빈과 끊임없는 수행으로 일관한 생전과 마찬가지로 맑고 향기로웠다.

ⓒ사진 제공 조세현
1932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난 법정 스님은 전남대 상과대학 3학년을 수료한 뒤 진리의 길을 찾아나섰다. 통영 미래사에서 효봉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후 불교계 언론과 출판 분야에서 날카로운 필력을 선보였다. 1970년 초반 대한불교신문(현 불교신문) 논설위원과 주필을 맡았고, 1972년 첫 에세이집 <영혼의 모음>을 출간해 화제를 모았다. 군사 정권이던 당시 스님은 장준하·함석헌 등과 함께 민주수호국민협의회를 결성해 유신 철폐·개헌 서명운동에 참여했다.

독재 정권에 맞서는 민주화운동을 했던 스님이 1975년 서울을 등지고 송광사로 돌아간 계기는 그해에 있은 인혁당 재건위원회 사건을 지켜보면서였다. 정치 조작을 통해 무고한 생명을 빼앗는 정권의 만행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후 법정 스님은 불일암 토굴로 들어가 수행에 전념했다. 이 무렵 발간된 저서가 오늘날까지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무소유>이다. 법정 스님이 다시 세속 일에 관여하게 된 것은 1993년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 준비 모임을 준비하면서부터였다. 전국을 돌며 대중 강연을 통해 뜻을 같이하는 회원들을 이끌어왔고, 1997년에는 도량인 길상사를 개원했다. 하지만 이후 최근까지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 은둔하며 청빈과 수행을 실천했다.

법정 스님은 이웃 종교와의 벽을 허문 큰 어른이었다. 길상사의 관음보살상 제작을 천주교 신자인 최종태 전 서울대 교수에게 맡겨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수환 추기경과의 인연도 남달랐다. 김추기경이 길상사 개원 법회에 참석해 축사를 하자, 법정 스님은 이듬해 명동성당에서 특별 강론을 했다. 지난해 김추기경이 선종하자 법정 스님은 “가슴이 먹먹하고 망연자실해졌다”라고 안타까움을 나타내면서 “위대한 존재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말로 추모했다.

또 한 명의 ‘위대한 존재’가 우리 곁을 떠나 온 국민의 가슴이 먹먹하지만, 법정 스님이 남긴 무소유의 가르침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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