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이 다른 ‘밥상 정치’
  • 김재태 편집부국장 (jaitai@sisapress.com)
  • 승인 2010.10.11 18:2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요즘, 나라 전체에 ‘채소 전쟁’이 극심하다. 배추뿐만 아니라 무와 파 값도 덩달아 뛰어올라 올겨울 김장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그치지 않고 있다. 우리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반찬이 김치이고, 그 김치의 주된 재료가 배추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런 만큼 우리 국민 가운데 배추 값 파동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부식비를 아끼려고 밥과 김치로만 식사를 해결하는 서민들도 적지 않다. 그들에게 배추는 단순한 채소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런 배추 값 하나 제대로 잡지 못하는 정부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올여름 기상 재해로 배추가 흉작이어서 물량 부족에 따른 것이라고 아무리 강변한들 어느 영화 속 대사처럼 ‘비겁한 변명’에 불과할 뿐이다. 비정상적인 강수량과 같은 강우 피해[濕害]는 이미 오래전에 벌어진 일이고, 그만큼 대비할 시간적 여유도 있었는데 이제 와서 쩔쩔 매는 정부의 모습은 어처구니가 없다. 뒤늦게 이런저런 대책이 나오지만, 말 그대로 ‘사후약방문’일 뿐이다. 비가 그처럼 넘치게 내릴 때부터 사태를 면밀히 예측하고 농작물 수급 관리를 서둘렀으면 이런 재앙 아닌 재앙은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앞으로 시간이 흘러 배추 공급 물량이 차츰 늘어나면 배추 가격이야 안정되겠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농작물에 직접 패해를 주는 기상 이변이 올해만의 특수 상황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을 학대한 인류에 대한 ‘지구의 역습’이 갈수록 가혹해지리라는 사실은 이제 상식에 속한다. 기상학자들도 기상 이변이 해를 거듭할수록 더 혹독해질 것이라고 입을 모아 말하고 있다. 정부가 이번처럼 늑장 대응을 일삼는다면 앞으로도 갖가지 농작물 파동에 시달릴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번 배추 파동은 또 농민들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무기력감을 안길 수 있다는 점에서도 후유증이 막심하다. 정부가, 복마전이라고 일컬어지는 농작물 유통의 문제점을 명쾌하게 바로잡지 못하고 가격 관리에서도 실패를 거듭한다면, 농민들은 무엇을 믿고 농사를 지어야 할지 참으로 막막할 것이다. ‘농사가 무슨 로또냐’라는 말이 달리 나오는 것이 아니다. 배추 값이 크게 올라도 정작 그 배추를 키워 내다 판 농부는 큰돈을 쥐지 못하는 부조리는 또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

<왕의 밥상>이라는 책을 펴낸 함규진씨는 조선 시대 왕들이 수랏상을 통해 ‘밥상의 정치학’을 펼쳤다고 자신의 저서에 썼다. 왕의 밥상에는 각지의 특산물이 고루 진상되어 오르는데, 그것을 통해 해당 지역의 작황을 살폈다는 것이다. 또한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 임금이 근신하는 뜻으로 반찬의 가짓수나 식사 횟수를 줄이는 ‘감선(減膳)’과, 백성들이 오랜 가뭄과 홍수에 시달릴 때 고기 반찬을 먹지 않는 ‘철선(撤膳)’ 같은 수범적 행위도 실천했다. 얼마 전 화제와 논란을 불러일으킨 ‘양배추 김치’와는 확실히 차원이 다른 ‘애민(愛民)’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