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자보험, 약관 속에 ‘돈’있다
  • 조재길│한국경제신문 기자 ()
  • 승인 2012.05.06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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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종합보험에 추가 보험 들었다고 방심했다간 낭패 볼 수도…음주운전 사고 땐 ‘무용지물’

DMB를 보면서 운전하는 행위가 최근 대형 사고를 불렀다. ⓒ 시사저널 유장훈

 “운전자보험에만 들었어도….”

지난 5월1일 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화물트럭 추돌 사고를 놓고 보험사 관계자가 한 말이다. 화물차 운전자인 백 아무개씨(66)는 DMB(디지털 멀티미디어 방송)를 시청하면서 운전을 하다가 길가에서 훈련 중이던 여성 사이클 선수단을 쳤다. 이 사고로 사이클 유망주 박은미 선수 등 세 명이 숨지고 네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백씨는 화물공제조합 대신 삼성화재의 자동차종합보험에 가입해 있었다. 자동차보험은 대인 사고에 대해 무한, 대물 사고에 대해 보통 1억~2억원을 보상해준다. 문제는 각종 행정 및 소송 비용이다. 2009년 2월 헌법재판소가 교통사고 중상해 유발자에 대해 처벌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놓은 후 소송 비용이 급증하고 있어서다. 종전까지는 자동차보험에 가입한 사람에 한해 면책 범위를 폭넓게 해석했다.

이제는 중대한 교통사고를 낸 사람이 운전자보험이나 별도 특약에 들지 않았다면 수천만 원에 달하는 법률 비용을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 의성 교통사고를 낸 백씨는 운전자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운전자보험은 형사·행정상 책임 등 비용을 보장해주기 위한 보험이다. 교통사고에 대한 형사 처벌이 강화되는 추세와 맞물려 계약 건수가 한 해 2백만건 안팎에 달한다. 일반 자동차보험이 민법과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에 따라 민사상 책임을 보장해준다면, 운전자보험은 형법과 교통사고처리특례법, 도로교통법에 따른 형사상·행정상 책임을 보장하는 것이 다르다.

한 해 2백만건 가입하는 운전자보험의 함정

운전자보험은 형사 처벌 때 발생할 수 있는 벌금, 형사 합의금, 변호사 비용 등을 보상해준다는 것이다. 만에 하나 구속되면 ‘구속 일당’까지 준다. 행정 처분에 따라 운전면허가 취소 또는 정지되었다면 이에 따른 기회비용을 보장하기도 한다. 면허 취소·정지 위로금 명목이다. 자동차 견인과 보험료 할증, 렌터카 대여 등 사소한 비용까지 해결해준다.

운전자보험 가입 건수는 헌법재판소 판결이 나온 후인 2009 회계 연도(2009년 4월~2010년 3월)에 최고조에 이르렀다. 한 해 체결된 계약이 2백37만8천2백여 건에 달했다. 전년의 73만3천3백여 건과 대비해 세 배 넘게 증가한 수치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헌재 판결로 새로운 시장이 열린 것과 같았기 때문에 보험회사들이 운전자보험 가입자를 유치하기 위해 집중적인 마케팅을 펼쳤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듬해인 2010 회계 연도에는 1백63만1천7백여 건으로 30% 넘게 줄었다. 2011년 4월부터 올 1월까지는 71만9천100여 건에 그쳤다. 중대한 교통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예상만큼 높지 않다는 점을 체감한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보험회사들이 운전자보험을 대거 판매할 수 있었던 또 다른 배경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보험료이다. 월 1만원 내외이다. 일반 자동차보험의 평균 보험료인 연간 72만원에 비해 6분의 1 정도이다.

보상액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 자동차보험은 대인에 대해 무한, 대물에 대해 1억~2억원 정도를 보장한다. 소액을 추가하면 최대 10억원 정도까지 대물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추가 대물 보험료가 저렴한 이유는, 값비싼 수입차가 늘고 있더라도 수억 원의 보험금이 소요될 정도로 큰 사고가 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대인 보상금의 경우 피해자의 연령이나 직업 등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1인당 1억원 이상이다. 한 번 교통사고를 내면 이듬해부터 보험료가 오르는 구조이다. 최대 인상률은 100%이다. 인상된 보험료가 3년간 유지되다 1년에 10%씩 낮아진다. 반면 운전자보험은 최대 보상액이 2천만원 정도이다. 이를 넘어설 정도로 큰 비용이 든다면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

