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젊은 김일성’, 새로운 길 찾나
  • 감명국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2.07.24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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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권좌에 오른 지 7개월이 지났다. 최근에는 그에게 ‘공화국 원수’라는 칭호까지 붙여졌다. 김정은이 북한 최고지도자로서 보여주는 행보는 아버지인 김정일과는 사뭇 다르다. 곳곳에서 변화의 기류가 감지된다. 모란봉악단의 파격적인 공연 등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장면들도 나타나고 있다. 과연 북한의 김정은 체제는 안정 궤도에 들어선 것일까. 또 개혁·개방에 나설 가능성은 있는가. <시사저널>은 ‘김정은 시대’ 북한의 현재와 미래를 알아보기 위해 국내 북한 문제 전문가 10인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평양 만수대 언덕에서 조선인민내무군과 기념 촬영을 한 후 손을 흔들고 있다. ⓒ 연합뉴스

북한이 변하고 있다. 20대 후반의 젊은 지도자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지금 보이는 행보는 분명히 예전에는 볼 수 없었을 정도로 파격적이다. 과거 아버지 김정일 시대의 은둔 이미지와는 확연히 차별화된다. 북한 권력 내부도 이제 카메라를 들이대고 보듯이 거의 실시간으로 외부에 노출되고 있다. 과거 특정 인사의 모습이 한동안 안 보이면 ‘숙청설’과 ‘실각설’만 난무하던 때와는 사뭇 달라졌다. 

평양을 바라보는 국내 북한 문제 전문가들의 시선에서도 예전에 보기 어려웠던 자신감이 묻어난다. 그만큼 예측 가능한 수준이 되었다는 뜻이다. <시사저널>은 지금의 북한 김정은 체제에 대해 좀 더 명확한 이해와 향후 전망을 하기 위해 국내의 북한 문제 전문가 10인에게 다섯 가지 질문을 던졌다. 대다수 전문가는 ‘북한은 변하고 있으며, 김정은이 주도하고 있다’라는 데에 공감했다.

이 과정에서 전문가들은 또 하나의 뚜렷한 특징을 지적하고 있다. 지금 김정은 제1비서가 의도된 하나의 이미지화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 김정일의 색깔 빼기’와 동시에 ‘할아버지 김일성 색깔 입히기’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지금 김정은의 행보는 김정일과는 분명 다르다. 그보다는 김일성과 많이 닮았다. 김일성은 포용의 이미지가 강한 반면, 김정일은 포용력이 좁은 독선적인 정치를 폈다. 김정은이 아버지의 부정적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떨쳐내려 하는 듯하다”라고 분석했다. 진희관 인제대 통일학연구소장은 “김정은이 현지 지도를 나가서 허리를 흔들듯이 건들건들 얘기하는 스타일은 과거 김일성의 스타일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다. 실제 북한 매체에서는 김정은을 가리켜 ‘수령님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든다’라며 의도적으로 김일성과 대비시키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북한 관련 국책 연구기관에 몸담고 있는 한 연구위원은 좀 더 단정적으로 말한다. 익명을 요구한 그는 “김정은은 새로운 자기 시대의 미래 비전을 김일성 국가로 돌아가는 것으로 잡고 있다. 인민들 입장에서 볼 때는 김일성 시대가 비교적 풍요로웠다. 비정상적으로 선군정치를 내세웠던 김정일 시대와는 달리 김일성 때는 당이 정상화된 시기였다. 김정은은 이번의 리영호 실각 조치로 당을 정상화하기 위한 수순을 밟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김정일과의 차별화’에 대한 분석은 계속 이어진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정은은 자신의 성장기를 자본주의 국가에서 보냈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직접 몸으로 느낀 지도자이다. 머리로만 생각했던 김정일과는 분명 다르다”라고 강조했다. 서보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는 “김정은은 과거 중국 일변도의 대외 관계를 동남아와 유럽, 일본 등으로 다변화시키고자 하는 시도를 꾀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군부를 바라보는 시각도 다르다는 지적이다. 백승주 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김정일은 야전군을 중시했지만, 김정은은 정치 감각이 있는 정치 군인이 더 필요한 입장이다. 군부에 대한 리더십에서도 아버지와 차별화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 리영호 축출 배경은?

(왼쪽부터) 현영철(ⓒ AP연합), 최룡해(ⓒ AP연합), 최영림(ⓒ 신화통신).
내부 권력 투쟁 과정에서 리영호를 중심으로 한 정통 군부가 장성택·김경희 등이 지원하는 당·정에 밀린 결과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10명 중 7명의 전문가가 이렇게 분석했다. 앞서의 국책 연구기관 연구위원은 “당과 군의 갈등이 표면화된 것이다. 북한 체제에서 당과 군의 구분이 모호한 것 같지만, 군에서 줄곧 성장한 정통 군부와 당에서 성장해서 군 호칭을 부여받는 정치 군인 간의 세력 갈등은 늘 존재했다. 현재 김정은은 당과 내각 쪽에 의도적으로 힘을 실어주고 있다”라고 밝혔다. 고유환 교수도 “아버지 시대의 선군정치 과정에서 과도하게 성장한 군부에 대해 김정은이 견제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고, 결국 이번에 본격적으로 칼을 빼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유동열 치안정책연구소 선임연구관은 “일각에서는 군을 대표하는 리영호와 당을 대표하는 최룡해의 권력 다툼으로 몰아가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최룡해에 대한 리영호의 불만은 곧 김정은이라는 절대 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중대 사안이었다”라고 분석했다.

