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취재원 색출하려 시사저널 기자 통화 내역 까봤다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3.12.03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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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신동철 비서관 명예훼손 사건’ 관련…담당 기자 휴대전화·사무실 전화 통화 샅샅이 뒤져

경찰이 취재원 색출을 위해 시사저널 기자의 휴대전화 통화 및 문자메시지, 카카오톡, 시사저널 편집국 직통전화 통화 기록까지 샅샅이 조회한 사실이 확인돼 파문이 예상된다.

검찰의 기소 여부가 결정되기 전 단계에서 경찰이 취재기자의 통화 내역을 조회하고 취재원 색출에 나선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에 따라 경찰의 청와대 고위 관계자 명예훼손 사건 조사 과정에 “‘정권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시사저널은 지난 8월8일 본지 인터넷판을 통해 ‘청와대 비서관, 대기업 인사 깊숙이 개입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시사저널은 기사를 통해 청와대 신동철 국민소통비서관(1급)이 KT 이석채 회장과 KB금융지주 임영록 회장 등에게 인사 청탁 내지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또한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팀이 이와 관련해 신 비서관에 대해 고강도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 종로구 내자동에 위치한 서울지방경찰청. ⓒ 시사저널 최준필
이에 대해 신 비서관은 지난 8월12일경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1팀에 해당 기사를 작성한 취재기자 3명을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당시 경찰의 출석요구서에는 ‘고소인(신동철 비서관)은 귀하가 ㈜시사저널 기자로서 8월7일경 ㈜시사저널사 홈페이지에 허위 내용의 글을 게시하여 고소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고소장을 제출함’이라고 적시돼 있다.

해당 기사 작성에 참여한 시사저널 김지영 기자는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1팀에서 9월9일 1차 조사를 받았고, 11월21일 2차 조사를 받았다. 그런데 2차 조사 과정에서 ‘신동철 의혹’이 처음 보도된 시점(8월8일)에 경찰이 김 기자의 휴대전화 통화 및 문자메시지, 카카오톡 송수신 내역과 사무실 전화 통화 기록까지 조회했을 뿐 아니라 통화 내역 명단에 기록된 인물들의 이름·나이·직업까지 정밀 내사했던 사실이 확인됐다. 경찰이 통화 내역 등을 조회한 기간은 7월 말부터 8월8일까지로 보름 정도다.

경찰, 기자에게 “이 사람이 제보자냐” 추궁

김 기자에 따르면 이 사건을 담당한 수사관은 11월21일 김 기자의 휴대전화 통화 내역이 기록된 공문서를 보여주면서 조사를 진행했다. 그 문서에는 김 기자가 휴대전화를 걸었거나 김 기자에게 전화를 건 ‘상대방 이름’과 ‘전화번호’ ‘통화 시간 및 문자메시지 건수’ 등이 기록돼 있었다. 또한 김 기자와 상대방이 통화할 때의 위치도 파악할 수 있는 ‘기지국’까지 적시돼 있었다. 경찰이 김 기자가 언제 누구와 어느 지역에서 몇 분 동안 통화했는지, 몇 건의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받았는지를 모두 들여다본 셈이다.

김 기자가 직접 확인한 기자의 통화 조회 날짜는 7월29일, 8월 1일·5일·7일·8일 등 모두 5일이다. 그런데 이는 김 기자가 육안으로 직접 확인한 날짜일 뿐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경찰은 보름치를 조회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1팀 김 아무개 경감은 11월28일 본지와의 전화 통화에서 “(김 기자의) 휴대전화 통화 및 문자메시지, (김 기자의 시사저널 사무실) 개인 직통전화를 7월 말부터 8월8일까지 조회했다”고 통신 조회 사실을 인정했다. 이에 김 기자가 ‘문자메시지나 카카오톡 내용도 봤느냐’고 묻자 “그 부분은 말할 수 없다”고 밝힌 것으로 미루어 문자메시지 및 카카오톡 내용까지 들여다본 것으로 추정된다. 한마디로 취재원 색출을 위해 김 기자의 공적인 것은 물론 사적인 통신 내역 일체를 까봤다는 얘기다.

김 기자에 대한 11월21일 경찰의 2차 조사도 사건의 본질인 명예훼손 여부보다는 제보자와 취재원이 누구인지 밝히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이날 수사관은 김 기자의 통화 내역에 기록돼 있는 ㄱ씨의 실명을 거명하며 “ㄱ씨와 무슨 통화를 했느냐”거나 “ㄱ씨가 (신동철 비서관 의혹의) 제보자나 취재원이 아니냐”고 추궁했다.

또 경찰은 기사가 보도되기 전인 8월5일 김 기자가 어디서 누구를 만나 무슨 얘기를 했는지 집중 조사했다. 수사관은 김 기자가 8월5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국회의사당 부근에서 통화한 내역을 지목하며 “국회사무처에 근무하는 ㄴ씨와 ㄷ씨를 아느냐”고 물었다. 이어 “(김 기자가) 8월5일 오후에 ㄴ씨와 ㄷ씨 두 사람에게 문자를 보내고 직접 통화를 하기도 했는데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했느냐”며 “이 사람들이 제2, 제3의 취재원이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이날 경찰은 김 기자의 통화 내역이 기록된 공문 이외에 A4용지에 연필로 작성한 문서도 갖고 있었다. 이 문서에는 ‘신동철 의혹’을 처음 보도했던 8월8일 김 기자와 연락했던 10명 이상의 이름과 직장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특히 앞서 언급한 ㄱ씨 이름 앞에는 ‘∨’ 표시를 해두었다. ㄱ씨를 유력한 제보자로 판단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확인된 것으로 봤을 때 경찰은 지난 7월 말부터 8월8일까지 김 기자와 연락을 주고받은 모든 사람의 이름과 직장뿐 아니라 김 기자의 신상정보를 파헤쳤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경찰 조사 과정에서 김 기자에게 “(신동철 의혹을) 취재하던 시점에 (김 기자가) 서울 ○○동에 주로 있었네요”라는 말까지 했다. 통화 조회 내역서에 기록된 ‘기지국’을 통해 김 기자의 위치를 파악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헌법에 보장된 ‘취재원 은닉권’ 침해”

