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영화의 대가들 한국에서 ‘진검’ 빼들다
  • 라제기│한국일보 문화부 기자 ()
  • 승인 2010.10.11 17:5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무협 블록버스터로 맞대결 펼치는 쉬커·우위썬 감독

인연 참 얄궂다. 30년 가까이 이어진 라이벌 관계가 끝을 모른다. 쉬커(徐克)와 우위썬(吳宇森). 1980~90년대 홍콩 영화의 부흥을 이끌었던 대가들이다. 홍콩 영화의 대형인 두 사람은 무협물 <적인걸: 측천무후의 비밀>(10월7일 개봉)과 <검우강호>(10월14일 개봉)를 도검 삼아 이국 땅 한국에서 다시 맞대결을 펼친다.

출발부터 달랐다. 미국에서 수학하고 할리우드 물도 먹어본 쉬커는 칼을 영화 속 주요 도구로 삼았다. 영화 엘리트인 쉬커에 비해 우위썬은 현장에서 잔뼈가 굵었고, 거리의 총잡이로 인생 승부수를 삼았다. 두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홍콩 영화를 세계 시장으로 견인했다.

출세는 쉬커가 앞섰다. 그는 1983년 <촉산>으로 홍콩 영화의 미래로 떠올랐다. 우위썬의 출세작 <영웅본색>(1986년)의 제작자도 그였다. 쉬커가 <영웅본색>의 연출을 맡기면서 우위썬은 무명 감독의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영웅본색>을 기점으로 두 사람의 운명은 엇갈렸다. 우위썬은 홍콩 밖에서까지 명성을 쌓았고, 쉬커는 주춤했다. <영웅본색> 시리즈 중 가장 외면받은 <영웅본색3>의 감독이 쉬커라는 사실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할리우드 진출은 우위썬이 빨랐다. 1993년 <하드 타겟>으로 할리우드에 데뷔했다. <브로큰 애로우> <페이스 오프>를 만들며 입지를 다졌다. 쉬커는 1997년 <더블 팀>(우연일까. <하드 타겟>의 장 클로드 반담이 주연했다)으로 할리우드 신고식을 치렀고, <넉 오프>로 안착했다.

귀향은 쉬커가 먼저였다. 2000년 <순류역류>로 돌아왔다. 우위썬이 <미션 임파서블2> <페이첵> 등으로 할리우드 스타와 세계 시장을 공략할 때 쉬커는 절치부심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칼로 새로운 싸움을 시작했다.
<촉산전>과 <칠검> 등으로 부활에 성공했다. 우위썬은 <적벽대전> 시리즈로 고향을 찾았고,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 ⓒ누리 픽쳐스

<적인걸>은 쉬커의 야심을 담고 있다. 제작비부터가 1억3천만 위안(약 2백24억원)이다. 주연은 류더화(劉德華)와 류자링(劉嘉玲). 여기에 량자후이(梁家輝)가 특별 출연하고, 홍진바오(洪金寶)가 무술 지도를 했다. 호화 진용도 진용이지만 막대한 물량으로 빚어낸 화면이 관객의 시신경을 압박한다. <검우강호>도 크게 뒤지지 않는다. 무협 여걸 양쯔충(楊紫瓊)과 정우성으로 맞불을 놓는다. 블록버스터는 아니지만 섬세하게 가공한 무술 장면이 관객의 눈을 희롱한다. 승패를 가늠하기 쉽지 않다.

대형 사극 통해 옛 홍콩 영화 부활 노려

홍콩에서 출발해 할리우드를 거쳐 고향으로 돌아온 쉬커와 우위썬의 대결은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고,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중국의 대표 감독 장이머우(張藝謀)와 천카이거(陳凱歌)가 일으키고 키운 대형 사극 바람이 이들 홍콩 출신 대가에게 이어지고 있음을 새삼 보여주기 때문이다. 홍콩 감독들이 본격적으로 중국 영화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기도 한다.

<첨밀밀>과 <퍼햅스 러브>을 만든 홍콩 감독 천커신(陳可辛)은 5년 전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이제 홍콩 영화라는 것은 없다. 홍콩 감독들은 본토를 겨냥한 대작 영화를 연출하거나 아니면 감독을 그만두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예언을 실현하듯 천커신은 이후 액션을 앞세운 대형 사극 <명장>을 연출하고 <8인: 최후의 결사단>을 제작했다. 액션으로 일가를 이룬 쉬커와 우위썬이 걷는 길을, 아이러니하게도 멜로영화에 능한 천커신 감독도 똑같이 걷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곳에서 펼쳐지는 두 대가 쉬커와 우위썬의 대결이 더욱 흥미로운 이유는 홍콩 영화의 오늘과 미래까지 내포하고 있어서다.  

 


 

ⓒ누리 픽쳐스
8백년 전, 서역에서 온 제일의 고수 라마가 죽자 그의 유해를 가진 자는 천하 제일이 될 것이라는 풍문이 돈다. 강호의 고수들과 황실까지 나선 암투가 시작된 것은 당연한 일. 암살 집단 흑석단은 유해의 반쪽을 보관하고 있던 고관대작의 집을 습격해 부자를 살해하지만 살수 세우가 유해를 들고 사라져버린다. 새로운 국면을 맞은 유해 찾기의 암투 속에, 세우는 얼굴과 이름을 바꾸고 난징의 작은 마을로 숨어들지만 그녀를 찾는 것은 흑석단만이 아니었다.
배우 정우성과 감독 우위썬의 만남으로 주목받은 <검우강호>는 무림 비급을 둘러싼 강호의 암투와 복수, 사랑을 그린 영화이다. <적벽대전>부터 정우성에게 러브콜을 보냈다는 우위썬 감독은 정우성에게 복수와 사랑 사이에서 고민하는 캐릭터를 안겼다. 중국어 대사와 액션 연기의 부담이 없지 않았겠으나 정우성의 연기는 의외로 안정적이다. <와호장룡>을 통해 이미 서구에도 충분히 알려진 양쯔충의 연기는 두말할 것 없는 명불허전.

본격 무협 액션을 표방한 작품답게 그 옛날 쇼브라더스 영화들에 버금가는 장면들로 가득한 영화는 일단 볼거리 면에서 합격점을 줄 만하다. 휘어지는 연검, 불을 다루는 쌍검, 채찍처럼 쓰는 갈고리검에, 총알보다 빠른 비수까지 다양한 병장기로 부딪는 고수들의 합은 그 자체로 볼거리이며, 정우성·양쯔충 외에도 타이완판 <꽃보다 남자>의 서희원이나 <무간도> 시리즈로 유명한 여문락 등 스타급 배우들이 포진한 출연진도 눈을 즐겁게 한다. 스케일을 키우지 않고 복수극에 집중한 이야기는 특수 효과와 CG 등을 액션에 집중시킴으로써 적절히 안무된 액션을 돋보이게 하고 그동안 중화권 영화들이 보여주었던 그림으로서의 CG라는 한계를 벗어나는 효과를 얻었다.
문제가 있다면 그 비급을 찾기 위해 살인 집단을 조직하는 것도 불사했던 전륜왕이 집착하는 이유가 상당히 개인적이라 실소가 터진다는 것과 <페이스 오프>의 설정을 그대로 가져온 탓에 드라마가 판타지를 넘나든다는 점이다. 덕분에 멜로도 아슬아슬하고 비장미도 덜하다. 하지만 볼만하다. 특히 무협 액션을 기다렸던 관객이라면, 우위썬의 전작들에서 느꼈던 실망을 잠시 접어두어도 좋겠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