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땅에 때아닌 골드러시
  • 조홍래│편집위원 ()
  • 승인 2012.12.31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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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부자들, 돈세탁 차원의 금괴 엑소더스 극성 카르자이 대통령 동생까지 연루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 위치한 금 거래소의 모습. ‘금’이 나지 않는 아프간에서 최근 금괴 유출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 EPA 연합
2014년 말까지 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 철군을 앞둔 미군 당국은 요즘 머리가 아프다. 연일 거대한 규모의 금괴들이 합법을 가장해 외국으로 반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러는 가방에 넣고, 더러는 주머니 깊숙이 숨겨 해외로 빼내고 있다. 금괴 유출 러시에 머리 아픈 또 다른 이들은 아프간 관리들이다. 금괴가 반출되고 있는 이유는 돈세탁 때문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미군 철군 이후 탈레반의 공격과 그에 따른 아프간 경제 붕괴를 두려워하는 부자들이 미리미리 안전한 곳으로 돈을 빼내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금괴들은 주로 민간 여객기를 통해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수도인 두바이로 나가고 있다. 승객들은 1인당 수하물의 최고 한도까지 금괴를 운반한다. 그러다 보니 머리 위 선반에서 금괴 가방이 떨어지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아프간에서 두바이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면 ‘화물 추락에 주의하라’는 기내 경고 방송을 들을 수 있을 정도이다. 어떤 승객은 아이폰 크기의 금괴 27㎏을 손에 들고 나갔다. 이 금괴의 시가는 1백50만 달러에 달한다. 금괴를 빼내려고 하는 승객들은 이른 아침 비행기를 이용하는데, 이는 그 시간이 덜 붐비기 때문이다.

금은 생산되지 않는데 금괴는 늘어

이들의 금괴 반출은 완벽한 신고를 거치기 때문에 합법적이다. 금괴는 대부분 금 딜러들이 맡아 빼내고 있다. 이들은 금괴를 가지고 두바이로 날아가 낡은 보석이나 귀중품으로 교환한다. 새로 얻은 낡은 보석 등은 페르시아 만의 보석상에서 새 것으로 가공된다. 아프간에서 얻은 미심쩍은 금괴가 의심할 여지없는 보석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다.

금괴 반출은 지난 10월 중순부터 시작되어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이다. 특히 아프간 금융계에서 확산되고 있다. 아프간의 ‘금 엑소더스(탈주)’ 이야기는 이내 아프간과 미군 관리들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이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하나이다. ‘도대체 이 금들이 어디서 오는가?’

현재 아프간에서는 금이 거의 생산되지 않는다. 단지 금광 개발 계획만 있을 뿐이다. 이 땅 위에 없는 금이 ‘금괴’로 등장하니 어디서 오는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또 그처럼 많은 금이 다른 곳도 아닌 두바이로만 몰리는 것도 미스터리이다.

아프간 중앙은행장 누룰라 델라와리는 “금괴 유출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으며, 이것이 돈세탁을 위한 것이라면 ‘개입’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문제가 그의 말대로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델라와리는 인터뷰에서 “누가 말해주지 않는다면 도저히 금의 출처를 알 수 없다는 것이 지금의 고민이다”라고 고백했다. 미군도 모르고, 아프간 관리도 모른다. 아프간 경제를 관찰하고 있는 유럽의 인사들도 도저히 알 수 없다는 표정이다. 게다가 이것이 아프간 전쟁의 끝 그리고 철군과 관련되었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의문은 증폭되고 있다. 

아프간 경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진작부터 수수께끼였다. 금융 거래의 90%가량은 은행 밖에서 이루어진다. 서류를 통한 거래는 거의 없다. 영수증을 주고받는 경우도 드물다. 정부에서 발표하는 금융 거래에 관한 통계는 믿을 것이 못 된다. 돈세탁이 일상처럼 되어 있고, 자연스레 금을 선호하는 관행이 생겼다. 바로잡으려는 시도도 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불법 금융 거래를 단속하는 미국 관리들은 “금융 거래 자체가 너무 뒤죽박죽이어서 어쩔 도리가 없다”라고 혀를 내두른다.