반면 정성장 위원은 “권력 투쟁 성격이라기보다는 김정은 시대의 군을 전면 개편하는 마지막 작업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군부를 상징하는 리영호가 희생양이 된 것이다”라고 밝혔다. 서보혁 교수와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각각 “김정은 친정 체제를 확립하는 차원이다” “젊은 지도자 김정은의 스타일에 맞추기 위한 세대교체 차원이다”라고 분석했다.

■ 김정은의 권력 기반은 안정적인가?

집권 6개월을 넘기고 있는 어린 지도자 김정은의 권력 기반에 대해서 전문가들의 의견은 ‘안정적이다’(6명)가 ‘아직 불안하다’(4명)보다 조금 더 우세했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소장은 “생각했던 것보다 김정은의 정치력이 상당히 뛰어난 것으로 판단된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안정적인 속도로 가고 있다”라고 밝혔다. 정성장 위원도 “원래도 안정적이었지만, 지금은 더욱 그렇다”라고 밝혔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현재로서는 김정은을 대체할 만한 새로운 권력의 출현을 예상하기란 불가능하다”라고 말했고, 진희관 소장은 “단순히 안정화 단계가 아니라, 지금 지나치게 빨리 안정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김정은의 통치 스타일이 드러나려면 최소한 1년은 지나야 할 것으로 보았는데, 지금부터 이미 뚜렷한 김정은의 색깔이 드러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반면 서보혁 교수는 “김정은 중심의 엘리트 체제 구축은 어느 정도 이루어진 듯하다. 하지만 역시 김정은 체제가 안정화 단계로 접어들려면 경제 재건이 중요한데, 아직은 불안정하고 불확실하다”라고 진단했다. 유동열 연구관은 “아직 취약하다. 역시 김정은에게 제일 두려운 존재는 군부일 수밖에 없다”라고 밝혔다. 정영태 위원은 “이번 리영호 사태 역시 김정은의 기반을 안정되게 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으며, 아직은 김정은이 직접 북한을 이끈다고 보기는 어렵다”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 선군정치의 약화? 그렇다면 군부의 반발 가능성은?

지난 7월18일 박재경 북한 인민무력부 부부장이 김정은에 대한 ‘공화국 원수’ 추대를 발표하고 있다. ⓒ AP연합
북한은 선군정치를 내세우고 있다. 김정일 시대인 지난 1998년 헌법을 개정하면서 이를 제도화시켰다. 군이 곧 북한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는 김정은 시대에 접어들면서 군의 위상에 변화가 오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선군정치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전문가 10인 중 다섯 사람은 “김정일 시대의 선군정치 사상에 변화가 올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반면 네 사람은 “당장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라고 답했다.

진희관 소장은 “당 체제가 정비되면서 상대적으로 군의 위상이 약화된 것은 맞다”라고 밝혔다. 정영태 위원은 “그동안 군의 권한이 지나치게 비대해진 탓에 이미 김정일 때인 2009년부터 군을 서서히 약화시키는 조치가 있었다”라고 밝혔다. 정성장 위원은 “군에 대한 당의 장악력이 높아질 것이다”라고 전망했고, 백승주 위원도 “당이 정상화되어가는 과정에서 장성택과 최룡해 등에 힘이 더 실리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고유환 교수는 “그동안 군이 가졌던 비정상적인 경제권이 내각으로 환원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반면 ㄱ위원은 “선군정치의 간판을 당장 내리기는 쉽지 않다. 김정은은 선군정치 계승자로서의 정당성 때문에라도 당분간은 더 갖고 갈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이윤걸 소장도 “군대의 힘은 이미 한껏 커졌다. 단기간에 힘을 빼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밝혔다. 기타 의견으로는 “북한은 기본적으로 당 국가이기 때문에 원래부터 당이 우선이었다. 다만 선군정치는 김정일이 전략적으로 내세운 구호에 불과하다”(서보혁 교수)라는 주장도 있었다.

한편 군의 상대적 위상 약화와 리영호 실각에 따른 군부의 집단 반발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일각에서는 군부 쿠데타 가능성까지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절대다수가 한결같이 “현실성이 없다”라며 고개를 젓고 있다. 10명 중 9명이 그렇게 답했다.

