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빼고, 내쫓고
  • 윤길주 편집국장 ()
  • 승인 2013.10.08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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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갑이다. 계급은 필요 없다. 대통령과 얼마나 가까이 있느냐가 중요하다. 진영 보건복지부장관 사표 사태는 코미디다. 본인은 양심 어쩌고 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청와대에 말발이 먹히지 않으니까 사표를 던진 거다. 스스로 무력감을 느낀다고 하지 않았나. 진영 사태는 ‘갑’이 ‘을’을 챙기지 않아서 생긴 일이다. 장관이 얘기를 하면 들어봐야지 대통령 뜻과 다르다고 해서 ‘닥치고 가만히 있어’ 하면 뭐가 되겠나.”

지난 정권에서 청와대 수석과 경제 부처 장관을 지냈던 분의 얘기입니다. 그는 대통령 주변에 세상 돌아가는 것을 있는 그대로 얘기해주는 사람이 없는 게 큰 문제라고 하더군요. 박근혜정부에서 힘깨나 쓴다는 진 장관이 이럴진대 다른 장관들은 처지가 어떻겠냐며 혀를 찼습니다.

여당의 행태도 꼴사납습니다. 진 전 장관은 ‘박의 황태자’로 불리는 실세였습니다. 그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있을 때 많은 이들이 인사 청탁을 하려고 줄을 섰던 사실을 기억합니다. 지금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배신자’ ‘비겁자’라며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출당시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어제의 동지를 한순간에 ‘몹쓸 놈’으로 매도하는 세태가 씁쓸합니다. 진 전 장관이 무책임하게 장관직을 내팽개친 게 잘못됐다 하더라도, 왜 이 지경까지 오게 됐는지 복기하고 반성하는 태도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대통령이 결정하면 무조건 따른다’는 충성 경쟁만 있을 뿐입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을 욕보이는 짓입니다. 진 전 장관을 누가 임명했습니까. 그에게 박근혜정부 국정 운영의 밑그림을 그리도록 한 사람은 또 누구입니까. ‘탈박’ ‘복박’을 반복하며 배신을 밥 먹듯 하는 사람에게 장관 자리를 안긴 게 애초 잘못된 것 아닌가요. 이제 와서 그에게 돌팔매질하는 건 자기부정이자 얼굴에 침을 뱉는 일입니다. 지금 여당이 할 일은 청와대와 내각의 소통은 잘되고 있는지, 권력은 제대로 운용되고 있는지 점검하는 것입니다. 구조적 문제를 외면한 채 특정인 ‘이지메’에 열을 올리면 ‘제2, 제3의 진영’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진영 전 장관이 ‘양심’을 빌미로 내뺐다면,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의혹’을 제작해 내쫓은 경우입니다. 정권이 채 전 총장을 찍어냈다는 정황은 곳곳에서 감지됩니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채 총장을 쫓아내기 위해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움직였다고 폭로했습니다. 채 전 총장에 대한 나쁜 정보들이 급속히 양산되는 것 또한 모처의 ‘기획’으로 의심받을 만합니다. 급기야 새누리당 한 의원은 “채 전 총장과 모 여성 정

치인이 부적절한 관계”라고 주장합니다. 막장 드라마가 절정으로 치닫는 느낌입니다. ‘혼외 아들’의 진실은 묻어둔 채 한 나라의 검찰 수장을 희대의 난봉꾼으로 전락시키고 만 겁니다.

채 전 총장의 신상이 낱낱이 까발려지고, 불명예 퇴진하면서 고위 공직자들이 떨고 있다는 얘기가 들립니다. 자기도 언제 저런 식으로 쫓겨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입니다. 공직자들이 끽 소리도 못 내고 자기 검열에 몰두하기 시작하면 무사안일이 판을 칠 것입니다. 정권의 입맛에 좀 안 맞더라도 소통을 통해 충성하도록 만드는 게 진정한 리더십입니다. 포용은 없고 군림만 있다면 내쫓고 내빼는 일이 되풀이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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