매일 수도 카불의 활주로에서 이륙하는 여객기에는 금보다 훨씬 많은 양의 현금이 운반되고 있다. 현금은 달러, 유로, 사우디의 리알화 등 다양하다. 돈은 여행 가방, 상자, 심지어 화물 상자 밑창에도 들어간다. 지금은 운항이 중단되었지만 두바이행 파미르 여객기의 경우 음식 카터 속에도 현금이 은닉되곤 했다. 아프간 중앙은행 추산에 의하면 2011년에만 약 45억 달러(4천8백억원)의 현금이 공항을 통해 밀수되었다. 아프간 재건을 위해 들어간 미국 특별감찰단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단속을 해도 속수무책일 뿐 돈세탁은 만연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이 돈세탁을 우려하는 것은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자금 지원과 마약 거래, 기타 불법 활동과 관련되어 있다고 추정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현금으로만 밀반출되다가 이제는 금괴가 추가되었는데, 이것들이 주로 두바이로 향하는 이유는 통관이 쉽기 때문이다. 두바이의 세관 관리들은 이런 유동 자산들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지 않고 쉽게 통관을 허락한다. 그래서 아프간의 부자들은 돈과 가족을 아랍에미리트에 피신시키고 종전 후 아프간 경제가 붕괴될 경우에 대비해 돈과 금괴를 두바이에 보내 은닉하고 있다. 두바이는 아프간이 보낸 검은돈의 천국과 같은 곳이다.

금괴의 배후에 이란 관련설도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미군 관리들은 불법 활동과 연관이 있다고 추측하고 있다. 아편 밀수나 부정부패 혹은 탈레반에 의한 징세를 피해 두바이로 자산을 옮긴다고 보고 있는데, 아프간 경제가 워낙 그런 식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이상할 것도 없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아프간의 금 거래에 이란이 관련되었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란은 미국과 유럽연합(EU)의 경제 제재를 희석시키기 위해 두바이에서 달러와 금괴를 사들이고 있다. 아프간 카불의 딜러들은 이란이 희귀 금속을 구입하는 것을 도와주고 있다. 대금은 석유나 이란 리알화로 결제되는데, 리알은 즉시 아프간으로 유입되어 금괴 구매 자금으로 사용된다. 금괴는 두바이로 반출되어 달러로 교환된다. 이 달러는 다시 중국으로 밀반입되어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는 데 사용되거나, 아니면 이란으로 되돌아 흘러간다. 딜러들은 이란을 돕는 사람들의 신원을 밝히기를 거부하고 있지만, 딜러들의 말을 통해 거래 과정과 돈세탁 정황은 어느 정도 드러난 상황이다.

금괴 반출이 불법 금융 거래의 부산물인 점을 밝히기 위해서는 거래되는 금의 양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 금괴 반출에 세금을 부과하는 아프간 재무부는 그 수치를 공개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세관 관리들의 입을 통해 어렴풋이 금 거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금괴 탁송은 여름부터 증가했다. 5㎏의 금괴를 손으로 들고 나가는 승객도 있었다. 무거운 금괴를 운반하기란 쉽지 않지만, 그런 어려운 일이 다반사로 일어났다. 아프간을 빠져나가는 금괴의 양을 모르고서는 거래 금액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공항 관리들의 말에 따르면 2012년 10월 2주간 약 2백20㎏, 환산하면 약 1천4백만 달러(약 1백50억원) 정도의 금괴가 반출되었다고 한다. 이런 거래가 지금 세계 10대 최빈국 중의 한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사정은 미국이나 아프간 관리 혹은 유럽 전문가들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3월 아프간을 방문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에게 아프간 재건의 전제 조건으로 부패 척결을 요구했다. 하지만 부패는 줄어들지 않고 현금과 금괴 거래가 더 활성화된 점은 아이러니이다. 게다가 아프간 부패의 중심에는 카르자이 대통령의 동생도 끼어 있다. 미국은 아프간에서 미군 1천명의 생명을 잃고 2천억 달러의 전쟁 비용을 지출했다. 그 지난했던 전쟁을 마감하려는 순간에 등장한 금괴 유출 러시는 철수를 앞둔 미군에게 또 하나의 장벽으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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