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자에겐 한 치 곁눈질도 용납 않는다
  • 김현일 대기자 ()
  • 승인 2013.12.11 13:2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일 왕조 체제 북한에선 모두 ‘부하’…장성택 숙청은 예고된 수순

권력의 세계에 2인자란 없다. 모두 ‘부하’ ‘아랫것들’일 뿐이다. 하물며 절대 권력의 세계인 독재 체제에선 두말할 나위가 없다. 2인자 소리를 듣는 순간 ‘칼날 위에 서 있다’고 보면 된다. 언제, 어디서 날아들지 모를 철퇴를 맞아야 한다. 극단적으로는 ‘숙청’ ‘제거’와 동의어쯤으로 간주해도 무방할 듯싶다. 2인자로서 실제 최고 권력을 승계한 경우는 대개가 핏줄로 얽힌 최고 권력자의 자식들이다. 이나마도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긴 경우가 허다하다. 그 밖에는 권력자가 건강 등의 이유로 더는 칼을 휘두를 수 없는 상황까지 견마지로의 충성을 아끼지 않고 바짝 엎드려 있다가 가까스로 살아난 몇몇이다.

김정은의 ‘친위 쿠데타’로 섭정 시대 마감

2인자로서 성공(?)한 대표적 케이스로는 중국의 저우언라이(周恩來)를 들 수 있다. 그는 마오쩌뚱(毛澤東)을 보스로 모시고 대장정을 떠난 이래 41년 동안 묵묵히 2인자의 길을 걸었다. 그가 격변의 중국 근대사의 중심에 서 있으면서도 27년간 총리 자리를 유지했던 것은 자신의 직분을 망각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총리 시절 마오 주석에게 보고를 할 때면 침상 옆에 꿇어앉아서 했다고 한다. 방광암 판정을 받고도 마오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아 수술을 2년간이나 미뤘던 저우언라이다. 2인자라는 평가와 상관없이 덩샤오핑을 재신임하는 권력 재편성에 성심을 다했다. 최고의 위치에 자신을 올려놓는 상상조차 거부했기에 거듭되는 피의 숙청을 피했던 것이다.

2002년 북한 경제시찰단의 일원으로 한국을 방문한 장성택이 한 업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 시사저널 포토
이렇게 보면 북한 권력 2인자로 꼽히던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의 숙청은 예고된 수순이다. 20대의 세습 원수 김정은을 수행하면서 주머니에 손을 넣고, 뒷짐을 지고, 비스듬히 앉고, 짝다리를 짚고 서는 등은 ‘있을 수 없는 불경(不敬)’이었다. 다른 고위 장성들이 경례를 할 때 먼저 손을 내리고, 모든 고위 간부가 다 착석한 뒤에야 등장하는 장성택의 행태는 그 자체만으로도 내치는 빌미가 됐음직하다. 장성택의 최측근 2명이 비위 관련으로 공개 처형된 것도 이번 숙청을 연출하기 위한 포석이란 분석이 나온다.

김정일은 생전 자신의 유언 집행을 여동생 김경희 당비서에게 총괄토록 했다. 장성택은 그 김경희의 남편이다. 김정은의 고모부니까 로열패밀리의 방계쯤 되지만, 실제 힘은 로열패밀리 직계 그 이상이었다. 그냥 인척이 아니라 김정은 3대 세습의 기초를 닦은 최고·최대 공신이다. 국방위 부위원장, 당 행정부장으로 김정은 체제를 떠받들던 핵심이다. 김정은과 극비 문건을 공유한다는 말이 나왔고, 후견인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북한 전체를 주무르던 당사자다. 그런데 이 정도 인물을 단지 주변 측근들의 비위를 이유로 숙청했다는 것은 비약이란 평가다. 설령 처형된 2명의 측근이 호가호위하며 챙긴 이득이 장성택과 무관치 않다고 해도 그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석연찮다는 것이다.

‘권력투쟁’의 결과라는 관측은 크게 틀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한 세력이 다른 편을 거세한다는 일반적 의미의 권력투쟁 개념으로 이해하면 곤란하다는 게 정설이다. 북한 내부에도 강·온파가 대립하고, 당·군이 갈등을 겪고, 그 결과로 권력 지도가 바뀌지만 이번 장성택의 경우는 다르다. 파벌이나 그룹 간 투쟁의 산물이라기보다 김정은이 자신의 권력 공고화를 위해, ‘섭정을 마감하고 친정 시대’를 열기 위해 다른 부하들을 동원했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서방식 표현을 빌리자면 ‘친위 쿠데타’인 셈이다.

