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바꾼 태국, 상처도 털어낼까
  • 조홍래│편집위원 ()
  • 승인 2011.07.12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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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 후보로 뜬 탁신의 여동생 잉락에 관심 쏠려…야당의 총선 승리에 군부는 정치 불개입 선언

쿠데타와 부패로 얼룩진 태국 총선에서 정권이 교체되었으나 미래는 불안하다. 7월3일 실시된 총선에서 야당인 푸어타이 당은 5백석의 의회에서 과반수를 넘는 2백64석을 얻어 정권 탈환에 성공했다. 5년 전 쿠데타로 실각한 탁신 친나왓 전 총리가 창설한 푸어타이 당은 총선 승리로 탁신의 여동생 잉락 친나왓을 총리로 선출할 예정이다. 부패와 권력 남용 혐의로 추방된 탁신의 당이 승리를 쟁취하고 44세의 정치 초년생인 그의 여동생이 총리가 되는 태국 정치는 국외자들에게는 ‘이변’으로 비친다.

이변은 또 있다. 18번의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가 총선 결과를 수용하면서 정치 불개입을 선언했다. 집권당인 민주당을 지지해온 군부가 자신들이 타도한 정당의 집권을 받아들인 것도 태국 정치 풍토에서는 이변이다. 군부의 파격적 태도 표명으로 태국에서 또다시 쿠데타가 일어날 것이라는 추측은 일소되었다. 군부는 총선 다음 날인 7월4일, 사실상 탁신이 지배하는 푸어타이 당의 승리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 지난 7월3일 태국 방콕에서 총선에서 승리한 야당 푸어타이 당의 당원들이 탁신 전 총리의 여동생 잉락(위 오른쪽 세 번째)을 둘러싸고 환호하고 있다. ⓒAP연합

농민들이 뭉쳐 정치 쿠데타 일으킨 셈

태국 유권자들은 이번 선거에서 툭하면 정치에 개입해온 군부의 고질적 쿠데타 행태를 응징했을 뿐만 아니라 군부가 지지하는 도시 엘리트 중심의 중산층 정권에 등을 돌렸다. 어떤 의미에서는 가난한 농민들이 뭉쳐 표를 통해 정치 쿠데타를 일으킨 셈이다. 국민의 70%를 차지하는 농민들은 호의호식하는 30%의 도시 중산층을 증오한다. 따라서 중산층을 지지 기반으로 하고 있는 아파싯 웨차치와 총리가 이끄는 현 정권을 교체한 것은 부자들에 대한 빈민들의 분풀이이기도 하다.

이제 관심은 총리 후보로 떠오른 잉락에 쏠리고 있다. 탁신의 막내 여동생인 그는 정치 경험은 전혀 없고 경영학을 전공한 비즈니스 우먼이다. 그는 태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될 것이 확실하다. 그가 과연 얽히고설킨 태국 정국을 요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물론 2006년 쿠데타로 실각한 후 현재 두바이에서 망명 중인 오빠 탁신이 귀국해 섭정을 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탁신은 ‘적절한 시기’에 귀국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그는 정치에는 개입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어쨌든 그가 귀국하면 다시 정치 회오리의 중심에 설 것은 뻔하다. 그의 정치 복귀가 군부와 중산층에 곱게 보일 리가 없다. 결국 다시 혼란의 씨앗을 잉태한다는 얘기이다. 이런저런 상황을 감안한 듯 푸어타이 당은 5개 중소 정당과의 연립정부 구성 계획을 발표했다. 단독 과반수 의석을 확보했음에도 화합 정치를 하겠다는 의사를 천명한 것이다.

태국의 비극은 부유한 도시 기득권층과 농촌의 가난한 소외 계층 간의 갈등에서 시작된다. 지난해 격렬한 반정 시위를 벌여 국정을 마비시킨 ‘레드 셔츠’ 시위대는 빈민 세력을 대표한다. 탁신을 타도한 군부와 중산층은 기득권 세력이다. 2001년과 2005년 두 번 총리에 취임한 탁신은 농촌 빈민층을 위한 정책을 많이 폈다. 농민들에게 그는 구세주로 비칠 정도이다. 이를 간파한 탁신은 농민들을 정치 세력으로 키웠고, 그 노력이 이번 선거 결과로 나타났다. 미국 시애틀에 있는 워싱턴 대학의 태국 전문가 찰스 케이스는 선거 결과와 중동의 민주화 봉기 간에 직접적인 관련은 없어 보이나 태국 정치의 소용돌이에 일부 영향을 준 것은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하급 계층의 정치 참여 욕구를 자극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빈민층이 군부와 엘리트 계층에 대해 노동 계급의 목소리를 묵살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낸 점이 이번 선거의 특징이다