이윤걸 소장은 “쿠데타 가능성 및 군부 반발설은 북한을 모르는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이다”라고 일축했다. 정영태 위원도 “북한 체제에서 군을 독자적인 조직으로 얘기하기는 어렵다. 우리 식의 사고에서 비롯된, 잘못된 이해에서 나온 가설이다”라고 그 가능성을 부정했다. 임을출 교수는 “북한도 이제 모든 것이 베일에 싸일 수만은 없다. 다양한 소스가 외부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군부의 동향도 금세 포착이 된다”라고 밝혔다. 유동열 연구관은 “일찌기 김정일은 북한군을 군(행)정권은 인민무력부, 군수지원은 후방총국, 보위사업은 보위사령부, 인사사업은 간부국 등으로 철저히 분권화시켜 군령권을 행사하는 총참모장이라 해도 집단 반발이나 구테타 자체가 불가능하게 되어 있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ㄱ위원은 “당장 군 내부의 집단 행동을 목격하기는 어려울 것이지만, 리영호라는 인물이 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컸기 때문에 내부 불만이나 갈등이 쌓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차후 이 갈등이 어떻게 표출될지는 알 수 없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 ‘김정은 시대’의 핵심 실세는 누구인가?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에 대한 전문가들의 견해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사실상 북한을 통치하는 숨은 권력자’로 주목하는 시선도 있고, ‘고모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는 평가 절하도 있다. 하지만 역시 대다수 전문가는 리영호 실각 이후 김정은 시대 핵심 실세로 장성택·김경희 부부를 첫손에 꼽았다. 주목해볼 만한 파워엘리트 집단 역시 이들 부부의 최측근 인사들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영태 위원은 “결국 모든 권력은 장성택·김경희 부부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라고 밝혔다. 유동열 연구관도 “이들 부부의 영향력은 당·정·군 모든 분야에서 절대적이라고 판단된다. 두 사람이 만약 딴 마음을 먹으면 김정은도 위험해질 수 있다”라고 밝혔다.

 백승주 위원은 둘 중에서도 특히 장성택에 주목한다. 그는 “지금 북한은 바야흐로 장성택의 시대이다”라고 단언했다. 반면 이윤걸 소장은 “김경희가 핵심이다. 장성택의 역할설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리영호를 대신할 만한 군부 파워엘리트로는 신임 총참모장에 임명된 현영철을 주목하는 의견이 많았다. 고유환 교수와 ㄱ위원은 “리영호가 실각하자마자 바로 총참모장에 올랐다는 점이 김정은의 각별한 신임을 보여준다”라고 밝혔다. 반면 정성장 위원은 “현영철은 리영호만큼의 파워는 아니다. 그렇다면 결국 김경희·장성택 부부를 중심으로 최룡해 총정치국장이 큰 역할을 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이윤걸 소장도 “최룡해가 실권을 쥐게 될 것이다. 당과 함께 군부도 장악할 수 있는 인물이다”라고 밝혔다. 정영태 위원 역시 “장성택·김경희 부부의 최측근 세력인 최룡해와 김경옥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의 힘이 커질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경제 분야 인물도 주목되고 있다. 정성장 위원은 “최영림 내각 총리, 경제를 담당하는 노두철 부총리 등 당·정 인물에 무게가 쏠릴 것이다”라고 보았다. 서보혁 교수는 “과거 좌천되었다가 최근 다시 복귀한 박봉주 경공업부장이 주목된다. 북한에서는 웬만해서는 좌천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예가 드물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진희관 교수는 “최영림이 이끄는 내각의 역할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한편 진교수는 “김정은의 절대 권력 앞에서 제대로 권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김정은이 각 분야의 실무진에 힘을 실어주는 정도에 그칠 것이다”라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 김정은, 개혁·개방으로 갈 것인가?

김정은 시대, 북한은 개혁·개방의 물결을 탈 것인가?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10명 중 8명이 “결국 개혁·개방으로 가게 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속도에 대해서만 조금씩 견해를 달리했을 뿐이다.

고유환 교수는 “자신의 성장기를 자본주의 국가에서 직접 보낸 김정은은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경제 발전 모델을 찾을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진희관 소장도 “지금 놀라운 변화가 실제 북한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다. 미국을 향한 메시지도 강렬한 수준이다. 개혁·개방의 속도는 상상 이상으로 빨라질 수도 있다”라고 전망했다. 정성장 위원은 좀 더 구체적으로 “다음 달부터 당장 가시적인 조치가 나올 것이다. 무역과 서비스 분야에서 자율성을 부여하는 조치가 그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정영태 위원은 “이미 북한에는 개혁·개방이 들어와 있다. 배급 체제에서 임금 체제로 현실화시킨 ‘7·1 조치’ 자체가 사실 엄청난 변화이다. 단, 북한은 공식적으로는 개혁·개방이라는 용어를 절대 쓰지 않을 것이다. 즉, 구호 없는 개혁·개방을 하고 있는 셈이다”라고 설명했다. 서보혁 교수는 “북한 지도자가 누구이든지 간에 구조적으로 개혁·개방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놓여 있다”라고 밝혔다.

반면 임을출 교수는 “급진적인 변화는 어렵다. 잘못 건드리면 자칫 자기 자신의 목줄을 겨누는 비수가 될 수 있다. 다만 개혁·개방의 불가피성은 인식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유동열 연구관은 “개혁·개방으로 간다는 것은 엉터리이다. 김정은에게 죽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자유 시장 경제 체제를 받아들이는 순간 김씨 왕조는 무너지는 것이다”라고 가능성을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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