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동방예의지국
  • 김재태 편집부국장 (jaitai@sisapress.com)
  • 승인 2010.10.25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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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동방예의지국이다. 최근에 나온 공익 광고에서는 ‘동방’을 뛰어넘어 ‘세계예의지국’이라는 호칭까지 붙여졌다. 비록 얼마 전에 지하철에서 할머니와 젊은 여성이 험한 말을 써가며 승강이를 벌이고, 그것이 인터넷에 ‘지하철 패륜녀’라는 이름으로 유포되기도 했지만, 그 정도는 최근에 공개된 한 ‘극한 예의’의 동영상에 의해 간단히 상쇄되고 남는다. 동영상의 주인공은 황공하게도 대한민국의 제12대 대통령이다. 모교의 행사에 노구를 이끌고 참석한 그는, 전직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대통령을 상징하는 봉황 문양의 배경 앞에 당당하게 앉았다. 그리고 후배들이 단체로 올리는 큰절까지 덤으로 받았다. 후배들은 ‘각하 내외분 만수무강하세요’라고 쓰인 현수막을 내거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한 번 각하이면 영원한 각하인 이 나라에서 그들은 자랑스러운 동문 출신 전직 대통령을 예의를 다해 섬겼다. 재임 중 뇌물 수수 혐의와 군 형법상 반란 혐의로 실형 선고를 받은 전력 따위는 그 잔치 마당에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그분이 누구신데 그럴 수 있겠는가. 일찍이 대통령이 되어서는 지금 이 사회에 회자되고 있는 ‘공정 사회’보다 앞서 ‘정의 사회’ 구현을 외치며 삼청교육대라는 전대미문의 ‘교육 기관’을 창설해내고, 자신이 하면 ‘정의’이고 남이 하면 ‘불의’라는 식의 위대한 업적을 남기신 분이 아니던가. 5·18 광주의 비극쯤은 간단히 외면해버리고, 내야 할 추징금이 1천6백72억원이나 있는데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을 만큼 배짱도 두둑하신 분이 아니던가. 게다가 자신에게서 추징금을 거두어야 할 검찰의 편의를 돕기 위해 강연료로 얻은 수익 3백만원을 흔쾌히 납부할 만큼 배려심도 깊으니 더 말할 나위가 있을까. 들리는 얘기로는, 2006년 국무회의 의결로 서훈이 취소되어 반납해야 할 훈장도 여태 내놓지 않고 소중히 보관 중이시라고 한다.
 
동방예의지국에서는 이처럼 ‘위대한 인물’을 모시는 데 동문 후배들만 앞장서지는 않는다. 현직 대통령들도 틈만 나면 국정을 자문한다며 초청해서는 극진한 대접을 한다.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들이 취임 인사를 겸해 문안을 올리는 모습에도 예외가 없다. 그들이 원로 대우를 받으니 사회의 ‘진정한 원로’들은 나설 자리가 없는 것이 아니냐는 불만은 그저 ‘괜한 소리’일 뿐이다. ‘맞은 놈은 펴고 자도 때린 놈은 오그리고 잔다’라는 옛말이 틀렸음을 온몸으로 보여주시는 그분은, 주변에 예의를 다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여전히 건강한 모습이다. 얼마 전 인사차 자신을 찾아온 총리에게 “총리가 너무 법 쪽으로 따지면 안 된다”라는 말도 남겼다. 이 얼마나 또 여유롭고 통 큰 훈계인가. 그 짧은 말 마디 속에도 5·18을 가볍게 밀쳐두고 평생 잘 살아온 자신의 인생 철학을 녹여낼 줄 아는 모습이다. 어른을 ‘가리지 않고’ 잘 모시는 대한민국은 정말 예의가 넘치는 나라이다. 그러니 ‘세계예의지국’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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