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 같은 도전 정신으로 불굴의 길 여는 ‘마사이 족장’
  • 이철현 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11.04.04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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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엽 팬택 부회장의 ‘창업과 생존’ 스토리 “회사 살릴 수 있다면 모든 것 내놓겠다”

 

▲ 박병엽 팬택 부회장 ⓒ뉴스뱅크

박병엽 팬택 부회장은 지난 2007년 6월 착잡한 기분으로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 있는 퀄컴 본사에서 폴 제이콥스 회장과 만나기 위해서였다. 박부회장은 당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 지난 1991년 3월 아파트를 담보로 빌린 4천만원을 들여 친지 여섯 명과 함께 창립한 팬택이 눈앞에서 무너지고 있었다. 지난 2007년 4월25일 팬택은 상장 폐지되었다. 비행기에 오르기 며칠 전인 6월12일에는 30 대 1의 무상 감자까지 단행했다. 실적 악화로 인해 기업 개선 작업에 들어간 탓이다. 이 와중에 미국 코드분할다중접속방식(CDMA) 업체 퀄컴이 로열티 7천만 달러를 지급하라고 재촉했다. 국내 휴대전화 단말기 업체는 퀄컴에게 CDMA 기술을 사용하는 대가로 해마다 거액의 로열티를 지불해야 했다.

거액의 채권자를 협상 끝에 주주로 전환시키기까지

박부회장은 14시간 비행 내내 초조했다. 퀄컴 샌디에이고 본사에서 제이콥스 회장을 만나자마자 ‘채권 7천만 달러를 팬택에 출자 전환하라’고 매달렸다. 빚을 자본으로 바꿔달라고 조른 것이다. 제이콥스 회장은 당돌하기 그지없는 박부회장의 제안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부회장은 2년 동안 퀄컴 샌디에이고 본사를 집요하게 드나들며 설득했다. 결국 2년 협상 끝에 미지급 로열티를 자본으로 전환했다. 이로 인해 퀄컴은 지분 10.72%로 3대 주주가 되었다. 퀄컴은 지금 이사회에 이사를 파견하지 않고 있다. 박부회장에게 경영을 일임한 것이다.

지금까지 팬택이 한 단계 성장할 때마다 박부회장은 승부사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미국 통신 기기 제조업체 모토로라는 지난 1998년 박부회장에게 팬택을 팔라고 제의했다. 박부회장은 모토로라 인수·합병(M&A) 책임자에게 “내게 투자해라”라고 제의했다. 모토로라는 박부회장의 패기에 설득된 것인지 흔쾌히 제의를 받아들였다. 모토로라는 지난 2001년 팬택에 1조원어치 휴대전화 단말기를 발주하기도 했다.

박부회장은 “마사이족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 그들은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낸다”라고 말했다. 팬택은 해마다 한 차례 마사이족처럼 치밀하고 집요한 승부 근성을 보이는 직원을 뽑아 마사이상을 시상하고 있다. 박부회장은 마사이 족장이라 불려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매사에 끈질긴 것으로 유명하다. 팬택은 지난 2006년 11월 기업 개선 작업에 들어가면서 채권단 전원으로부터 동의를 받아야 했다. 기업 개선 작업은 팬택에게나 박부회장에게 마지막 희망이었다. 박부회장은 소액 채권자까지 일일이 찾아다녔다. 박부회장은 채권자들에게 “이번 유동성 위기만 넘기면 회생할 수 있다”라고 설득했다. 전국 곳곳을 돌며 30회 넘는 채권단 설명회를 열었다. 박부회장은 팬택 지분과 부동산을 비롯해 사재 4천억원을 내놓았다. 회사 부채 8천억원에 대해 보증까지 섰다. 채권단은 박부회장을 믿고 기업 개선 작업에 동의했다.

박부회장은 당시 주주가 된 채권단에게 한 약속을 지켰다. 유동성 위기를 넘긴 팬택은 14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 2조7백75억원, 영업이익 8백40억원을 기록했다. 2008년부터 3년 연속 흑자 행진이다. 판매량은 1천만대를 돌파했다. 수출 물량이 7백67만대로 내수(3백39만대)보다 많았다. 정상화까지 가는 물꼬를 튼 것이다.  

