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구석구석 그 속살을 훔쳐보다
  • 조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1.05.15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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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며 생각하며 그림과 사진에 담아낸 도시의 시간과 공간
▲ 매일 너와 이 길을 걷는다면이동미 글·사진생각의나무 펴냄344쪽│1만3천원

일상을 보내는 공간에서 문득 역사의 향기를 맡고 낯설어 한 적은 없는가. 자주 지나다니는 길에서 몇십 년 전의 일을 떠올리며 시간의 흔적을 더듬게 된 우연은 없는가.

박물관이나 천년고도 경주 등에만 문화유산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귀를 좀 더 기울이고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면, 삶의 현장이 고스란히 역사의 무대요, 문화유산임을 알게 된다. 최근 출간된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와 <매일 너와 이 길을 걷는다면>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들의 무대는 서울이다. 서울의 거리와 옛 건물과 골목길에서 만나고 느낄 수 있는 세월의 흔적과 옛 향취를 찍고 그려내, 독자의 시선까지 풍성하게 해준다.    

우선,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는 일러스트 작가인 이장희씨가 5년 동안 서울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그리고, 공부하고, 생각한 것을 묶은 그림 에세이집이다. 늘 현대적이고 새로운 것의 상징이 된 서울에 서려 있는 역사의 숨결을 찾아내 그 자리에서 직접 그리고 그때그때 떠오른 생각까지 연필을 꾹꾹 눌러 썼다. 이 책은 서울의 명소가 서울 그 자체임을 드러내 보여준다. ‘서울에서 꼭 가봐야 할 곳’ ‘서울의 맛집’ 등과 같이 짜릿하고 눈이 즐거운 곳이 아니어도 우리가 사는 곳, 무심코 지나가는 곳을 조금만 다른 눈으로 보면 6백년 역사를 만날 수 있는 도시가 바로 서울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이장희씨의 그림들은 무채색의 도시 서울에 시간을 입히는 작업이었다. 그 작업 끝에 구석구석 서울의 이야기와 풍경이 꿈틀거리며 되살아났다.

▲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풍경과 함께 한 스케치 여행 이장희 글·그림지식노마드 펴냄392쪽│1만5천8백

그 이야기와 풍경 속을 거닐며 날것 그대로 사진에 담아온 이도 있다. <매일 너와 이 길을 걷는다면>을 펴낸 여행작가 이동미씨이다. 작가는 서울의 골목길 27곳을 돌아다니며 서울의 다양한 얼굴을 카메라에 담았다. 오래된 이발관, 공동 화장실, 손 글씨 편지가 붙여진 대문…. 골목길에 들어서면 빨간 보자기를 목에 두른 골목대장 꼬마들이 있고, 시멘트가 채 굳기도 전에 누군가가 밟고 지나간 발자국이 있고, 30년 가까이 국수집을 운영하는 아줌마가 있다. 추억이 오롯이 현재 진행형으로 있는 곳이 서울의 골목길이었다.

책 속 낡은 골목 지도를 따라가다 보면 재미난 풍경들 또한 만날 수 있다. 영혼의 안식처 교회와 육신의 안식처 여관, 오래된 단층 주택과 고층 아파트가 나란히 있어 언뜻 부조화스러운 풍경의 충돌, 채석장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숭인동, 문득 길을 잃어 우즈베키스탄 한가운데 툭 떨어진 느낌이 드는 동대문 벌우물길, 가수 배호의 이름을 딴 ‘배호길’ 등….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 가면 ‘황금 소로’라 불리는 좁은 골목길이 몇백 년 전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이 골목 22번지에서 카프카는 집필 활동을 했다. 서울을 담아낸 이 책들만 보아도 잘 보전하면 황금 소로보다 더 멋진 모습의 골목길이 많다. 그런데 요즈음 서울에서는 골목길이 자꾸 사라져간다. 얼마 전 보았던 골목의 집들이 다시 가보면 허물어져 있다. 멀쩡했던 동네 하나가 하루아침에 사라진다. 골목길이건 돌계단이건 모두 밀어버리고 새로운 길을 내고 새로운 건물을 올린다. 낯선 공간이 우뚝 서는 것이다. 이동미씨는 “우리가 골목을 그리워하는 것은 그곳이 어린 시절 담아두었던 풍경과 사람냄새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골목을 없애기 전에 그 골목의 100년 후를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윤춘길

작품 사진에서 본 풍경이나 이미지를 정작 그 장소에 가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사진 속의 그 ‘이상한 분위기’는 어디에서 일어나는 것일까?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사진작가 윤춘길씨는 “그것은 ‘우연’ 때문이다. 우리는 찍는 그 순간의 시간과 공간을, 찰나의 기계적 효과로 장악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 ‘우연’으로 인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과 다름없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사진 발명의 배경에는 눈에 보이는 대로 또는 자신의 생각대로 이미지를 생성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그 욕망과는 다르게 자신이 찍은 사진에 자신도 모르는 이상한 분위기가 감돌게 되고, 오히려 그 때문에 결국 카메라를 놓지 못하게 된다.

윤씨는 최근 그동안 해 온 작업을 정리해 두 권의 사진집으로 묶었다. 그는 “이 사진집들 또한 기획에 의한 것이 아니다. 어떤 주제를 미리 설정했던 것이 아니다. 사진집으로 묶는 작업을 하면서 조금씩 선명해졌다”라고 말했다. 윤씨는 1권에서 <결코 끝나지 않는 차이짐>이라는 타이틀로 물의 이미지들을 모았고, 2권 <침묵에서 오는 소리>에서 숲에서 만난 풍경들을 모았다.

윤씨는 “많은 분들이 눈여겨보는 풍경에서 한 발짝 더 들어가면 무언가 다른 것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카메라가 만난 우연이었다”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사진은 ‘우연’의 얇은 포장지와 같다”라는 롤랑 바르트의 말을 인용하면서도 “이 사진들은 ‘응시’에 대한 내 고백이고 증언이고 내 스타일의 독특함이 아닐까 한다. 내가 다른 이의 책이나 작업에서 영향받고 재촉받았듯이, 내 작업이 그런 순환 내에 있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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