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불위 검찰, 힘 빼야 산다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1.12.04 02:2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사권·기소권 독점하며 절대 권력 행사…‘견제와 균형’ 통해 건강한 조직으로 거듭나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 설치된 검찰 조형물. ⓒ 시사저널 임준선
검찰이 사면초가에 몰렸다. 경찰과 총리실의 ‘수사권 조정안’을 놓고 마찰을 빚는 상황에서 ‘벤츠 검사 사건’이 터졌다. 경찰은 호재를 만났고, 검찰은 악재를 만났다. 여론도 검찰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검찰을 성토하는 네티즌들의 글이 빗발치고 있다. 검찰 비리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도 커지고 있다. 언론에서도 검찰 권력을 견제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정치권에서도 경찰측 주장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경찰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전 조직을 동원해 대국민 여론 작업에 나서고 있다. 검찰은 ‘수사권 조정’에 악영향을 미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렇다고 국민적인 요구를 거스리기에는 명분도 약하다. 내밀 카드도 마땅하지 않아 고민은 더욱 깊어가고 있다.

지방 검찰청의 한 부장검사는 “(요즘 경찰은) 물 만난 고기 같다. 상층부부터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여론몰이를 통해 수사권 조정에 영향을 미치려는 속셈이다.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대놓고 목소리를 높일 입장이 아닌 것이 답답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실제 검찰 조직의 현주소를 들여다보면 암담하다. 최근 국민권익위원회가 수사·조사·규제 관련 13개 공공 기관을 대상으로 한 ‘2011년도 공공 기관 청렴도 측정 결과’를 발표했는데, 검찰이 2년 연속 꼴찌를 차지했다. 가장 청렴해야 할 검찰이 가장 부패한 집단으로 나온 것이다. 이번 평가는 소속 직원들과 해당 기관을 찾은 민원인이 평가한 점수를 합산한 것이다. 일반 국민들에게 검찰의 벽은 여전히 높고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직 내부에서 파열음도 나오고 있다. ‘긍지와 자부심’으로 똘똘 뭉쳤던 검사들이 조직에 회의를 느끼며 하나 둘 떠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1월21일에 검찰을 떠난 대구지검 형사3부 백혜련 검사(44·사법연수원 29기)도 그런 고민을 안고 있었다.

검·경 수사권 조정안도 도마에 올라

11월29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검·경 수사권’ 관련 토론회에 참석한 경찰관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 시사저널 유장훈
백검사는 검찰에 쏟아지는 국민적인 비판을 감당하기 힘들었다고 했다. 그는 “현재 검찰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고 비판의 대상이 되는 가장 큰 원인은 국민적 관심사가 집중되는 큰 사건,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이 고도로 요구되는 사건들의 처리를 엄정하게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지키며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것에 기인한다”라고 밝혔다.

검찰 권력의 핵심은 ‘수사권’과 ‘기소권’에 있다. <검찰공화국, 대한민국>의 저자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범죄 혐의가 있어도 검찰의 수사가 개시되지 않으면 진실은 묻혀버리고, 정의를 세울 수 없게 된다. 검찰이 기소하지 않으면 공개된 법정에서 진실이 무엇인지 다투어볼 수도 없다.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해 보여도 검찰이 수사와 기소를 감행하면 무고한 자가 피의자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법과 제도적 장치들이 검찰을 권력 기관으로 만들고 있다”라고 밝혔다.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은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다. 반면 권력을 남용할 경우 심각한 인권 침해를 불러온다. 사람을 살려야 할 칼이 오히려 사람을 죽이는 칼이 될 수 있다.

공교롭게도 이런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번 ‘벤츠 검사’ 사건에서도 이 아무개 전 검사가 최 아무개 변호사의 청탁을 받고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 있다. 외부의 힘에 의해 사건이 좌지우지될 수도 있는 셈이다.

전북 정읍경찰서 소속 이광호 경위(48)는 누명을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자신의 알리바이를 주장하고 관련 증거를 제시했지만 무시당했다. 결국 검찰이 기소해서 1년형을 선고받고 꼬박 7개월을 복역해야만 했다. 경찰직에서도 해임되었다가, 2심 공판과 대법원에서 무죄가 선고되어 혐의를 완전히 벗었다. 다시 복직했지만 잃은 것이 너무 많다.

그는 “검찰에서는 수사의 기본을 무시했다. 신빙성이 전혀 없는 제보자의 말만 맹신한 채 수사가 이루어졌고, 사법권을 남용해 무리하게 기소했다. 현직 경찰인 나도 억울한 범죄자가 되는데 일반인들은 오죽하겠느냐. 다시는 나 같은 억울한 사람이 나오지 않아야 한다”라며 울분을 토했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국무총리실의 검·경 수사권 조정안은 경찰의 내사 사건에 대해 검찰이 사후 통제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정치권 등에서는 경찰의 내사가 수사 지휘에 포함시킨 것은 적절치 않다는 주장이다. 수사 기관 간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경찰은 최소한 검찰 비리에 대한 수사권을 주면 다른 것을 양보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양영진 진해경찰서 수사과장은 “검사나 검찰 직원이 관련된 사건에 대해 경찰이 독자적으로 수사할 수 있어야 한다. 검사가 경찰 수사를 마음대로 좌지우지하게 되면 그 피해는 돈 없고 힘 없는 시민들에게 돌아간다”라고 강조했다.

이를 빗대어 경찰은 “경찰서 형사과에 근무하는 형사가 있는데 그 형사의 아들이 친구와 싸우고 와서 그 형사로 하여금 직접 조사를 하고 사건을 처리하도록 법으로 규정한다면 어떻겠는가. 형사계에 근무하는 아무개 경찰관이 조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 가족의 사건인 만큼 반드시 아버지가 할 수 있도록 법으로 만들고 국민들은 무조건 이 법을 지키라고 한다면 따르겠는가”라며 반문하고 있다.

“검사의 기본은 수사가 아니라 기소”

하지만 검찰의 입장은 다르다. 경찰이 내사했다가 종결 처리한 사건을 사후에 검찰에 보고하도록 한 것은 인권 보호 차원에서 꼭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두식 대검찰청 형사정책단장은 한 토론회에 참석해 “국민의 인권 보호 차원에서라도 경찰에 대한 내사 지휘를 받아야 한다. 경찰은 지금도 얼마든지 검찰 비리를 수사할 수 있다. 다만 형사소송법에서 모든 수사에 대해 검사 지휘를 받도록 했기 때문에 ‘검사’만을 예외로 규정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일반 국민들은 경찰과 검찰 어느 한 쪽 편이 아니다. 다만 비대한 검찰 권력에 대한 견제 장치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그래야만 ‘국민을 위한 검찰’로 잉태할 수 있다고 본다.

국무총리실의 수사권 조정안도 검찰과 경찰이 서로 견제할 수 있는 틀에서 재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권력은 밥그릇 싸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수사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영국의 역사학자 존 액턴은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라고 말했다. 이는 권력에 빠져 부패의 극치를 일삼던 유럽 전제 군주들을 빗댄 말이다. 당시 유럽 전제 군주들은 권력이 커지면서 점점 부패해갔고, 결국 절대 군주 제도도 무너졌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절대 권력을 휘두른 독재자의 말로가 그러했다.

이상돈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민주 국가에서 검찰이 경찰을 완전하게 지배하는 곳은 없다. 반면 경찰이 독자적으로 수사권을 갖고 있지 않은 나라도 없다. 검사의 기본은 기소인데, 지금은 수사가 되어버렸다. 검찰과 경찰은 지휘 관계가 아니라 공조 관계가 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