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논하기 전에 대권 쟁취부터?
  • 조명진│유럽연합집행이사회 안보자문역 ()
  • 승인 2012.04.10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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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선 후보들, 유세 중 당면한 과제 제대로 다루지 않아…어떤 후보든 강한 해결책 요구돼

프랑스 대선이 4월22일로 다가오면서 후보들의 공약과 쟁점이 프랑스 유권자들의 평가를 받고 있다. 프랑스는 세계 5대 경제 대국으로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라는 막강한 힘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외교 행보를 해온 나라이다. 게다가 프랑스는 <포춘>이 선정한 세계 5백대 기업 안에 보험회사 악싸(AXA)에서부터 화장품업체 로레알(L’OREAL)에 이르기까지 다른 어떤 유럽 국가보다도 기업이 많이 들어 있는 국가이다. 4월22일의 1차 투표에서 과반수를 얻은 후보가 나오지 않으면 5월6일 2차 투표에서 새로운 대통령이 나올지 아니면 현 사르코지 대통령이 재선할지 여부가 결정된다.

극우파 마린 르팽이 급부상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번 프랑스 대통령 선거는 니콜라 사르코지와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의 대결 구도이다. 그런데 두 후보 모두 공공 부문의 규모 축소와 복지 국가에 대한 지속성 그리고 경제 성장 전망에 대해서는 선거 유세에서 그다지 다루지 않고 있다.

4월22일 실시되는 프랑스 대선에 나선 유력 후보들. 니콜라 사르코지 현 대통령(왼쪽)과 사회당 대선 후보인 프랑수아 올랑도(오른쪽). ⓒ EPA연합

프랑스 경제의 심각성을 알 텐데…

프랑스는 경제 상황의 심각성은 스페인에 가까운데 재정 지출은 마치 스웨덴이나 독일처럼 계속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프랑스와 독일은 국가 부채가 GDP(국내총생산)의 80%가 넘는다. 차이점은 독일의 경우 국채를 줄이고 있는 상황이지만, 프랑스는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국채에 대한 특단의 조치를 올해 안에 취하지 않을 경우, 2015년에는 부채가 GDP의 100%에 도달할 수도 있다는 적색경보가 프랑스 정부 내에서 나오고 있다.

유로존에서 독일 다음으로 경제 규모가 큰 프랑스가 안고 있는 불편한 진실은 공공 부문의 지출을 동결해야 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프랑스의 공적 자금 지출은 GDP의 56%를 차지한다. 이것은 OECD 평균치인 43.3%보다 높은 수치이다. 지난 수년간 프랑스는 국민들에게 스웨덴식 복지 제도를 제공해왔으나 재원을 조달하는 데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프랑스 경제에서 좀 더 근본적인 문제는 지난 10년간 국제 경쟁력을 잃어왔다는 사실이다. 2000년에 프랑스의 시간당 노동 비용은 독일보다 8% 적었다. 그러나 지금은 독일보다 10% 많다. 특히 독일의 수출은 상승세를 타고 있지만, 프랑스는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실업률에서도 프랑스는 10%이고, 독일은 5.8%라는 차이를 보인다. 프랑스의 비효율은 공공 부문의 고용 인원이 독일은 인구 1천명당 50명인 데 비해 1천명당 90명으로 훨씬 많다는 데서도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이코노미스트> 3월31일자는 프랑스가 처한 지금의 상황은 2000년대 초반 독일 또는 1990년대 중반 스웨덴이 직면했던 것과 비슷하다고 설명한다.

유로존의 채권 시장을 불안정하게 만든 재정 위기는 시간을 다투는 문제이다. 따라서 누가 프랑스의 대통령이 되든 간에, 우선적으로 다루어야 할 사안이다. 게다가 재정 적자에 대해 강경 정책을 펴지 못할 경우 프랑스는 유로존 재정 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2003년에 벌써 프랑스의 부채 문제를 예견했던 베스트셀러 작가 니콜라 바베레즈는 프랑스가 유로존의 다음 위기 때에 중심에 놓일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프랑스 남부 마르세이유 항에서 한 부두 노동자가 컨테이너 하역 작업을 지켜보고 있다. ⓒ AP연합

