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문제 키워드는 ‘양극화’였다
  • 김새별 인턴기자 ()
  • 승인 2011.02.07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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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2000년대 신문 어휘 통해 분석 / 정치적 관심사는 진보?보수?중도로

‘신문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 신문은 그 시대의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총망라한 사회적 관심과 논의의 대상을 보여준다.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은 1월20일 지난 10년간 한국 사회의 변화상을 한눈에 파악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자료를 발표했다. ‘신문 어휘를 통해 본 한국 사회의 추이 분석’이 그것이다. 2000년부터 2009년까지 조선·중앙·동아일보와 한겨레의 모든 신문 기사에서 약 4억개에 달하는 단어를 추출해 그 빈도와 용례를 분석한 것이다.

21세기 첫 10년 동안 한국 사회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국내외 인물은 누구일까? 피겨스케이팅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김연아 선수와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 외에도 이명박 대통령,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등 정치인들과 박주영 축구 선수, 박태환 수영 선수 등 스포츠 스타 그리고 안중근 의사, 이순신 장군 등 역사적 인물들이 많은 관심을 받았다. 특히 김연아 선수는 신문에 언급된 횟수가 10년 사이에 약 6백배 증가하며 빠른 속도로 사회적 관심을 받아온 것으로 나타났다.

▲ 2009년 4월9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보수 단체 회원들이 참여정부에 대한 비리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왼쪽). 오른쪽은 2008년 5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문화제. ⓒ시사저널 유장훈,ⓒ 시사저널 임준선

‘채팅’ ‘우편물’ 지고, ‘블로그’ ‘댓글’ 뜨고…

문화·생활 면에서의 단어 사용 증감 역시 한국인의 생활 패턴을 반영한다. ‘블로그’ ‘댓글’ ‘내비게이션’ ‘하이브리드’ ‘유기농’ ‘홍삼’ ‘한식’ 등에 대한 관심은 증가했다. 반면 ‘캠코더’ ‘전화기’ ‘채팅’ ‘비디오’ ‘우편물’ ‘민박’ ‘여관’ ‘복권’ 등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었다.

‘키워드와 관련어 기반의 사회 문제 분석’에서는 한국 사회 문제와 관련된 주요 키워드를 추출하고, 이것과 문맥에서 같이 쓰인 관련어의 사용 양상을 살폈다. 주요 키워드뿐만 아니라 이들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 관련어들의 쓰임을 보면서 사회 문제에 대해 입체적인 분석을 시도한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의 사회 문제를 대표하는 단어로는 ‘양극화’를 포함해 ‘가난’ ‘빈곤’ ‘소외’ ‘자살’ 등이 꼽혔다. 이 분석에 따르면, 양극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2004년부터 서서히 상승하다가 2006년에 절정에 이른 뒤, 2007년부터 다시 서서히 하락세를 나타냈다. ‘양극화’ 관련어의 연도별 변화 양상도 비슷하다. 주목할 만한 점은 ‘교육’이라는 키워드가 ‘계층’ ‘복지’ ‘의료’보다 ‘양극화’와 더 높은 관련성을 보였다는 것이다. ‘성장’이라는 단어 역시 2006년 이후, 양극화와 함께 등장하는 빈도가 상위를 차지한다. 이는 경제 성장이 양극화를 해소할 것이라는 기존 관념과 달리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성장’과 무관하지 않음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연구진은 분석한다.

지난 10년간 한국인들의 정치적 관심사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도 눈길을 끈다. 일단 2000년대 들어 정치에 대한 한국인의 관심은 과거에 비해 다소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연구에 따르면, 신문 기사에 나타난 ‘정치’의 상대 빈도가 200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줄어든다. 정치에 대한 일반적인 관심은 감소하지만, 정치적 관심사 가운데 진보·보수·중도·우파 등 이념에 대한 관심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수’ ‘진보’ ‘중도’ 각각의 키워드를 분석한 결과, 진보 성향의 노무현 정부 시기에는 ‘보수’가, 보수 성향의 이명박 정부 시기에는 ‘중도’와 ‘진보’가 각각 더 많은 관심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수’라는 단어의 사용 빈도는 2006년부터 완만히 상승하다가 2009년에 하락한 반면, ‘진보’는 상대적으로 큰 상승 폭을 보인다. 주목할 것은 2000년대 초반에는 정치 관련어로 거의 쓰이지 않던 ‘중도’가 2000년대 중·후반으로 갈수록 정치 분야 키워드들과 함께 나타나는 경향이 크게 늘어난다는 점이다.

2000년대 중·후반으로 갈수록 ‘신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실용주의’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지역감정’과 ‘지역주의’ ‘권위주의’에 대한 관심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개혁’과 ‘부정부패’, ‘당리당략’의 출현 빈도도 급격히 하락했다. 반면 ‘투쟁’ ‘갈등’과 같이 사회적 갈등을 나타내는 단어들의 쓰임은 증가했다. ‘광장’ ‘소통’ ‘설득’ ‘담론’ 등도 빈도가 높아졌다. 민주주의의 절차와 방법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이다. 한국 사회가 다원화된 민주주의 사회로 발전해갈수록 사회적 갈등이 증대되고 있으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설득과 소통의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연구진은 말한다.

이번 연구 결과에는 ‘신문으로 본 지난 10년간 일상생활 방식의 변화’ ‘건강·질병 의료의 관념 변화와 트렌드 분석’ ‘트렌드로 살펴본 문화 소비 현상’ 등도 포함되어 있다. ‘트렌드’와 관련된 단어들로는 ‘남성’ ‘한식’ ‘고급’ ‘건강’ ‘외식’ ‘친환경’ ‘패션’ ‘감성’ ‘브랜드’ 등이 꼽혔다. 특히 ‘남성’의 관련어로 ‘미백’ ‘피부’ ‘화장품’ 등의 단어가 등장하는 현상은 2000년대 들어 변화한 트렌드를 보여준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김일환 연구 교수는 “이번 연구는 언어 현상 자체만을 놓고 분석한 결과이다. 하루 단위로 나오는 신문의 어휘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사회 현상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이번 분석이 끝나면 1990년대의 자료와도 비교해 1990년대와 2000년대의 사회상을 비교·분석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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