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2중대를 찍을 수 있나”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0.09.13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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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정동영 의원 인터뷰 / “손학규·정세균 내세워 정권 잡을 수 있는지 솔직해져야”

모처럼 민주당에 활기가 돌고 있다. 제1 야당을 새롭게 이끌어갈 ‘선장’은 곧 야권의 ‘대권 구도’와 직결된다. 때문에 차기 민주당 지도부(대표 1명, 최고위원 5명)를 선출하는 10월3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잠룡’들의 각축전이 치열하다. 정동영 의원과 손학규 상임고문, 정세균 전 대표 등 이른바 ‘빅3’의 헤게모니 쟁탈전이 갈수록 뜨거워지면서 ‘대선 전초전’ 양상까지 띠고 있다. ‘세대교체’를 부르짖는 486 세력의 기세도 무섭다. 덤으로 흥행에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9월9일 민주당 예비 경선에서 예상대로 빅3 주자는 가볍게 1차 관문을 통과하며, 치열한 본선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시사저널>은 빅3 중 한 명인 정동영 의원을 예비 경선 직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시사저널 유장훈

왜 ‘정동영’이 당 대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당에 많은 빚을 진 사람이다. 빚을 갚고 싶다. 민주당은 국민에게 의지와 위로가 되어야 한다. 희망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빚’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대선 패배의 장본인으로서 국민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은 죄책감이 있다. 많이 죄송스럽다. 그래서 반성문을 썼고, 지금도 반성하고 있다. 그런데 민주당이 이대로 가서 정권 교체를 이룰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의 민주당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 국민들의 생각 아닌가.

대선 패배도 그렇지만, 이후 민주당 탈당과 복당에 대한 책임론이 아직 남아 있는데, 너무 빨리 당권 도전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당이 이대로 좋다고 하는 사람들 숫자보다는 당의 획기적인 변화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더 크다.

‘획기적인 변화’란?

당내에 관한 것과 노선에 관한 것, 두 가지이다. 우선 민주당의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후퇴했다. 당내 민주화를 해야 한다. 민주당의 권한은 당원에게 있다. 당원들에게 당을 돌려주어야 한다. 또 하나는, 우리 정당들 가운데 서민을 가장 잘 대변하는 정당이 어디냐고 물었을 때, 민주당이 1등이 아니라 오히려 한나라당 밑에 있다는 점이다. 어중간한 정당으로는 안 된다.

초반 판세가 손학규 고문이나 정세균 전 대표보다 불리하다는 분석이다.

내가 본 것과는 다르다. 잘 가고 있다.

이번 예비 경선에서 486·친노 그룹의 상승세가 무섭게 나타났다. 그들이 정세균 전 대표와 연대하는 모양새인데.

‘짝짓기’라고 하는데, 국민들이 부정적으로 보지 않나.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판단을 중시하는 문화가 더 귀중하다. 합종연횡이니 연대니 하는 것은 구 정치적 요소이다.

출사표에서 “정통 민주당을 만들겠다”라고 했는데, ‘정통’은 특정 후보를 염두에 둔 것인가?

우리와 한나라당이 분명히 다른데, 사람들이 다르다고 보지 않으면 문제이다.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 민주당의 정체성은 신익희, 장면,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혈통을 부정할 수 없다. 

‘혈통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은 한나라당 출신인 손고문을 지목한 것인가?

일반 국민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민주당은 한나라당과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2중대’를 찍을 수는 없지 않나. 정체성에서 뿌리 부분을 부정할 수는 없다. 뿌리를 극복하고 같은 정체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따라야 하지 않겠는가.

ⓒ시사저널 유장훈

‘정체성’ 측면에서는 정 전 대표와 비슷하지 않나?

당원들이 판단할 것이다. 경험을 바탕으로 좀 더 나은 비전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나는 남북 문제에서 실전 경험이 있다. 과거 열린우리당 의장을 맡아서 1등으로 만들어낸 실적도 있다. 뜻을 세우면 무언가 결과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대통령이 되는 것은 어렵더라.(웃음)

전당대회 경선 규칙을 합의하는 과정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내가 주장한 것이 관철되었다. 그것은 당원이 원한 것이다. 전당대회준비위가 당원에게 물어보았더니 2 대 1로 집단지도체제가 맞다고 했다. 전 당원 투표가 원칙이어야 하지만, 30% 반영되어 그나마 당원 참여의 혈로가 뚫렸다. 그럼에도 최소한 당원 조사를 50% 이상 반영했어야 했다. (민주당은 9월6일 △집단지도체제 도입 △대선 1년 전 당권과 대권 분리 △전당대회에서 대의원 투표 70%, 당원 조사 30% 반영 등을 추인했다.)

“야당이 없다” “민주당이 보이지 않는다”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이제 만들어가야 한다.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참패했지만, 그래도 손학규·정세균 전 대표의 공로가 있었다. 당이 침몰하지 않고 떠 있도록 한 것은 박수를 보내줘야 한다. 하지만 과연 정권을 잡을 수 있는가의 문제에 대해서는 솔직해져야 한다. 당의 간판과 깃발을 바꾸자는 것이다. 간판은 사람이고 깃발은 노선이다.

‘담대한 진보’를 주장하고 있는데.

반성에서 출발했다. 대선에서 실패하고 스스로 수천 수만 번 ‘왜 떨어졌나’ 자문해 보았다. 첫째는 능력이 부족했다. 둘째는 더 근본적인 원인을 찾았다. 미국 월가의 붕괴를 통해 신자유주의의 본산이 뿌리째 무너지는 것을 보며 나의 무지를 깨달았다. 상상력의 부재였다. 내가 민주 정부 10년 동안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와 이라크 파병 등이 불거졌을 때 아무런 역할을 못했던 것 같아 안타까웠다.

‘역동적 복지 국가’를 제시했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신생아 도우미 파견 사업’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신생아 46만명이 태어나는데 도우미 일자리를 만들면 5조원이 든다. 그러면 46명의 구매력이 생겨 내수가 살아난다. 5백만명 노인들에게 노후 연금을 지급하면 20조원 정도가 든다. 이분들이 소비자가 되면 내수 시장으로 돌아간다. 노인 계층의 지갑에 돈을 채워드리고, 국가가 효도하자는 것이다. 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제시한 것이 ‘사회 복지를 위한 부유세’ 도입이다.

‘부유세’ 도입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은데.

국민들의 67%가 찬성하고, 당원들 80%가 찬성한다.

대의원들과 당원들을 직접 만났을 때 반응은 어떤가?

만나기 전과 후가 확 다르다. 관심은 민주당이 어떻게 다시 집권할 수 있느냐이다. “간판과 깃발을 바꾸어야 한다” “담대한 진보로 연합 정치를 하자”라고 말하면 표정이 밝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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