태국의 영자 신문 네이션(Nation)은 “선거는 끝났으나 증오는 남아 있기 때문에 잉락은 지뢰밭에 던져진 형국이다”라고 논평했다. 비공식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절반 이상은 앞으로 더 많은 폭력 사태가 올 것이라고 예상한다는 결과가 나타났다는 방콕포스트의 보도도 나왔다. 잉락은 이런 우려를 의식한 듯 승리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탁신의 꼭두각시 노릇이나 할 것이라는 항간의 풍문을 일축했다. “할 일이 태산 같다. 경제를 발전시키고 나라를 화해의 길로 인도하는 책무를 기꺼이 맡겠다.” 그의 일성에서는 결의가 엿보인다. 이번 선거에서 패배한 민주당의 공약과 너무 비슷해 모호해 보이기는 하지만 아직 잉락의 리더십을 과소평가하기에는 이르다. 그는 부패 또한 시급히 해결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앞서의 정부들도 그런 말을 수없이 했다. 특히 ‘부패’라는 말은 자신의 오빠 탁신에게 부적처럼 따라다니던 말이다. 오빠의 수식어가 된 부패를 그가 얼마나 척결할지 두고 볼 일이다. 잉락은 선거 기간 중 조세 감면, 가계 지출 보조, 노인들에 대한 현금 지원 등을 약속했다. 이 공약들을 이행하자면 정부 재정은 파탄이 난다. 경제 전문가들은 30%의 최저 임금 인상 공약 하나만 실현하는 데도 수많은 중소기업의 폐업을 감수해야 한다고 우려한다.

탁신 전 총리의 그늘 벗어나는 것이 중요

▲ 지난 7월4일 두바이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태국의 탁신 전 총리. ⓒEPA 연합

새 정권을 둘러싼 일련의 불안에도 탁신의 친서민 정책이 뿌리를 내렸다는 평가에 주목하는 사람도 많다. 탁신의 정책이 밑바닥 유권자들의 마음을 샀다면, 군부를 중심으로 한 엘리트 정권의 정책은 외면당했다는 반증이 된다. 탁신은 2006년 9월 쿠데타로 추방되기 전까지 농민들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많은 정책을 시행했다. 그는 두바이에서 가진 태국 TV와의 회견에서 “서민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정부는 생존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선거를 계기로 태국 정치는 쿠데타와 거리 시위를 오가던 폭력과 혼란의 늪에서 헤어나 일단 제도권 내로 들어왔다. 태국 국민들이 마침내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공존하는 방법을 터득한 듯하다. “새로운 태국이 탄생했다”라는 일부 학자들의 분석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너무 비싼 대가를 치렀다. 탁신을 지지하는 ‘레드 셔츠’들이 지난해 4월과 5월, 두 달 동안 벌인 폭력 시위로 국정은 마비되었고 90여 명이 죽었다. 탁신은 거대한 통신회사를 경영하면서 2백40억 달러로 추산되는 부를 축적했다. 태국 법원은 궐석 재판에서 탁신의 재산 1백30억 달러를 몰수하는 판결을 내렸다. 재산 규모로 미루어 그를 부패의 화신으로 보는 견해는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도 농민과 도시 빈민들은 그를 사랑한다. 군인, 왕정 세력, 도시의 중산층들이 자행하는 부와 권력의 독점 그리고 가부장적 정치보다는 차라리 빈민들에게 혜택을 주는 탁신의 부패가 낫다는 인식이 가난한 태국 유권자들의 머릿속에 박혀 있다. ‘탁신은 생각하고, 푸어타이는 행동한다’라는 선거 구호가 이를 상징한다. 총선 뒤 정계 은퇴를 밝힌 아파싯 총리는 선거를 통해 탁신을 ‘태국의 독’으로 규정하고 그를 정치적으로 매장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결과는 자신의 패배로 끝났다.

새로운 정권, 새로운 태국의 등장은 일단은 희망을 기대할 수 있는 변화이다. 그러나 정치 지형은 너무 복잡하고 반목의 골 또한 너무 깊다. 한두 해가 아니라 수십 년이 걸려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인구 6천5백만명의 태국은 1985년부터 10년간 연 10%의 경제 성장을 하다가 지난 5년간의 정정 불안으로 현재는 4~5%의 성장세에 머물러 있다. 1인당 GDP는 5천5백 달러이다. 정치만 잘 굴러간다면 상위 중진국에 진입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선거 결과를 놓고 희망과 냉소가 혼합된 반응을 보이는 유권자들의 표정 속에 태국의 미래가 깜박이고 있다. 모처럼 소중한 전기를 마련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다만 앞으로 닥칠 불확실성의 그림자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이 나라의 미래를 결정하는 관건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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