경찰이 명예훼손 사건에 대해 이처럼 통화 등의 내역뿐 아니라 동선까지 확인한 까닭은 무엇일까. 언론을 상대로 한 명예훼손 사건에서 수사기관이 기자의 통화 내역 등을 조회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통상 명예훼손 고소 사건의 경우 매체에 보도된 내용이 고소인의 명예를 훼손했느냐 여부를 따지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한 로펌의 대표 변호사는 “명예훼손 사건의 경우 기사 내용의 사실 여부, 공익적 목적이었느냐가 핵심”이라며 “경찰의 취재원 색출은 헌법에 보장된 언론·출판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취재원 은닉권’ 또는 ‘보호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검찰이 기소한 후 범죄 사실이 소명된 이후에 혐의 입증을 위해 기자의 통화 내역을 조회한 사건은 종종 있다. 하지만 기소되기 전 단계에 기자의 통화 내역을 조회한 사례는 거의 보지 못했다”며 “경찰이 수사권을 가지고 (언론에) 압력을 가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명예훼손과 관련된 수사라면 언론이 악의적으로 사건을 보도한 것인지 아닌지, 또 그것이 어떻게 명예훼손이 되는지를 들여다봐야 한다. 지금처럼 기자의 사생활을 들여다보고 통화 내역까지 뒤지면 기자가 위축돼 어떻게 기사를 쓸 수 있겠느냐”며 “앞으로 기자가 기사를 쓸 때마다 ‘자기 검열’을 하게 될 수밖에 없을 텐데 결국 법적인 처벌을 받는 것보다 더한 ‘위협 효과’를 낼 것이다. 언론이 제대로 감시하지도 못하게 하고 그 언론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것은 이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라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시사저널이 지난 8월8일 인터넷판에 보도한 ‘신동철 비서관 대기업 인사 개입 의혹’ 기사.
“취재원 색출은 비정상적 수사”

경찰이 기자의 통화 내역 조회까지 감행한 데는 누군가 압력을 넣었거나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고소한 사건이라는 점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신동철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은 11월28일 시사저널과의 전화 통화에서 “내게 전화하지 말라”는 한마디만 남기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계속 전화를 걸자 그는 격앙된 목소리로 “(내가) 경찰이 왜 기자의 통화 내역을 조회했는지 어떻게 알겠느냐”고 말했다.

경찰이 개인의 통화 내역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관할 법원에 ‘통신영장’을 청구해야 한다. 통신비밀보호법 제13조에는 ‘범죄 수사를 위해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법원의 허가를 받아 통신사에 통화 사실 확인 자료를 요청할 수 있다’고 적시돼 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서울경찰청 사이버1팀은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를 통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통화 내역 조회 영장을 발부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경찰청 사이버1팀 김 아무개 경감은 11월28일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도 취재기자의 통신 내역 조회를 요청한 것에 대해 요청 사유가 정당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통신영장을 발부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경찰 측이 어떤 이유로 통신 내역 조회를 신청했는지에 대해서는 기밀 처리 방침에 따라 알려줄 수 없다”고 답했다.

김 경감은 ‘통화 내역에 대해 영장을 청구한 까닭’에 대해 “수사 단계에서 기사 내용이 허위 사실이라는 점이 확인됐기 때문에 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고소인 쪽 일방의 주장을 놓고 경찰이 예단한 것일 뿐이다. 피고소인인 시사저널 기자들이 경찰의 1, 2차 조사 과정에서 “기사 내용은 사실이다”라고 진술했던 부분은 묵살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기사 내용의 사실 여부와 취재원 색출 작업은 상관관계가 없다는 점이다. 수사기관이 명예훼손 사건에 대해 취재원 색출에 나설 경우 기자의 취재 활동이 위축되고 궁극적으로는 언론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될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향후 기자들에 대한 명예훼손 고소 남발 사태도 우려된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김 기자의 통화 내역 조회 사건은) 경찰의 수사권 발동이 납득할 만한 것인지에 대해 깊이 들여다봐야 할 사안”이라며 “이명박 정부 이후 두드러진 현상 중 하나가 명예훼손 혐의로 언론을 고소한 이후 재판까지 가지 않고 중간에 취하한 사례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결국 언론에 위협을 가하겠다는 의도로 보이는데 현실적으로 언론에 대한 고소 남발 행위를 막을 방도가 없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도 “권력기관이 범죄 수사나 국가 안보라는 애매한 표현을 사용해 원하는 정보를 마음대로 빼내는 것은 큰 문제”라며 “통신 내역과 같은 개인의 사생활 정보를 조회할 때는 기간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경찰과 검찰같이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기관이 아닌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기관의 허가를 받게 하는 등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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