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의 심정으로 고통에 공감했지만 판결은…”
  • 이규대 기자 ()
  • 승인 2012.09.17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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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 지 아무개군 존속 살인 사건 항소심 맡았던 조경란 법원도서관장

ⓒ 시사저널 이종현
그날, 판사는 어김없이 도수가 낮은 안경을 썼다. 판결을 선고할 때마다의 습관이었다. 자신의 입을 통해 형벌을 언도할 때, 가급적이면 피고인의 눈을 바라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고등법원의 형사 재판에서는 실형을 선고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형벌의 당사자인 피고인이나 그의 가족들 앞에서 판사로서의 냉정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 그가 공판 때마다 일부러 도수 낮은 안경을 찾는 이유이다.

그런데 그날, 판사 앞에는 앳된 얼굴의 소년범이 서 있었다. 지난해 3월, 뛰어난 성적을 강요하며 자신을 지속적으로 체벌해온 어머니를 살해한 지 아무개군(19)이었다. 지군의 범행은 그가 약 8개월간 방치했던 어머니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불러일으킨 사건이었다. 판사는 이런 정황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럴수록 더욱 지군 쪽을 바라보지 않으려 했다. 판사는 차갑고 건조한 말투로 피고인과 검찰이 제기한 항소심 판결 선고를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정당방위를 주장한 피고인측 주장, 형량이 너무 낮다는 검찰측의 주장을 차례로 반박했다. 지군에게는 원심과 같이 징역 장기 3년 6월, 단기 3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피고인 부자의 반성문·탄원서에 마음 움직여

특이한 일은 형량을 선고한 바로 다음에 일어났다. 판사가 스스로 미리 준비해온 문구를 읽기 시작했다. 양형 이유에 대해 예외적으로 설명을 덧붙였다. 판사는 “피고인과 같은 사춘기 자녀를 둔 어미로서 지군과 지군 아버지의 죄책감과 고통을 가슴 깊이 공감하고 이해한다”라고 말했다. 판사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판사의 말은 흐르는 눈물과 함께 이어졌다. 선고는 “피고인을 아버지 품으로 바로 돌려보내지는 못하지만, 어미의 심정으로 피고인 부자가 의지하는 하나님께 피고인의 장래를 위해 기도할 것을 약속한다”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지난 9월6일 오전, 서울고등법원의 한 법정에서 일어난 일이다. ‘눈물의 판결’을 내린 이는 조경란 당시 서울고법 부장판사(52·여)였다. 그로부터 6일 후인 9월12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를 위해 대법원 내 자신의 집무실에서 기자와 마주한 그는 법원도서관장으로 막 자리를 옮긴 직후였다. 조관장은 판사 특유의 차분하고 담담한 어조로 그날의 일을 술회했다. 하지만 지군의 사연이나 자신이 경험했던 형사 재판들을 돌아보면서 더러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조관장은 지군의 가족이 지닌 사연에 몹시 가슴이 아팠다고 한다. 남편과 헤어지고 친지들과 왕래가 없던 지군의 어머니가 겪었을 외로움, 지군이 경험해야 했을 스트레스와 공포, 그로 인해 지군의 아버지가 느꼈을 괴로움 등이 모두 가슴을 찌르는 듯이 다가왔다는 것이다. 조관장은 “이 사건에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무너진 가정, 청소년기의 과도한 학업 부담 등이 한꺼번에 모인 사건이었다”라고 평가했다.

특히 피고인 부자가 제출한 글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조관장은 지군의 반성문 및 지군 아버지의 탄원서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피고인이 낸 반성문을 보니 앞으로 가능성이 있는 아이라는 느낌이 왔다. 진정성이 느껴졌다. 아버지가 쓴 탄원서를 통해서는 앞으로 아이를 잘 관리해줄 수 있겠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라고 전했다. 특히 한 사람의 어머니로서, 지군의 아버지가 느낄 고통에 깊이 공감했다. 법정에 증인으로 나왔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 마음이 어떠할지 생각했다. 절로 목이 메었노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판사였다. 인간적인 연민과는 별개로 냉정한 판단을 해야 했다. 판사로서 그가 내린 결론은 항소 기각, 즉 원심과 같은 형량의 실형 선고였다. “설령 지군을 집행유예로 석방한다 해도 그 애가 또 비슷한 죄를 저지를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꼭 실형에 처해야 할지 고민이 있었다. 하지만 형벌은 특정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 질서의 차원 그리고 앞으로 같은 일이 있을 경우 (처벌의) 기준 등도 고려해야 했다.” 감옥에서의 생활이 지군 스스로에게도 유익할 수 있다는 생각도 포함되었노라고 말했다.

