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물’ 변호사가 양심 되찾는 반전에 ‘감동의 물결’
  • 황진미│영화평론가 ()
  • 승인 2011.06.07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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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일의 리뷰·<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20세기 폭스 제공
영화는 오프닝 시퀀스부터 감각적인 화면 분할로, 만듦새가 세련될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그 인상은 끝까지 유효하다. 주인공은 잡범들을 변호하며, 짭짤하게 수입을 챙기는 약간 느끼한 속물 변호사이다. 그는 기사가 딸린 링컨타운 차를 타고, 교도소와 법원을 바쁘게 오가며 떡값을 찔러주고, 능란하게 일을 처리한다. 어느 날 그에게 대형 로펌을 가족 변호사로 둔 부동산 재력가의 아들이 사건을 의뢰한다. 성매매 여성을 폭행한 혐의로 체포되어 유치장에 갇힌 그는, 자신의 혐의를 완강히 부인한다. 주인공은 그를 일단 유치장에서 풀어주고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하는 데 성공한다. 주인공은 그가 진짜로 무고하며, 부자 남성을 갈취하려는 윤락녀의 함정에 빠진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피해 여성의 멍든 얼굴을 보다가, 그는 자신이 변호했던 이전 사건을 떠올린다. 그리고 두 사건이 동일범의 소행이요, 함정에 빠진 것은 피의자가 아니라 자신임을 깨닫는다.

영화는 그다지 선해 보이지 않는 속물 변호사가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을 박진감 있게 보여준다. <슬리퍼스>(1996년)의 브래드 피트가 검사의 위치에서 피의자의 범죄를 무죄로 만들기 위해 재판을 역이용했듯,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의 주인공은 변호사의 위치에서 최대한 피의자를 변호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재판 과정을 영리하게 활용해 그의 죄상을 까발린다. 법정에서 야비할 정도로 피의자를 변호하고, 피해 여성을 모욕하는 그의 모습은 <데블스 에드버킷>(악마의 변호사)을 방불케 하지만, ‘무고한 피의자를 알아보지 못한’ 자신의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목숨을 거는 그의 직업 윤리는 존경할 만하다.

할리우드 영화 속 법정은 언제나 명쾌하고 드라마틱하다. 실제 미국의 법정도 그러한지는 알 수 없지만, 저것이 우리나라 법정의 모습과는 한참 다르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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