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가족’ 향해 누그러지는 시선들
  • 강성운│독일 통신원(쾰른) ()
  • 승인 2013.02.27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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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프랑스, 동성 결혼 합법화

프랑스와 독일이 동성애자들의 평등권에 관해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프랑스 하원이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데 이어,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동성 커플의 입양권을 개선하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2월12일 프랑스 하원에서 동성 결혼 합법화 법안이 가결되었다. 2011년 당시 사회당 대선 후보였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건 이 법안은 동성 결혼 합법화, 동성 커플의 입양 허용, 필요 시 민법상 부모 명칭 변경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법안이 제출된 이후 프랑스 사회에서는 뜨거운 찬반양론이 오갔다. 올해 1월11일 이 법안의 본회의 상정이 확정되자 이틀 뒤인 13일 수도 파리에는 34만여 명(정부 공식 집계)이 모여 대대적인 반대 시위를 벌였다. 지난 1984년 사립학교에 대한 재정 지원 철회를 담은 이른바 ‘사바리 법’ 반대 시위 이후 최대 규모였다.

1월27일 프랑스에서 열린 동성 결혼과 입양에 찬성하는 집회에서 한 동성 커플이 예식 복장을 하고 있다. ⓒ A연합
“동성 커플 아이들, 발달에 문제없다”

특히 논란이 된 것은 동성 부부의 입양권이었다. 프랑스의 여론조사 기관인 IFOP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프랑스 국민의 3분의 2가량이 동성 결혼은 찬성했지만, 동성 부부의 자녀 입양에 찬성하는 사람은 과반수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성 결혼 합법화 법안은 10여 일간의 토론을 거쳐 찬성 3백29표, 반대 2백29표로 하원을 통과했는데, 상원의 동의를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당 내부에서도 아직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3월24일로 예정된 대대적인 반대 시위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일부 극우 가톨릭 단체는 동성 결혼 자체에 대해서도 완강하게 반대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부부는 원래 ‘남자와 여자의 결합’이라는 전통적 입장을 넘어 “오늘 동성 결혼을 허락하면, 내일은 다부다처제도 허락하게 된다”며 자극적인 선동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또한 “아이들은 남성과 여성의 영향을 모두 받으며 자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반면, 법안을 찬성하는 측에서는 “이미 동성 커플을 부모로 둔 아이들이 많이 있으며, 연구 결과 이 아이들이 전통적인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과 같은 발달 상태를 보였다”고 반박하고 있다. 현재 프랑스에서 동성 커플을 부모로 둔 자녀의 수는 3만여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독일의 주간지 <디 차이트>는 실제로 두 엄마 밑에서 자란 라파엘 뮈니에르 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번 법안 통과가 동성 커플과 그 자녀들이 함께 이끌어낸 성과임을 강조했다. 뮈니에르 씨는 “법안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실제 사례를 단 하나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판단을 내린다”고 비판했다. 이른바 ‘무지개 가족(동성 부부와 아이가 결합한 가족)’에서 자란 그녀는 자신에게 엄마만 두 명이 있다는 것이 ‘완전히 평범한 일’이었다고 밝혔다. 마찬가지로 ‘무지개 가족’에서 자란 셰발리에는 지난해 의회에서 의원들에게 자신의 성장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결국 프랑스의 동성 결혼 합법화 논쟁의 핵심은, 이미 사회적 현실로 자리 잡은 동성 결혼과 동성 커플의 자녀 양육을 정치와 법·제도가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가리는 문제이다. 독일의 일간지 쥐트도이체 차이퉁도 “상원이 이 법안을 부결하더라도 하원이 이를 무시할 수 있다”면서 법안 통과가 사실상 시간문제라고 밝혔다.

프랑스 하원이 법안을 가결시킨 지 일주일 후인 2월19일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동성 커플의 ‘순차적 입양 금지’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다. 독일도 지난 2001년 ‘생애 파트너 등록제’를 도입했지만, 프랑스의 ‘시민 자유 결합’과 달리 그동안 입양은 물론 세금, 상속, 가족 보조금 등에서 결혼한 부부와 차등을 두어왔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보도자료를 통해 “생애 파트너로 등록된 사람의 입양 자녀를 다른 한쪽이 입양하지 못하도록 한 ‘순차적 입양 금지’는 해당 아동은 물론 해당 파트너의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위헌 사유를 밝혔다. 그동안 ‘순차적 입양’은 이성 커플에 한해 허락되었는데, 이로 인해 함께 아이를 키우는 동성 커플 중 한쪽에만 친권이 주어지면서 많은 문제가 야기되었다. 입양된 아이는 법적으로 편부모 가정의 아이로 취급되었고, 친권이 없는 양육자는 자녀의 교육과 의료 문제에 대해 아무런 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극단적인 경우 친권자가 사망하면 파트너의 자녀를 전혀 낯선 곳으로 보낼 수도 있었다. 헌법소원을 제기한 함부르크의 두 남성도 “당연히 평등권이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아이에 대한 염려 때문에 소원을 청구하게 되었다”고 동기를 밝혔다. 이번 판결로 동성 커플 양쪽 모두가 입양아의 친권자가 될 수 있게 되었다.

보수 정당들의 인식도 변화

프랑스와 달리 이번 헌재의 판결에 대해 독일 사회의 반대 의견은 조용한 편이다. 야당인 녹색당의 클라우디아 로트 대표는 “사회의 대다수가 이미 ‘무지개 가족’의 자녀들을 포함한 어린이들의 안녕과 동성애자들의 평등한 권리를 중요시하고 있다. 순전히 이념에 불과한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은 더는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헌재와 헌법소원을 청구한 부모들에게 “존경을 표한다”라고 짤막한 의견을 밝혔다. 귀도 베스터벨레 외무장관은 판결이 내려진 다음 날 이례적으로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정치적으로, 또한 개인적으로도 몹시 기쁘다. 동성 파트너에 대한 차별은 이미 시대에 뒤처진 일이다. 정치권이 초당적으로 움직여야 할 때이다”라고 밝히고 야당인 사회민주당(SPD) 및 녹색당과 함께 움직일 것임을 시사했다. 친기업 자유주의 성향의 자유민주당(FDP) 소속 국회의원인 베스터벨레는 지난 2010년 생애 파트너 등록을 마쳤다.

반면, 동성 결혼에 대해 반대 입장을 유지해온 기독민주연합(CDU)은 말을 아꼈다. 독일의 보수 정당이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동성애자 평등권에 관해서 독일 사회가 대체적인 합의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보수 정당들의 인식이 변했다는 데 있다. 이들은 달라지고 있는 사회상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다.

가톨릭교회의 윤리적 위상이 추락하면서 교회에 등을 돌리는 사람이 늘어났고, 반대로 보수적인 삶의 양식을 대표하는 ‘결혼’을 택하는 동성애자가 증가하면서 동성 결혼을 섣불리 반대할 수 없게 되었다. 이혼율이 50%에 육박하고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파문이 끊이지 않는 현실 앞에서 결혼의 신성함을 주장하는 일부 교조주의자들의 목소리는 이미 힘을 잃었다. “결혼이 그렇게 신성하다면 동성 결혼이 아니라 이혼을 금지하라”는 반론에 말문이 막힌 것이다. 이처럼 독일 내 보수 정당과 가톨릭교회는 변화한 사회가 세운 시험대 위에 올라 있다. 동성 결혼을 대하는 이들의 향후 행보에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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