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앞에서 우리는 당당할까
  • 김재태 편집부국장 (jaitai@sisapress.com)
  • 승인 2010.11.22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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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피폐해지는 것은 민간의 삶뿐만이 아니다. 그 나라의 문화적 자존심들도 군홧발에 짓밟혀 상처받는다. 특히 역사가 오랜 문명 대국 혹은 문화 부국들이 그 비틀린 약육강식의 구도 속에서 자주 피해를 입곤 한다. 고대 강국이었던 이집트도 그런 나라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파라오의 무덤들은 ‘고고학적 발굴’이라는 미명 아래 파헤쳐졌고, 태양신에 대한 숭배의 상징이었던 오벨리스크들도 제자리에서 뿌리 뽑혀 여기저기로 실려나갔다. 그렇게 많은 문화재를 빼앗긴 이집트에 최근 희소식이 들렸다.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자기네가 소장해 온 이집트의 3천년 전 유물 19점을 되돌려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박물관의 관장이 그러한 결정을 전하면서 덧붙인 말이 의미심장하다. “이집트 정부가 제공한 자세한 자료를 검토한 결과, 우리가 소유한 유물이 현지에서 나왔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 물건들은 이집트를 떠나서는 안 되는 것들이었다.”

그동안 해외 반출 문화재 때문에 속앓이를 해왔던 우리나라에도 얼마 전 반가운 일들이 이어졌다. 지난 11월12일 한국과 프랑스 정상이 만나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약탈해 간 외규장각 도서 2백97권의 5년 단위 갱신 대여에 합의했다. 그리고 11월14일에는 한국 외무부장관과 일본 외상이 일본 궁내청이 소장한 <조선왕실의궤> 등 한국 도서 1천2백5책의 반환을 확정하는 협정에 서명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장의 말을 빌리자면 모두가 ‘애당초 한국 땅을 떠나서는 안 되었던’ 보물들이다. 이것말고도 우리에게는 아직 회수해야 할 보물이 너무 많다. 그것들을 되찾아오려면, 앞서 말한 이집트 정부의 노력처럼 해당 국가나 관계자들을 논리적으로 굴복시킬 끈기와 지략이 절실하다.

‘역사 제자리 세우기’는 비단 약탈된 문화재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우리가 지키고 있는 것들이 올바르게 자리 잡고 있는지도 중요하다. ‘일본식 조경’을 의심받고 있는 현충사나 ‘국정 불명’ 논란에 휩싸인 광화문광장의 이순신 장군 동상(<시사저널> 제1098호 사회면 ‘구국 성지에 광복은 오지 않았다’ 기사 참조) 등 돌아볼 것이 적지 않다.

일본에 빼앗긴 문화재가 돌아온다는 소식이 전해지던 즈음에, 고1 아이에게 <조선왕실의궤>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잠시의 고민도 없이 “조선 궤짝인가요?”라고 되물어온다. 한자를 잘 모르는 세대인 데다 역사적 지식이 없으면 ‘의궤’라는 말은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역사적 유물도 ‘이해’되지 않으면 한낱 신기루에 불과하다. 지난 11월18일에는 대입 수능시험이 치러졌다. 수험생에게 국사 시험도 치르냐고 질문했더니 “서울대에 갈 학생이 아니면 뭐하러 역사를 공부해요?”라고 한다. 우리가 열심히 이해하고 사랑해도 늘 불안한 역사가 배움의 장인 학교에서부터 잊혀져가는 시대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리고 이번 수능에서 과연 어느 정도의 학생들이 ‘국사’를 시험 과목으로 선택했을까. ‘역사’가 돌아온 날, 역사가 외려 슬프고 외롭다. 저 밖에는 남의 역사까지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혈안이 된 나라도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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