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만호 사건’ 수사 호재냐, 악재냐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0.06.29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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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7·28 재·보선 앞두고 검찰과 한명숙 제2 라운드 대결에 주목

 

▲ 지난 4월1일 한명숙 전 총리가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뇌물수수 혐의’ 재판에 참석하러 법정으로 가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검찰과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정면 대결이 또 한 차례 정치권에 파란을 몰고올 전망이다. ‘불법 정치 자금 수수’ 의혹 사건을 놓고 양측은 이제 제2 라운드 공방에 들어갔다. 한 전 총리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뇌물 5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검찰과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지난 4월9일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1라운드에서는 검찰이 완패했다.

검찰은 곽영욱 사건 1심 판결이 나기 하루 전날 새 카드를 빼들었다. 한 전 총리가 2007년 한만호 전 한신건영 사장(수감 중)으로부터 불법 정치 자금 9억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한 전 총리측은 “사실 무근이다”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6·2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이어서 청와대 내에서도 ‘수사 신중론’과 ‘강행론’이 팽팽히 맞섰다. 결국, 검찰은 ‘한만호 사건’에 대한 ‘공개’ 수사를 지방선거 이후로 연기했다.

그렇게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한만호 사건’이 지방선거가 끝나자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한 전 사장이 한 전 총리측에 건넨 9억원 가운데 수표 1억원을 한 전 총리의 동생이 전세금으로 썼다는 것이다. 또, 3억원이 한 전 총리의 집사 역할을 맡고 있는 최측근 김 아무개씨에게 건네졌고, 김씨 또한 변호인을 통해 이를 시인했다는 것이다.  

지금 검찰 수사팀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곽영욱 사건의 경우, 곽씨 진술에만 의존한 측면이 컸다. 하지만 ‘한만호 사건’은 관련자들의 진술뿐 아니라 회사 자금이 인출된 시점과 달러로 환전한 시점 등이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전달했다는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라고 말했다. “한 전 총리의 혐의를 입증할, 아직 공개되지 않은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라는 말도 검찰청사 담장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또다시’ 검찰의 부실·표적 수사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검찰의 또 다른 관계자는 “수사팀에서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지만 ‘검찰이 무리수를 두고 있다’라는 지적도 있다. 한 예로, 한 전 총리의 동생이 전세금으로 썼다는 수표 1억원에 아무런 ‘이서(裏書)’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 전 총리나 동생 등이 이서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증거 능력이 떨어진다. 검찰이 궁지에 몰릴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2007년 발행된 ‘한 전 사장의 수표 1억원’이 자칫 검찰의 자충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 전 총리는 검찰의 소환장을 받았지만, 6월25일 출석하지 않았다. 대신 “부당한 정치 수사에는 응하지 않겠다”라는 일관된 입장을 되풀이해 밝혔다. 이에 검찰은 한 전 총리의 집사 역할을 하고 있는 김씨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김씨는 3억원과 한 전 총리의 무관함을 주장하고 있어 검찰 수사가 녹록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 김준규 검찰총장이 6월11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스폰서 검사’ 파문과 관련해 전국 검사 1천7백여명과 화상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은 자신감 보이지만 “1억짜리 수표의 증거 능력 없다” 우려도

‘한만호 사건’은 ‘단순 사건’이 아니다. 정치권과 검찰의 역학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우선 수사 시점이 ‘미니 총선’으로 불리는 7·28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한나라당이 지방선거에서 참패하면서 정국 주도권이 민주당으로 넘어갔다. 그래서 이번 수사가 정권 차원의 수세적인 국면을 반전시키기 위한 ‘고도의 전술’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이 “한명숙 수사는 지방선거 패배에 대한 보복이다”라고 반발하는 것도 이를 의식한 행보이다.

검찰이 한 전 총리가 옴짝달싹하지 못할 정도로 혐의를 입증한다면 한나라당은 재·보선 국면에서 새로운 ‘호재’를 얻게 되는 셈이다. 반면, 한 전 총리를 적극 비호해왔던 민주당으로서는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곽영욱 사건’에 이어 이번에도 검찰의 부실 수사로 분위기가 흐를 경우, 검찰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할 것이다. 한나라당에도 큰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구도이다. 정치권이 이 사건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시련의 계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검찰이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지난 4월 말 터진 ‘스폰서 검사’ 사건으로 검찰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었다. 외부 인사로 구성된 진상규명위원회가 꾸려졌고, 정치권을 비롯해 각계에서 강도 높은 검찰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무총리실 산하에 ‘범정부 차원의 검·경 개혁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라고 지시했다. 검찰은 6월11일 무소불위 권력의 원인이었던 기소 독점권을 시민들에게 맡기는 ‘기소 배심원제’ 도입 등 자체 개혁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대검 감찰부장에 외부 인사를 충원하겠다는 등 과거에 내놓았던 개혁안들이 무용지물로 전락했던 사례가 적지 않다. “이번 개혁안도 위기 모면용 처방전이 아니냐”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다. ‘스폰서 검사’ 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도 부실하게 끝났고 ‘공’은 결국 정치권으로 넘어갔다. 국회 법사위원회는 6월22일 ‘스폰서 검사’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특별검사 법안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다. 검찰 입장에서는 잊고 싶었던 ‘악몽’이 되살아날 수밖에 없는 판이 짜여지는 것이다.

검찰로서는 수세적 국면을 반전시킬 카드가 필요한 셈이다. 그래서 ‘한만호 사건’ 수사가 중요하다. 특히 야권의 거물 정치인인 한 전 총리가 연루된 ‘곽영욱 사건’에 이어 ‘한만호 사건’은 지난해 8월 취임한 김준규 검찰총장의 ‘첫 작품’이나 진배없다. 김총장의 명운이 달린 사건인 셈이다.

이런 가운데 김총장 체제에서 처음으로 대규모 간부급 인사를 단행할 예정이어서 주목된다. 오는 7월3일쯤에는 검사장급, 7월 중순쯤에는 부·과장 등 중간 간부급 인사가 단행될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간부 인사가 마무리된 다음 진행될 검찰의 수사 방향이 예사로워 보이지 않는다. 법무 당국의 한 관계자는 “검찰 간부 인사에는 대체로 청와대의 의중이 많이 실려 있는 것으로 안다. 인사가 마무리되면 공직자에 대한 강도 높은 사정 수사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분명한 것은 ‘스폰서 검사’ 특검 등으로 ‘수세’에 몰린 검찰이 ‘공세’에 나설 것이라는 점이다. ‘한만호 사건’도 반전을 꾀하는 검찰의 야심작 가운데 하나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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