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제분 사모님 ‘화려한 외출’ 검찰도 책임”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3.12.11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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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대생 청부 살해 사건 그 후…유족 “아직 사건 끝나지 않아”

‘무전유죄 유전무죄’. 올해 우리 사회에 가장 많이 회자됐던 말 중 하나다. 한 여대생의 죽음이 11년 후인 지금 전 국민의 공분을 사며 뜨거운 이슈가 됐다.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2002년 3월16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당시 이화여대 법학과에 다니던 하지혜양은 경기도 하남시 검단산에서 청부 살해를 당했다. 23세의 꽃다운 나이였다.

하양은 얼굴과 머리 부위에 공기총으로 여섯 발의 근접 사격을 받았고, 팔과 뼈가 부러진 처참한 상태로 발견됐다.

살인을 청부한 사람은 영남제분 회장의 부인 윤길자씨였다. 윤씨는 자신의 조카 등을 고용해 판사 사위의 외사촌 동생인 하양을 살해했다. 윤씨는 끝까지 형량을 줄여보려고 ‘돈의 힘’에 의지하다가 2004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돼 감옥에 갇혔다. 사법적인 단죄가 끝나면서 이 사건도 과거 속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살인을 청부한 윤길자씨는 감옥이 아닌 세브란스병원 특실에서 호의호식하며 지내고 있었다. 허위 진단서를 근거로 2007년 이후 5차례나 형집행정지 처분을 받았는데, 그 기간이 무려 6년여나 됐다. 이런 사실은 한 방송사를 통해 폭로됐다.

검찰 수사 결과 담당 주치의인 박병우씨가 윤씨의 남편인 류원기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고 허위 진단서를 발급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박씨는 류 회장으로부터 1만 달러를 받고 2008년 10월부터 지난해까지 세 차례에 걸쳐 윤씨에게 허위·과장 진단서를 발급한 혐의(허위 진단서 작성·행사 및 배임 수재)로 지난 9월16일 구속됐다.

류원기 회장은 영남제분의 본사와 계열사 등에서 빼돌린 회사 돈 87억여 원 중 일부를 윤씨의 형집행정지를 위해 사용한 혐의(횡령·배임 증재) 등으로 구속됐다. 이들에 대한 공판은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리고 있다. 12월6일 현재까지 7차례 공판이 진행됐다.

허위 진단서로 형집행정지를 받은 윤길자씨가 세브란스병원 특실에서 지내는 모습이 방송사 카메라에 잡혔다. ⓒ SBS 제공 아래는 청부 살해를 당한 고 하지혜양의 생전 모습. ⓒ 고 하지혜양 유족 제공
류원기·윤길자 부부, 이혼한 것처럼 속여

윤길자씨는 다시 교도소로 갔다. 이번 일은 ‘무전유죄 유전무죄’가 교도소에서도 통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검찰은 뒤늦게 ‘형집행정지’ 절차를 강화하는 등 개선책을 내놓았다. 형집행정지 심의위원회를 의무화하고, 심사에 참여하는 전문 인력을 늘리는 등 개선안을 마련키로 했다. 하지만 윤씨에게 형집행정지를 허가했던 검찰의 책임에 대해서는 애매모호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하양의 유족들은 “윤길자의 형집행정지에 검찰이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이 부분도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제 식구 감싸기로 가면 국민적 지탄을 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10월26일 중앙윤리위원회를 열어 허위 진단서를 발급해준 박병우씨에 대해 ‘회원 권리 자격정지’ 3년의 징계를 내렸다. 윤리위 최고 수위 징계라고는 하나 의사 자격과는 무관한 조치여서 반발을 샀다.

이 사건에 대한 의혹이 완전히 해소된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류원기·윤길자 부부는 이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4년 윤씨가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된 후 이혼했다고 전해졌다. 지금껏 언론에서도 ‘이혼’을 기정사실화하며 ‘전남편’ ‘전부인’ 등으로 표기해왔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서류상 이혼한 것이 아니냐며 ‘위장 이혼’ 의혹까지 제기됐다. 하지만 두 사람은 지금껏 이혼한 적이 없다. 서류상으로도 여전히 부부였다. 이들이 이혼하지 않았던 정황은 여러 곳에서 드러났다.