핵심을 겉도는 공약들만 남발

대선 후보들은 이처럼 심각한 경제 문제 대신 연쇄 총격 사건으로 7명이 사망한 툴루즈 테러 사건 때문에 이민법 같은 문제에 몰두하는 형국이다. 사르코지와 경쟁자 올랑드가 재정 적자 감소를 위한 조치들을 취해서 내년까지 적자 규모를 GDP의 3%로 낮추겠다고 공약을 내걸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공공 지출을 삭감하겠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약속하지는 못하고 있다. 대신 두 후보 모두 세금 인상을 통한 재정 충원을 기대하고 있다. 사르코지는 이미 법인세와 수입세를 인상했다. 사르코지는 세금을 이유로 프랑스를 떠나는 국민들에 대해서조차 세금 부과를 시도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도는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이 프랑스 정부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한편, 올랑드 후보는 연간 수입이 100만 유로가 넘는 사람들에 대해 최고 75%의 세금을 부과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올랑드 후보는 1백30만 유로 이상의 자산에 대해서 해마다 재산세를 늘리겠다는 공약도 내놓았다. 그가 내건 다른 공약에는 최저 임금 인상 그리고 정년 나이를 60세로 낮추겠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프랑스의 글로벌 기업들은 법인세 75%가 국제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얼마나 큰 타격을 주는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 국민들은 대체로 이들 다국적 기업에 적대적 시각을 가지고 있고, 국제화된 세계 시장 덕분에 프랑스가 세계 5위의 경제 대국이 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프랑스 국민의 31%만이 자유 시장 경제가 가장 이상적인 제도라고 믿고 있을 뿐이다. 여론조사 기관인 글로브스캔(Globescan)에 따르면 프랑스인들이 자본주의에 대해 불신도가 가장 높다고 한다.

이를 두고 프랑스인들은 모순된 입장을 보인다고 평한다. 프랑스 글로벌 기업들이 가져온 풍요와 일자리는 향유하면서, 이를 만들어낸 자본주의 시스템을 폄하한다는 얘기이다.  프랑스 엘리트와 언론 매체는 프랑스 국민들이 분별력 없이 마구 대출해 금융 손실을 가져온 무모한 은행 자본가들의 무고한 희생자이자, 앵글로색슨이 주도하는 신용평가 기관의 피해자라고 인식시키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사르코지는 자본주의의 남용을 막기 위해서는 도덕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고, 올랑드 후보 또한 최대의 적은 금융 세계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정작 프랑스 정부가 떠안은 빚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사르코지는 선거 초반에 독일식 개혁을 주장했지만, 곧 그것이 인기를 얻는 데 부적합하다고 판단하자 우파적이고 포퓰리즘적인 공약을 내걸고 있다고 프랑스 언론은 분석하고 있다.

프랑스 정치평론가 필립 마니에르 씨는 “지난 20년간 프랑스 정치인들은 자국을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우선된 직무라는 것을 성공적으로 국민들에게 인식시켜왔다”라고 말한다. 마니레르는 이어 “프랑스인들은 평등이라는 개념에 사로잡혀 있다. 이것을 간파하고 있는 프랑스 정치인들은 평등의 추구가 우선적인 책무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소수의 백인 남성 엘리트만이 프랑스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여성과 이민자의 소수 민족은 불이익을 보는 사회가 프랑스이다. 국회의원의 99%가 백인인 나라, 국회의원의 평균 연령이 영국이나 독일보다 열 살은 더 많은 나라 그리고 국내 1백20대 기업의 CEO 중 여성은 한 명도 없는 나라가 프랑스이다”라고 덧붙인다.

이번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던 간에 위축된 채권 시장과 경기 침체를 염두에 두고 국가 부채 문제에 대해 강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선거 유세전에서 올랑드 후보는, 성추행 스캔들로 낙마한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만큼 카리스마가 있는 인물이 아니라는 약점을 드러냈다. 그렇지만 툴루즈 테러 사건 덕에 국민적 지지를 더욱 받고 있는 사르코지가 대통령에 재선된다 하더라도, 그는 프랑스 국민들을 긴축 정책에서 지키겠다는 약속 외에 새로운 예산 절감 방안을 찾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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