이는 피로 얼룩진 북한의 숙청사 전체를 일관하는 기본이다. 김일성 시대의 허가이 등 소련파 숙청을 비롯해, 박헌영 등 국내파, 최창익·김두봉 등 연안파, 김원봉 등 중국파, 박갑철 등 갑산파 숙청은 모두 파벌 싸움의 결과라기보다는 유일 체제 확립을 위한 반대 세력 제거였다. 30여 년 후계 수업을 받은 후 북한 왕조를 이은 김정일 시대는 약간 다르다. 이른바 2인자는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다. 따라서 당시의 숙청·처형은 국가 정책 실패에 따른 희생양 정리가 주류를 이뤘다.

이번 장성택 숙청 이후 로동신문은 “100%가 아닌 99%짜리 충신은 없다”는 등 무조건 복종을 요구하는 격문을 게재했다. 또 “변절하지 말아야 한다”고도 했다. 관영 매체가 좀체 사용하지 않는 ‘변절’이라는 용어를 동원하고 “오랜 기간 당에 충실하였다고 하여도 어느 한순간 충실하지 못하면 충신이라고 할 수 없다”고 강조한 데서 장성택 숙청 배경이 유추된다. 한 치의 곁눈질도 용납하지 않는 절대 체제의 철칙을 거스르는 그 무엇이 있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특수한 상황’에서 ‘2인자를 뛰어넘는’ 의미를 내포한 장성택의 언동이 자신의 직계인 40대를 중심으로 북한 체제를 재편하려는 김정은의 속내와 맞물려 사태를 키운 것일 수 있다는 게 북한 전문가들의 유력한 관측이다.

지난 1월 조선로동당 세포비서대회에서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연설하는 동안 장성택은 비스듬히 기대 앉아 있다. 김정은 주관 행사에서 딴청을 부리고,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짝다리로 서는 등의 ‘불손’은 2인자의 위세를 보여줬지만 최고 권위를 넘보는 것으로 비치기에 충분했다. ⓒ 연합뉴스
국내 정보 당국, 장성택 오랜 기간 주시

김정은이 등장한 지 2년 만에 당·군 고위 간부 44%를 물갈이하고, 한때 2인자 설이 나돌던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을 숙청한 것 등은 권력 장악과 관련한 그의 계산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고모부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아가 국가보위부가 들춰낸 ‘언동(言動)’의 신빙성을 높여준 게 장성택이 행사장 등지에서 보인 오만한 태도라는 것이다. 언동의 유무, 경중을 떠나 평소의 그것만으로도 역린(逆鱗)일 수 있고, 숙청 이유로 충분하다는 얘기다.

북한 문제 전문가들은 우상화된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백두 혈통을 이은 김정은의 존재를 누구보다 잘 아는 장성택의 저간 행태가 믿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김일성의 생일(4월15일)이 민족 최대의 명절로 공식화되고, 3만여 개의 동상이 전국에 세워진 북한, 광명성으로 떠받들어지던 김정일의 유훈이 살아 있는 북한에서 장성택의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더욱이 장성택 자신이 승승장구하던 2004년, 측근의 호화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파벌 조성 이유로 숙청됐던 경험까지 있어서다. 이와 관련해서는 장성택이 자신의 위상을 과신한 데다, 김정은이 스스로 내린 결정이나 지시를 쉽게 번복하는 등의 치기 어린 행태를 가까이서 목격하며 부지불식간에 ‘오버’하게 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장성택은 그 출신 배경 등으로 인해 오래전부터 한국 정보 당국의 주시 대상이었다. 1990년대부터 상당한 ‘공’을 들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한국 안기부의 ‘마약·농산물 중계’ 등 첩보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긴박한 스토리도 당시의 것들이다. 아무튼 개방파를 대표하는 장성택의 거취는 향후 남북 관계와 무관치 않다는 측면에서 갖가지 억측을 불러일으킨다. 장성택이 완전히 숙청된 것인지, 아니면 일시적 실각 내지 제거인지는 아직은 불확실하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북한 사회에서 2인자는 편의상 개념일 뿐이며, 김정은 1인 유일 체제가 본격화됐다는 점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