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품격, 이대로는 안 된다
  • 염재호 / 미국 스탠퍼드 대학 정치학 박사 ()
  • 승인 2010.10.25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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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새로운 리더가 된 손학규 대표가 정진석 추기경을 예방한 자리에서 정추기경은, 국회의 인사청문회가 좀 더 품격 있는 청문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주문을 했다. 청문회에서 국민의 눈을 끄는 것은 공직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을 평가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개인 비리나 윤리에 관련된 잘못을 들추어내는 것이다. 이런 청문회는 국민들에게 묘한 사회적 새디즘을 자극하고 있다. 더 나아가 후보자 개인뿐 아니라 후보자 가족들의 사생활까지도 낱낱이 파헤치면서 많은 심리적 상처를 안겨준다. 최근 국정감사에서도 정책이나 행정 행위의 문제를 지적하기보다는 기관장의 윤리적 문제나 비리 여부를 물고 늘어지는 감정적 접근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왜 우리 사회가 이처럼, 자신은 절대적인 도덕적 기준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처럼 전제하고 상대방의 약점을 공격하는 사회가 되었는가?

얼마 전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타블로 학력에 대한 진실 여부도 스탠퍼드 대학의 공식적인 확인이 있었음에도 끊임없이 의문이 제기되었다. 이 경우에도 타블로 본인뿐 아니라 가족의 사생활에 관련된 문제까지 공격하면서 학력 위조 논란을 증폭시켰다. 사실이 아닌 것을 가지고 다양한 의혹만 제기하며 마치 그것이 진실인 양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현상이 너무 만연되어 있다.

하나의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증거와 깊은 성찰적 논리를 통해 반추하며 심사숙고하기보다는, 표피적이고 감각적인 한두 개의 증거를 가지고 현상을 쉽게 평가하고 진단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렇게 이해된 부분적 현상을 전체적 특성으로 일반화하기까지 한다. 이런 사회적 특성은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획득이 매우 사소하고, 편협되고, 자극적이며, 급속한 확산을 야기하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인지 모른다. 아니면 우리 사회가 압축 성장하는 과정에서 결과만 중요하고 수단과 방법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고 달려왔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인지 모른다.

몇 년 전 일본에서는 오차노미즈 대학의 후지와라 마사히코(藤原正彦) 교수가 쓴 <국가의 품격>이라는 책이 3백만권 이상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어서 나온 쇼와 여자대학의 반도 마리코(坂東眞理子) 총장이 쓴 <여성의 품격>이 또 다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처럼 일본 사회도 급격하게 변화하는 표피적이고 감각적 사회 현상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끝장 토론’ ‘막장 드라마’와 같이 과격하고 극단적인 TV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있다. 이러한 현상 인식이나 문제 해결 방식은 합리적이기보다는 감정적이다. 더 나아가 상호 이해와 공존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논의 방식은 아니다. 최근 천성산 도룡뇽 문제가 과장된 주장이었다는 보도나 정운찬 전 총리의 청문회 의혹이 왜곡된 것임을 밝힌 <정운찬 시시비비>가 출간된 것이 주목되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의 논의 구조가 좀 더 품격 있게 변화해야 할 것 같다. 말재주에 의존해 흥미 위주로 상대방의 약점을 공격하거나 ‘아니면 말고’ 식의 의혹만을 갖고 논의를 이끌어가는 방식은 피해야 한다. 이러한 논의는 결국 우리 국민들에게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비용을 짊어지게 만든다. 이제 우리 사회의 지도자들부터 좀 더 품격 있는 행동을 통해 사회적 논의 구조를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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