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 교수’ 끊어내야 대학이 산다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1.03.21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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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국공립 대학교 전임 교원 징계 현황 분석 / 최근 3년 동안 급증…‘솜방망이’ 처벌 드러나

▲ ‘제자 폭행’ 혐의로 징계위원회에 참석하는 김인혜 서울대 음대 교수. ⓒ연합뉴스·시사저널 임준선

대한민국 교수 사회가 비리로 멍들고 있다. 지난 2월28일 제자 폭행 의혹으로 서울대에서 파면당한 김인혜 음대 교수가 일으킨 파문은 이미 곪을 대로 곪아버린 한국의 교수 사회를 드러내준 한 단면에 불과했다. 갖가지 부정 의혹에 휩쓸려 대학을 떠나는 교수가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3월4일 직위 해제된 충남대 식품공학과의 한 교수 역시 학과 여학생 아홉 명을 성추행하고 학위를 빌미로 중국인 유학생 두 명에게 성관계를 요구한 혐의로 징계위원회의 조사를 받고 있다. 3월16일 충남대는 징계위원회를 열어 해당 교수에 대한 징계 수위를 논의했는데 최종 징계 결정은 3월23일로 미루어놓은 상태이다.

성범죄 관련 사유도 많아

이미 제자 폭행, 연구비 부당 집행, 금품 수수, 성희롱 등 대학 교수의 각종 일탈은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되어버렸다. 교수 집단 내부에서 사도(師道)가 땅에 떨어지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시사저널>이 안형환 한나라당 의원으로부터 입수한 최근 3년간(2008~10년) 전국 국공립 대학교 전임 교원의 징계 현황에는 대학 내 교수들의 비리상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자료에 따르면 대학 징계위원회로부터 견책 이상의 징계를 받은 전임 교원의 수는 최근 3년 동안 2백27명에 이르렀다. 징계 사유 발생일과 징계 처분일 사이의 기간 차이 문제로 2백27명 안에는 2006~07년도 및 2011년도 1월 중에 징계를 받은 교원도 일부 포함되었다. 연도별로 비교해보면 최근 3년 동안 숫자가 갑작스럽게 증가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006년에는 10명, 2007년 29명에 불과하던 것이 2008년에는 87명으로 대폭 늘어나 전년도의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 가운데 국내 최고의 대학인 서울대는 징계받은 교수가 총 19명이나 되어 징계 교수의 숫자에서 랭킹 3위에 오르는 불명예를 안았다. 징계받은 교수가 가장 많은 대학은 경북대로 25명에 달했다. 이어 전북대 22명, 서울대 19명, 전남대 18명, 부산대 15명 순으로 나타났다.

교수들이 징계를 받은 사유는 다양했다. 유형별로는 크게 음주 운전과 같은 개인적인 사유와 교수이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사유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후자의 경우 제자와의 관계(폭행·성추행·금품 수수), 연구 윤리(연구비 부정 집행·논문 표절)와 관련된 것 등이 있다. 이들 가운데 음주 운전, 무면허 운전 등 도로교통법 위반 사유가 총 74명(32.5%)으로 가장 많았고, 연구비 부정 집행 등 연구비 관련 사유가 28명(12.3%)으로 그 다음을 이었다. 기타 징계 사유 중에는 상해·협박 및 간통, 성매매, 제자 성희롱과 같이 성범죄와 관련된 사안들도 많아 교수들의 윤리 의식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교수들에 대한 징계는 거의 ‘솜방망이’ 수준에 가까웠다. 교수라는 신분상 상상하기 힘든 행동을 하고도 경징계 처분을 받고 대학 캠퍼스에 버젓이 남아 있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충남대와 충북대, 한국교원대에서 성매매 사유로 징계위원회의 조사를 받은 교수들은 모두 견책이라는 가벼운 처분을 받았다. 또 지난 2009년 12월 전북대의 한 교수는 전공의들에게 성접대와 같은 무리한 요구를 해 문제를 일으켰지만, 정작 징계위에서 내린 처분은 ‘정직 3개월’ 수준이 고작이었다.

전반적인 징계 처분 결과 현황을 통해서도 징계가 ‘형식적 수준’에 그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3년간 전체 징계 처분 가운데 감봉(32명), 견책(1백31명)과 같은 경징계가 대부분이었고, 정직(47명), 해임(13명), 파면(4명)과 같은 중징계를 받은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박거용 한국대학교육연구소장(상명대 교수)은 “징계위원회 자체가 교수들로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팔이 안으로 굽는 식’의 처분이 내려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사립대에서는 교수·학생·직원으로 구성된 대학평의원회를 운영하고 있지만, 징계위원회의 기능은 하지 못하고 있고, 국립대는 이조차도 없다. 국립·사립을 불문하고 징계위원회의 구성원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교수 사회가 자정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좀 더 근원적인 처방을 해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최근 성희롱이나 성매매 뇌물 수수와 같이 교수들의 윤리 의식 자체에 의문을 품게 되는 징계 사유가 늘어나고 있어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 경우는 대다수 교수가 권위를 빌미로 제자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때문에 지도교수가 한 학생을 집중적으로 교육하는 대학의 ‘도제 시스템 체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높아지고 있다. 일부 대학 관계자는 “사실 도제식 교육 자체만을 문제 삼을 것이 아니다. 교수들의 윤리 의식 또한 훼손된 면이 있다. 교수 윤리강령을 따로 마련해두어야 할 상황에까지 이르렀다”라며 좀 더 강력한 방침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도제식 교육’ 개선·‘내부 고발제’ 활성화 필요

여기에 더해 내부 고발자를 대하는 대학의 냉혹한 태도 또한 교수 비리의 덩치를 키우는 데 한몫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인혜 서울대 음대 교수의 비리가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던 데에는 동료 교수가 고발한 힘이 컸다. 이와 유사하게 지난해 9월 서강대에서도 경영대 남 아무개 교수의 연구비 횡령과 제자 성희롱 의혹 사건이 불거진 바 있다. 이 사건은 경영대 동료 교수 네 명이 전면에 나서서 비리를 파헤칠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기 때문에 외부에 알려질 수 있었다. 지난해 5월 서강대 경영대 교수 네 명은 남교수의 비리를 고발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총장에게 제출했고 이들은 같은 해 남교수를 검찰에 고발한 바 있다. 하지만 남교수의 비리 사건이 대학 외부로까지 알려지자 서강대 징계위원회는 ‘대학의 명예훼손’을 이유로 남교수는 물론, 문제를 제기한 교수 네 명을 파면·해임하는 등 ‘싸잡아’ 중징계 처분했다.

이에 대해 박거용 소장은 “교수 사회의 자정 능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내부 고발제’를 활성화하는 등의 제도적 정비가 뒷받침될 필요가 있다. 사실 교수 사회의 자정은 교수들 스스로 나서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교수들이 자발적으로 교수 비리를 방지하는 센터를 세우는 등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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