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 고래 ‘똥’으로 막을 수 있다
  • 김형자 | 과학 칼럼니스트 ()
  • 승인 2010.06.08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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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해양 생물학자 스티븐 니콜 박사 주장 “엄청난 양의 철 포함… 플랑크톤 성장 도움”

보통 사람이라면 냄새만 맡고도 십리 밖으로 도망갈 고래의 대변을 찾아 망망대해를 헤매는 사람들이 있다. ‘고래 배설물 연구원’들이다. 이들이 배설물에 집착하는 것은 고래를 직접 잡지 않아도 이것을 통해 고래의 유전적 특징을 비롯해 생물 독소치 측정 등 놀라울 만큼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호주의 해양 생물학자 스티븐 니콜 박사도 그중 한 명이다. 남극 환경 관련 정부 산하 연구기관(Australian Antarctic Division) 소속인 그는 최근 <어류와 어업> 저널에 고래의 배설물에 관한 놀라운 내용을 발표했다. 고래의 ‘변’이 뜨거운 지구를 식히는 지구온난화를 막는 데 일조한다는 것이다. 고래의 배설물이 지구온난화를 막아준다니, 대체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일까.

ⓒhoneypapa@naver.com

■ 수염고래는 ‘철’의 보물창고

니콜 박사가 주장하는 이론의 핵심은 고래의 배설물 속 철에 있다. 니콜 박사팀은 연구를 통해 고래의 변 속에 철이 상당히 많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들이 연구한 대상은 남극 바다에 사는 네 종의 수염고래류 27마리이다. 이들의 변을 각각 채취해 분석한 후 똑같은 양의 바닷물과 비교해보니 고래 쪽에 1천배쯤 많은 철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렇게 엄청난 양의 철이 고래 배설물에 있다는 것은 처음 알려진 사실이다. 이전까지는 누구도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렇다면 철은 또 지구온난화와 어떤 연관성이 있다는 말일까.

철은 바다의 식물성 플랑크톤이 성장하는 데 꼭 필요한 성분이다. 플랑크톤은 식물처럼 광합성을 통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포획하게 된다. 영양분이 아무리 충분할지라도 철이 부족해 플랑크톤이 많이 자라지 못하면 바다는 ‘사막’으로 변한다. 이러한 사실은 1930년대 영국의 생물학자 조셉 하트의 연구로 이미 밝혀졌는데, 바닷속 플랑크톤이 자라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철 결핍에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식물성 플랑크톤이 성장하려면 철 성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얘기이다.

그런데 대체적으로 바다에는 철 성분이 늘 부족하다. 따라서 바다에 부족한 철가루를 인공적으로 뿌려 식물성 플랑크톤을 대량 증식할 수 있다면, 이들이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지구온난화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이렇게 이산화탄소를 몸에 가둔 식물성 플랑크톤은 동물성 플랑크톤의 먹이가 되고 이들은 다시 어류 등 바다 생물의 먹이가 되면서 플랑크톤 속 이산화탄소는 자연스럽게 바다 생물로 옮겨가게 된다. 바다 생물들의 몸이 이산화탄소 저장고가 되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이산화탄소가 호흡을 통해 다시 방출되지만, 대부분이 배설물이나 생물 잔해의 형태로 심해저에 가라앉아 수백 년간 저장된다.

■ 이산화탄소 흡수하는 철을 바다에 뿌리는 방법

바다에 철만 뿌리면 되는 이 간단한 방법은 그래서 지구온난화의 해결책으로 일찍부터 주목되었다. 지난 1988년 미국 우즈홀 해양학연구소에서 열린 환경 심포지엄에서 발표자로 나선 모스랜딩 해양연구소의 존 마틴 소장은 “유조선 반 척분의 철가루만 있다면 온난화로 고통받는 지구를 빙하 시대로 되돌릴 수도 있다”라고 주장했다. 지구온난화와 철가루의 상관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당시 그의 발언은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저명한 해양학자인 마틴 소장의 주장은 당시에도 상당한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하고 있었다. 지구 생태계의 구성물 중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흡수·저장하고 있는 생명체가 바로 식물이라는 점, 그리고 육지의 식물성 못지않게 풍부한 바다의 식물성 플랑크톤이 성장하려면 질소나 인과 같은 영양소에 더해 철 성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철이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는 사실은 화산 폭발로도 확인되었다. 1991년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 폭발로 철 먼지 4만톤 정도가 전세계 바다에 떨어진 적이 있었다. 당시 환경과학자 앤드루 왓슨 박사가 철 먼지로 인한 변화를 분석한 결과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양이 떨어지고 산소의 수치가 확 올라간 것으로 나타났다.

마틴 소장은 1993년 사망하기까지 ‘철가루로 지구온난화를 막을 수 있다’는 자신의 이론을 입증할 기회를 잡지 못했다. 역사에 묻힐 뻔했던 이 혁명적 주장이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은 2007년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환경 기업 플랑크토스가 탄소배출권을 확보하기 위해 이 이론을 입증하는 데 나서면서였다. 실제 이 회사는 바다에 총 여섯 차례 철가루를 살포해 플랑크톤의 변화를 추적해왔다. 이 회사 말고도 플랑크톤을 늘리기 위해 바다에 철가루를 살포한 실험은 세계적으로 모두 12건이나 있었다.

■ 수염고래 개체 수 늘리는 일, 이산화탄소 포획의 한 축

그동안의 철가루 살포 실험에서 나타난 철가루와 플랑크톤과의 상관관계는 확실했다. 갈라파고스 제도 인근 해역처럼 질소나 인 등이 풍부한 해역에 황산철을 뿌리자 1주일 만에 식물성 플랑크톤의 양이 세 배, 번식력은 네 배로 늘어났다. 또, 바다 표면 위 공기층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줄어드는 놀라운 결과를 얻었다. 지난해 독일·인도·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칠레 등의 과학자들이 모여 남극해에 철가루를 뿌린 ‘로하펙스 프로젝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3백㎢의 바다에 6톤의 철가루를 뿌린 결과, 해조류 등 식물성 플랑크톤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철가루 효과가 입증된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생태계 무해성이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바다에 인공적으로 철가루를 뿌리는 것은 옳지 않다’라는 환경론자들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바다에 인공적으로 투입한 철가루가 플랑크톤의 성장을 촉진시키는 것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생물의 신경계를 손상시키는 독성 물질도 증가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철가루 살포 실험이 난관에 부딪히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고래 수를 늘리면 바다에 인공적이 아닌 자연산 철분을 투입할 수 있다는 니콜 박사팀의 연구 결과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번에 니콜 박사팀은 고래잡이가 허용되면서부터 바닷물의 철분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이전 고래 수가 많았을 때는 남대서양 바닷물의 철분 중 12%가 수염고래의 변에서 방출되었다는 것이 니콜 박사의 설명이다. 결국, 고래잡이로 고래의 수가 줄어들면서 바다의 이산화탄소 포획 능력까지 감소시킨 셈이다.

이제 수염고래의 개체 수를 늘려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좀 더 많이 바다에 가둘 일만 남았다. 그야말로 친환경적 지구온난화 방지책이다. 고래의 자연적 철분 방출이 ‘이산화탄소 포획의 한 축’을 이룰 날을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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