그런데 결론을 내리고 난 뒤에도 마음은 편해지지 않았다. 판사로서의 냉정하고 합리적인 판단, 자연인이자 어머니로서의 안타까운 심정, 이 둘 사이의 간극이 조관장의 가슴을 더 아프게 후벼팠다. 조관장은 자신의 결론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는 한편, 지군과 그의 가족에게 격려하는 말을 건네주고 싶었다. “이 사람들에게 내 마음을 보여주고 싶다. 비록 내가 항소를 기각(하여 실형을 선고)하지만, 결코 내가 당신들의 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라는 것이다.

이를 행동에 옮기기까지는 고민이 많았다. ‘하고 싶다’라는 마음과 ‘굳이 해야 하나’라는 마음이 서로 충돌했다. 법관으로서 적절한 처신일지 의문도 들었다. 선고 당일 아침까지도 수차례 망설였다. 결국 선고 직전에서야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적어 나가기 시작했다. 마음을 전달할 말을 몇 마디만 간단하게 적을 생각이었다. 그럼에도 말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온갖 상념이 얽혔기 때문이다. 그동안 느꼈던 것을 짧게 정리해 어렵게 글을 완성했다.

“법관이 할 수 있는 역할 너무나 제한되어 있음에 안타까워”

선고에 들어가기 직전에는 기도를 했다. 부디 눈물을 흘리지 않게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조관장은 “담담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평소 마음이 약한 편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도까지 했는데 울음이 절제가 안 되더라.(웃음) 배석했던 다른 판사가 휴정을 권했지만,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선고를 이어나갔다”라고 회고했다.

조경란 관장은 지난해 서울고법에 부임한 이후 형사 재판을 담당해왔다. 본격적으로 중범죄를 다루게 된 첫 경험이었다. 과거 젊은 법관 시절 지방법원에 근무하며 형사 재판을 담당한 적은 있었지만 대부분 교통사고, 가벼운 폭력, 단순 절도에 국한되었다. 경제 사범, 강력범 등 중형을 저지른 이들에 대한 재판을 진행하면서, 조관장은 우리 사회의 ‘진짜 모습’과 마주하게 되었다.

안타까운 사연들과 수없이 마주쳤다. 형사 재판의 피고인 및 그의 가족들은 사회 밑바닥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피고인들 중에는) 어려서부터 가정에서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이 많다. 부모가 이혼 또는 가출한 경우, 계부모에게서 학대받은 경우, 조부모 밑에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자란 경우 등이다. 특히 폭력이나 성범죄 등이 그렇다.”

중범죄의 근원에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있음을 직접 목격했던 것이다. 이들을 단순히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명백해 보였다. ‘피고인들이 나중에는 어떻게 살아갈까’ ‘출소해서 재범을 저지르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지 않을까’ 같은 생각이 조관장을 괴롭혔다. 판사로서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답답함과 무력감마저 들었다고 한다.

결국 조관장의 고민은 법관으로서 사회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는 사명감 그리고 사회의 ‘맨 얼굴’에 직면하며 느꼈던 무력감 사이에 있었던 것이다. 그가 재판정에서 흘린 눈물도 이런 고민의 연장선에 있었다. 이에 대해 조관장은 “어려운 가정에서 성장한 이가 중범죄를 저지르고, 이것을 합의로 해결하기 위해 늙은 부모가 대출에 손을 대는 모습 같은 것을 보면 정말 가슴이 아프다. 비록 법관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너무나 제한되어 있지만,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좀 더 건전해져야 할 필요성만은 절실히 느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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