운전자보험이 법적 분쟁까지 책임을 져주지만, 몇 가지 예외 사항은 있다. 이 예외 사항에 해당되면 자동차보험에 운전자보험까지 추가로 가입했더라도 소용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가장 큰 것이 음주운전이다. 술 마시고 운전하다 중대한 교통사고를 내면 운전자보험 가입자라도 모든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술에 대해 관대한 문화 탓에 우리나라에서는 음주운전이 의외로 많다. 교통사고를 낸 후 뺑소니를 쳤거나, 무면허 상태에서 운전해도 마찬가지다. 운전자보험 가입자라도 보상을 거절당하는 사유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2009년 교통사고 중 운전자보험이 보상하지 않는 사고가 5만3백55건에 달했다. 전체 교통사고의 18.7%나 되었다.

운전자보험을 포함한 실손형 특약에 중복해서 가입했다면, 이 역시 가입자 입장에서는 손해이다. 모든 보험사를 통틀어 실제 발생한 비용만 보상해주기 때문이다. 이때 공제 상품을 취급하는 우체국까지 포함된다. 보험료를 두 배 이상 냈어도 소용이 없다.

예컨대 A사의 운전자보험에 가입한 사람이 B사의 벌금 담보 특약(2천만원 한도)에도 가입한 뒤 교통사고가 나 벌금 1천8백만원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고 치자. 이 경우 A사에서 9백만원, B사에서 9백만원씩 보상을 받게 된다. A사 보험에만 가입했다면 이 회사에서 1천8백만원을 받았을 것이다.

따라서 보장 내용이 같더라도 보험회사별로 특약 명칭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특별 약관 명칭을 보고 보장 내용을 유추할 것이 아니라, 해당 약관의 내용을 꼼꼼하게 읽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대표적인 것이 ‘할증 지원금’이다. 어떤 회사에서는 교통사고 후 보험료 인상분에 대비하기 위한 보장을 자동차보험료 할증지원금이라고 부르지만, 다른 회사는 안심 지원금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긴급 비용과 견인 비용도 같은 말이다. 자동차 사고로 인해 경찰서에 접수되었을 때 지급되는 보상금 역시 ‘교통사고 위로금’ ‘교통사고 범칙 위로금’ 등의 이름으로 불린다.

담보명이 지급 조건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중대 교통사고를 내 구속되면 ‘생활 안정 지원금’이라는 용어가, 입원해 있으면 ‘생활 유지비’라는 용어가 각각 쓰이는데 언뜻 보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DMB 시청에 대한 범칙금 조항 만들어야

경북 의성의 화물차 사고를 계기로 운전 중 DMB를 시청하는 행위를 강력히 단속하고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사고를 낸 백씨는 경찰 조사에서 “DMB를 보다 ‘쿵’ 하는 소리를 듣고서야 사고가 난 줄 알았다”라고 진술했다. DMB를 보면서 운전하는 행위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려주는 대목이다.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DMB를 보면서 운전하면 전방 주시율이 50.3%에 불과하다. 만취 상태에서 운전하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 면허취소에 해당하는 혈중 알코올 농도 0.1% 상태에서 측정한 전방 주시율은 72.0%로 조사되었다.

손보협회 관계자는 “시속 70㎞로 주행할 때 3초만 한눈을 팔아도 60m를 눈감고 달리는 셈이다. DMB 시청은 음주운전보다 훨씬 위험하다”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운전 중 DMB 시청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처벌 규정이 없어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이다. 반면 미국과 일본, 영국, 호주 등 해외에서는 운전 중 방송을 보면 최대 100만원 이상의 범칙금을 내야 한다.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자에 대해 6만~7만원의 범칙금을 물리는 한편 벌점 15점을 부과하는 점에 비추어 보아도 형평성에 어긋난다. 일반적으로 DMB 시청 중 운전은 휴대전화 사용 때보다 훨씬 위험하다.

DMB 시청 중 운전이 신호 위반 등 11대 중대 과실에 포함되지 않은 점도 문제이다. 피해자가 중상해를 입지만 않으면 DMB 시청 중 교통사고를 내도 형사 처벌할 수 없다. 실제로 2010년 발생했던 교통사고 사망 원인의 54.4%가 DMB 시청 등 전방 주시 태만으로 집계되었다. DMB 수신기를 단 차량이 최소 1천만대 이상 운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경각심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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