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 표창원│경찰대 교수 ()
  • 승인 2012.11.13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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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모임 ‘발자국’ 회원들이 지난 9월7일 서울역 광장에서 아동 성폭행 추방을 위한 촛불집회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1985년 캐나다에서 행해진 와이즈버그의 연구에서, 중범죄를 저지르고 연방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여성 중 53%가 아동 성폭행 피해자였고, 청소년 성매매 여성 중 60~70%가 아동 성폭력, 특히 친족에 의한 성폭력 피해 생존자라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아동 성폭력 피해자의 정신적 상처가 제대로 치료되지 않을 경우 범죄 가해자로 변하거나 성매매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등 심각한 후유증이 뒤따르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인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피해자가 가해자를 공격하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형태의 분노 표출은 매우 예외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대다수 피해자는 분노와 상처, 고통을 안으로 삭인 채 안고 살아간다.

특히 자신이 중요하지 않은 사람, 쓸데없는 존재라고 느끼는 낮은 자존감과 자신을 싫어하는 자기혐오, 극심한 우울감 등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사람에 대한 ‘신뢰’ 자체를 잃고 의심과 경계에 휩싸여 사회 관계 형성에 커다란 어려움을 겪는다.

악몽과 불면증 등 수면 장애는 부산물처럼 뒤따른다. 시간이 오래 흐른 뒤에도 피해 당시 상황이 떠오르고 극심한 공포를 경험하는 ‘플래쉬 백(Flash back)’ 현상은 피해 생존자뿐 아니라 그 가족들에게서도 자주 나타난다.

특히, 아동 성폭력 피해 생존자에게서 발견되는 특징적인 현상 중 하나가 ‘해리(dissociation)’ 증상이다. 해리는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나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했을 때 마음이 도망갈 장소를 마련하는 능력이다”라고 풀어 설명할 수 있다.

성폭력을 당하는 그 고통스러운 순간을, 혹은 그 기억을 그대로는 도저히 감당하거나 이겨낼 수 없는 어린이들에게서 몸으로부터 마음을 분리해내 다른 곳으로 보내 숨게 하고는, 마치 그 고통을 겪는 몸이 자신이 아닌 것처럼 느끼는 해리 상태가 자주 발견된다.

한편으로는 ‘해리 능력’ 덕분에 그 참혹한 피해를 겪고도 마음이 부서지지 않고 버텨낼 수 있지만, 다른 측면으로는 피해가 즉시 발견되지 않거나 피해의 충격을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다중인격장애 환자 중 98%가 아동 성폭력 피해자라는 연구 결과도

더 심한 경우에는, 해리의 결과 아예 마음속에 성폭력 피해 자체를 알지 못하는 ‘다른 인격’이 만들어진 뒤, 살아가는 내내 그 상태가 지속되어 한 몸에 서로 다른 여러 인격체가 공존하는 ‘다중인격장애’라는 심각한 정신 장애를 앓게 되기도 한다.

1991년에 마르고 리베라가 행한 다중인격장애자 대상 연구는 큰 충격을 불러일으켰는데, 조사 대상이었던 1백85명의 다중인격장애 환자 중에 무려 98%가 아동 성폭력 피해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심각하고 다양한 아동 성폭력 피해 후유증의 원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설명이 김부남씨 판결에서도 언급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과거 미국에서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들의 사회 부적응에 대한 연구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1980년에 미국 정신의학회는 ‘정신질환의 임상 및 통계 교본 제3집(DSM-III)’의 질병 분류 체계에 PTSD를 질병의 하나로 추가했다.

세계보건기구는 ‘국제질병분류’의 제10호에 이를 추가했다. 최근에는 교통사고나 산재 사고와 같은 돌발적인 사고, 열차·비행기 등의 대형 참사, 성폭력과 같이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범죄 등을 겪은 피해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증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화성 씨랜드 화재 사건 이후, 피해자 부모들 다수가 PTSD 증상을 보여 이슈화된 적이 있고, 대구 지하철 방화 참사 피해 생존자와 유가족 다수가 PTSD 진단을 받았다. PTSD의 과학적 근거와 임상적 표현을 이해하는 열쇠는 ‘쇼크, 충격을 뜻하는 심리적 외상’의 개념이다.

PTSD는 극한적인 위협이나 공포를 겪고 난 뒤 나타나는 여러 가지 정신·신체 증상을 가리키는 의학 용어로, 전형적 증상은 공포스런 사건의 상상적 재경험, 정신적 둔마, 자율신경 과민, 우울증, 정신지체 장애, 주정 중독, 심할 경우에는 만성 정신분열증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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