팬택은 지난 3월28일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다음 날인 3월29일 박부회장은 서울 마포구 상암동 팬택 사옥에서 임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조촐한 기념식을 가졌다. 사상 최대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시장 환경이 우호적이지만은 않아 창립 기념식을 성대하게 치를 형편이 못 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3년 매출과 영업이익이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영업이익률은 2008년 9.6%에서 2009년 7%로 줄더니 지난해 4%까지 떨어졌다. 내수 시장 점유율도 2009년 15%에서 지난해 14%로 줄었다. 휴대전화 단말기 판매 단가도 19만4천원에서 18만3천원으로 떨어졌다. 장외 시장에서 거래되는 팬택 주가는 3백50원에 불과하다. 액면가 5백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팬택 재무팀 관계자는 “외부 평가 기관은 팬택 주식 가치를 주당 3백80원 안팎으로 평가한다”라고 말했다. 대규모 출자 전환과 유상 증자 탓에 발행 주식이 17억주에 육박하고 있다. 채권단이 출자 전환한 물량을 뺄 수 있으려면 재상장해야 한다. 팬택이 재상장되더라도 주가 관리가 가능할지 의심스럽다. 

팬택이 정상화되기까지는 아직 넘어야 할 난관이 많다. 그럼에도 박부회장은 주저하거나 위축되지 않는 듯하다. 팬택은 해마다 마사이상과 함께 펭귄상을 시상한다. 펭귄상은 무리가 이동할 때 천적에게 먹힐 위험이 있음에도 과감하게 가장 먼저 뛰어드는 펭귄에서 이름을 땄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 정신을 강조한 것이다. 박부회장은 ‘2015년 매출 10조원 달성’이라는 목표를 제시했다. 박부회장은 임직원에게 “도전 정신을 바탕으로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기술로 승부해 2015년 매출 10조원을 달성하고 50년 이상 영속할 수 있는 강한 기업을 함께 만들자”라고 말했다.

영속할 수 있는 기업 위해 연구·개발 ‘몰입’

▲ 스카이 스마트폰의 야심작 ‘베가(Vega)’를 들어보이고 있는 박병엽 팬택 부회장과 모델들. ⓒ뉴시스

박부회장이 꺼낸 승부수는 연구·개발(R&D)이다. 지난해 기술전략본부를 만들었다. 기업 개선 작업에 들어간 이후에도 해마다 수천억 원을 연구·개발에 썼다. 지난 10년 동안 연구·개발에만 2조원이 투입되었다. 올해 연구·개발비 예산이 2천6백억원이다. 임직원 63%가 연구·개발 인력이다. 팀장급 이상 간부는 월요일 아침 6시30분에 모인다. 회의 탓에 일반 업무가 방해받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사업의 변곡점이나 선택이 필요한 시점에서는 매일 오전 6시 임원회의가 열린다. 팬택 스마트폰에 탑재될 운영체제로 구글 안드로이드를 채택할 때에도 새벽 회의를 한 달 넘게 거듭한 끝에 결정했다. 박부회장은 스마트폰 개발에 직접 참여했다. 개발 일정을 일일이 챙겼고 연구원을 찾아다니며 격려했다. 덕분에 팬택은 국내 최초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시리우스를 출시했다.     

박부회장은 이제 오너가 아니고 창업자에 불과하다. 박부회장은 “창업자로서 회사를 살릴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내놓고 빈손으로 나가겠다”라고 말했다. 채권단은 박부회장이 보인 헌신과 역량에 대한 보상으로 스톡옵션을 부여했다. 스톱옵션 주식 수는 1억6천4백60만주로 지분 10%에 해당한다. 2012~19년 사이에 행사할 수 있고, 행사 가격은 5백~7백 원이다. 회사가 그가 제시한 목표대로 성장한다면, 박부회장은 스톱옵션을 행사해 대주주이자 오너 경영인으로 복귀할 수 있다. 이제 박부회장과 팬택은 운명 공동체이다. 지난 20년 동안 늘 그러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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