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시대’ 몰고 온 새로운 ‘물결’ 조망
  • 조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1.10.10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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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정치 네트워크로 확산시킨 투명성 운동의 실체

▲ 투명성의 시대 - 위키리크스가 불러온 혁명 미카 시프리 지음샘터 펴냄304쪽│1만4천8백원

영화 <도가니>가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사실 보도로는 왜 사회를 변화시키지 못할까 하며 기자들이 주눅이 들 정도이다. 하지만 폭로나 고발이 세상에 충격을 주고 사회 변혁에 일조한 일은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리고 앞으로는 ‘피할 수 없는 물결’이 되리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미국의 정치 분석가이자 정치 운동가인 미카 시프리는 ‘위키리크스가 불러온 혁명’을 다룬 <투명성의 시대>라는 책을 펴내 ‘투명한 미래’를 전망했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동영상 하나가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단박에 알 수 있는 예를 든다면 이렇다. 2007년 7월 미군은 아파치 헬기가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전투 행위 중 2명의 기자와 9명의 반군을 사살했다고 발표했다. 사건에 의문을 품은 로이터통신측은 미군에게 정보 공개를 요구했지만, 미군은 무시했다.

그런데 당시에 촬영된 동영상을 우연히 본 이라크 주둔 미군 일병 브라이언 매닝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 동영상을 위키리크스측에 전달했다. “나는 사람들 누구나 진실을 보기 바란다. 정보가 없는 대중은 정보를 통해 결정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라는 메시지도 띄웠다. 위키리크스는 이 동영상을 편집해 인터넷상에 공개했다. 동영상에는 아파치 헬기에 탄 미군들이 비무장 상태의 민간인들을 사살하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반군은 없었고, 로이터통신 기자 2명도 아무 이유 없이 사살당했던 것이다. 그 파장은 엄청났다. 2주 만에 6백만명이 유튜브를 통해 이 동영상을 내려받아 시청했다. 이라크 전쟁의 어두운 진실이 만천하에 공개된 것이었다.

<투명성의 시대>는 위키리크스를 통해 촉발된, 국경을 초월한 지속적인 투명성 운동의 과정과 인터넷을 통한 열린 문화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저자가 설립한 개인 민주주의 포럼(PdF)과 줄리언 어산지 사건을 연계해 위키리크스 사건을 언급하고 비밀 문서의 공개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큰 정부와 기업 투명성의 결여’라는 문제는 빙산의 일각임을 밝혔다. 오바마를 중심으로 한 미국 정부의 투명성 운동 실체에 대해 규명하고, 위키리크스를 통해 확장된 세계 각국 투명성 운동의 사례를 들어 투명성 운동은 우연이 아닌 필연임을 강조했다. 저자는 “이 책을 쓴 진정한 이유는 이제 모두 투명성 운동에 동참할 시기가 되었다는 확신을 전하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라고 설명했다.

<도가니>와 더불어 요즘 한국 사회를 들썩이게 만든 각종 권력형 비리, 부실 저축은행의 허상이 낱낱이 드러나는 것을 지켜보는 국민은 무엇을 바랄까. 몸담은 조직과 사회의 ‘투명성’ 아닐까. 그렇다면 투명성은 어떻게 꾀할 수 있을까.

저자는 “변화는 선거운동 위에서부터 아래로 자신의 모습을 공개하는 조직이나 인물들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변화는 우리가 서로 연결하고 직접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다니는 가운데, 아래에서부터 위로 창조된다. 그리고 더 많은 이들이 그들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보고, 공유하고, 만들 수 있는 능력인 투명성과 그 연결성을 결합할 때 사회적인 에너지가 증폭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에너지는 온갖 종류의 방향을 통해 분출된다”라며 투명성 운동의 방향성에 대해 설명했다.

투명한 사회를 간절히 원해온 전세계의 기류는 인터넷 정보 공유의 목적으로 형성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와 절묘하게 조합했다. 중동 지역의 민주화 운동을 이끌어낸 이 조합은 전세계를 휘감으며 정치 투명성 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미국의 티파티(Tea Party) 운동을 이끌기도 했던 이 조합은 최근 분노한 미국 젊은이들을 월가로 불러들여 사회 변혁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서해문집 제공
<내셔널지오그래피>의 보도에 따르면 현재 전세계에 존재하는 언어는 7천개 가까이 되는데, 그중 절반가량이 21세기 내에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세계 사멸 언어 연구소’는 2주일에 한 개꼴로 언어가 사라지고 있다고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세계화와 통신 기술의 급속한 발달로 언어권이 통합되면서 언어 소멸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찌아찌아 족은 자신들만의 고유어인 찌아찌아어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표현할 고유 문자가 없어 역사를 기록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찌아찌아어마저 포기해야 할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 소식을 접한 훈민정음학회는 지난 2008년 8월, 약 8만명의 찌아찌아 족이 거주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부톤 섬 바우바우 시에 제안해, 한글 사용 및 한글 교사 양성에 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훈민정음학회는 한글로 된 교과서를 제작하고 현지 찌아찌아 족을 한국으로 불러들여 한글 교사 교육을 받도록 하는 등 한글 교육에 대한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 실행해 나갔다. 2009년에는 찌아찌아에 가서 현지 교사와 함께 한글을 가르칠 교사를 선발했다. 무려 27 대 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찌아찌아 파견 교사로 뽑힌 사람은 정덕영씨였다. 그의 이력이 좀 특이했다. 대학에서 무역을 전공한 뒤 제약회사에 20년간 근무하던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다. 하지만 그는 늘 책을 가까이 하고 ‘국어 선생님’을 꿈꾸던 ‘문학 소년’이기도 했다. 학창 시절에는 중학교 동기였던 기형도 시인과 문필을 겨루기도 했단다.

정씨가 가슴속에 품었던 꿈을 다시 펼칠 수 있게 된 계기는 KBS의 <우리말 겨루기>에 출연해 ‘우리말 달인’이 된 뒤부터였다. 그는 20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2007년 서강대에서 한국어교원양성 과정(1백20시간)을 이수했다. 그 후 경기도 화성의 다문화가족센터에서 결혼 이주민에게 우리말을 가르치며 그전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커다란 보람을 느꼈다. 그러던 중 훈민정음학회의 교사 모집에 응했는데, 그의 열정을 인정받아 결국 파견 교사로 선정되었다.

최근 정씨는 1년간 인도네시아 부톤 섬에서 겪은 이야기를 모아 <찌아찌아 마을의 한글 학교>(서해문집 펴냄)를 펴냈다. 생전 처음 가본 새로운 곳에서 한글 교사가 겪은 웃고 울고 가슴 짠해졌던 이야기를 생생한 사진과 함께 담았다. 물론 소중한 한글과 찌아찌아어도 펄떡이며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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