윤씨가 세브란스병원 특실에 있는 동안 하루 수백만 원대에 달하는 병실료는 남편 류원기 회장이 카드로 결제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류원기 회장이 수감 생활 중이던 윤씨를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온 정황도 있다. 고 하지혜양의 아버지는 류 회장이 윤씨의 사면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했다고 밝혔다.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내게 사람을 보내 ‘용서’를 요구했다. 남자도 보내고 여자도 보냈다. 방송사 임원, 금융 계통 종사자 등 어느 정도 사회적 위치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들 중 일부는 은근히 금전적 보상을 암시하기도 했다.”

류원기 회장은 윤길자씨와 이혼한 것처럼 행세하면서도 실제로는 부당한 형집행정지의 뒤를 봐주고 있었다. 기자는 두 사람이 이혼했다는 얘기의 최초 진원지가 어디인지를 따져봤다. 고 하지혜양의 오빠는 “우리도 언론 보도를 통해 처음 알게 됐고, 지금까지 그렇게 믿고 있었다”고 말했다.

포털 사이트에서 뉴스 검색을 통해 알아보니 류원기 회장의 이혼 기사는 2006년 3월10일쯤에 처음 나왔다. 당시 문화일보와 동아일보가 제목에 ‘전처’라고 명기했고, 기사 본문에는 ‘윤씨는 유죄가 확정된 뒤 남편 류 회장과 이혼했다’고 나와 있다. 그 후 모든 언론이 이 기사의 내용을 기정사실화해서 ‘이혼’으로 표기했다. 영남제분에서도 언론사에 ‘정정 요청’을 하지 않아 이혼은 기정사실화됐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실제 류 회장이 이혼하지 않았다면 왜 이혼한 것처럼 가만히 있었을까. 그 해답은 7월1일 영남제분 비상대책위원회 명의로 발표한 ‘호소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서 영남제분은 “윤모씨는 영남제분 주식을 단 한 주도 갖고 있지 않으며, 영남제분과 11년 전 발생한 사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그것은 ‘10년이 넘은 사건인데 왜 이제 그러느냐’는 뜻을 담고 있는 것으로 비친다. ‘윤길자 청부 살해’와 영남제분을 연결 짓지 말라는 선 긋기로 볼 수 있다. 그 후 시사저널은 영남제분 측에 이혼 여부를 확인해달라고 요청했었다. 그랬더니 회사 관계자는 “회사에서 대답할 내용이 아니다. (대답하기에) 부적절하다고 판단된다. 회장 개인 사항이다”라며 즉답을 피했다. 이메일을 통해 재차 답변을 요구했으나 역시 감감무소식이었다. 이혼 여부에 대해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류원기·윤길자 부부가 이혼하지 않은 것은 법정 소송 등을 거치며 드러났다.

윤길자씨 주치의에게 돈을 준 혐의로 구속된 류원기 영남제분 회장(왼쪽, ⓒ 연합뉴스 )과 돈을 받고 허위 진단서를 발급한 혐의로 구속된 세브란스병원 의사 박병우씨. ⓒ 뉴시스
‘여대생 청부 살해 사건’ 곧 영화화

고 하지혜양 청부 살인 사건의 원인 제공자는 사촌 오빠였던 김 아무개 판사(현재 변호사)다. 그는 류원기 회장의 딸과 결혼했지만 장모인 윤길자씨에게 사촌 동생과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오해를 샀다. 그런데도 김씨가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으면서 사촌 동생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김씨는 사건 발생 이후 10년 동안 다른 사람의 죄를 따지고 판결했다. 법원을 나온 후에는 로펌에서 법조인으로 일했다. 김 변호사는 지난 7월 한 시사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고통이 심했겠다”고 묻자 “아내나 저나 10년을 마음 졸이면서 죄인 아닌 죄인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고 하지혜양 오빠는 “‘고통’을 운운하다니 가증스런 거짓말이다. 김 아무개는 지금까지 우리 가족에게 ‘사과’ 한마디 안 했다. 그의 부모도 마찬가지다. ‘죄인’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 가족에게 사과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한편 ‘여대생 청부 살해 사건’은 영화로 제작될 예정이다.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 <집으로>의 메가폰을 잡았던 이정향 감독이 유족들과 영화 제작을 협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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