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 백화점’ 롯데 신동빈 최대 위기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4.07.10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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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단부터 경영진까지 구린내 이인원 롯데쇼핑 부회장 동생도 고소당해

‘슈퍼 갑(甲) 롯데홈쇼핑’. 6월23일 검찰이 롯데홈쇼핑 납품·횡령 비리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가장 먼저 언급한 말이다. 그만큼 비리가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뤄졌다는 뜻이다. 영업 분야 간부들은 “황금 시간대에 방송을 넣어주겠다”며 납품업체로부터 적게는 1000만원, 많게는 9억원대의 뒷돈을 챙겼다. 아버지·아들 등 가족뿐 아니라 전처나 내연녀의 계좌까지 리베이트를 받는 데 동원했다. 심지어 일부 직원은 검찰 수사가 한창이던 2014년 3월까지도 납품업체 법인카드를 넘겨받아 사용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비영업 분야 간부들도 인테리어 공사 명목으로 수억 원의 리베이트를 챙겼다. 불법적으로 조성된 비자금은 신헌 전 롯데홈쇼핑 대표를 포함한 고위층에 전달됐다. 신 전 대표가 2007년부터 2014년까지 받은 뒷돈만 4억원에 육박한다. 상납금을 맞추기 위해 거래업체로부터 받는 리베이트를 미리 당겨 받을 정도로 비리가 악질적이다. 검찰은 신 전 대표를 비롯한 롯데홈쇼핑 임직원 10명과 벤더(브로커) 및 납품업체 대표 14명을 기소했다. 서영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첨단범죄수사1부 부장검사는 “MD(상품 기획자)부터 CEO까지 조직적으로 연루된 총체적인 비리 커넥션이 드러났다”며 “부정하게 조성된 16억3000만원 상당의 범죄 수익에 대해서도 모두 환수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회 국정감사와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은 혐의로 약식 기소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해 4월26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취임 3년 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리더십에도 구멍이 뚫렸다. 신 회장은 지난 4월 롯데홈쇼핑 전·현직 임직원 비리에 대한 보고를 받고 분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며 그룹 차원의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그룹 정책본부 개선실(감사실) 중심으로 대대적인 계열사 감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롯데그룹은 이렇다 할 개선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검찰 수사 결과 발표 직후인 6월24일에도 신 회장은 그룹 내 부정·비리 척결 의지를 다시 밝혔다. 신 회장은 이날 42개 계열사 대표와 정책본부 임원 등이 참석한 사장단 회의에서 “롯데홈쇼핑 사건은 충격과 실망 그 자체다. 온 정성을 다해 쌓아왔던 공든 탑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며 “그룹 내 부정과 비리를 발본색원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이날 중소기업 대표 김 아무개씨가 이인원 롯데쇼핑 부회장의 여동생을 서울 서초경찰서에 고소했다. 롯데마트 납품을 빌미로 금품을 받아 챙겼다는 것이 고소 이유다.

4억원 규모의 횡령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신헌 전 롯데홈쇼핑 대표가 6월16일 서울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신동빈 “공든 탑 무너지는 느낌”

고소장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해 3월 지인으로부터 이 부회장의 동생을 소개받았다. 이 부회장의 동생은 김씨에게 “롯데마트 고위 임원을 잘 알고 있다. 내 지시만 따르면 협력업체 등록을 시켜주겠다”고 제안했다. 김씨는 아반떼 차량 리스와 자동차보험료를 지불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김씨는 고소장에서 “롯데마트에도 이 사실을 알렸다”며 “처음에는 ‘2000만원에 합의하자’고 했다가 나중에 ‘마음대로 하라’며 말을 바꿨다”고 주장했다.

롯데마트 측은 현재 “김씨가 터무니없는 주장을 펴고 있다”고 강조한다. 회사 관계자는 “롯데마트 상품 기획자가 고소인 김씨를 만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고소인 회사의 상품 경쟁력이 부족해 협력업체 등록 심사에서 탈락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그룹 측은 “(이인원 부회장) 개인의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경찰에서 김씨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롯데그룹 자체가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업계에서는 롯데홈쇼핑 비리가 그룹 상층부로 확대되고 있는 것에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이인원 부회장은 이상운 효성 부회장과 함께 재계의 대표적인 장수 CEO로 꼽힌다. 1997년 대표에 취임해 17년째 롯데쇼핑을 이끌고 있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전자공시 제도가 처음 도입된 1999년부터 지난해까지 롯데쇼핑은 15년 연속 영업흑자를 기록했다. 국내 500대 기업에 포함된 30대 그룹 계열사 전문경영인 126명 가운데 최장 기록이다. 이 기간 롯데쇼핑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684%와 818% 증가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이 부회장은 2011년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오너 일가를 제외하고 전문경영인이 롯데그룹 부회장에 오른 것은 이 부회장이 유일하다. 그룹 2인자로 불릴 정도로 오너 일가의 신임이 각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 역시 구속된 신 전 대표와 함께 신동빈 회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져 불똥이 신 회장에게 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롯데그룹을 둘러싼 악재는 이뿐만이 아니다. 신동빈 회장은 지난해 5월 그룹 계열사인 롯데푸드(전 롯데삼강)와 함께 공정거래위원회에 피소됐다. 계열사인 롯데푸드가 협력업체인 H사를 부당하게 압박해 수십억 원의 손실을 입혔다는 내용이었다. H사 대표 전 아무개씨는 공정위에서 “롯데푸드가 2004년 물량을 몰아주는 조건으로 단독 거래를 요청했다”며 “기존 거래업체를 모두 정리한 상황에서 롯데가 물량을 줄여 회사가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시사저널 2014년 4월13일자 참조).

롯데푸드 측은 “협력업체에 대한 부당한 압박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취재 과정에서 사건 당시 외주를 담당했던 롯데푸드 전 직원 김 아무개씨의 증언이 나왔다. 그는 “H사의 약점을 잡으라는 윗선의 지시가 있었다”고 폭로했다. 공정위도 최근까지 김씨의 증언 등을 바탕으로 조사를 벌였다. 조만간 조사를 마무리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공정위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지난 4월 조사를 대부분 마치고도 두 달 넘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만큼 고민을 많이 했다는 얘기”라며 “하지만 조만간 결론을 내릴 예정이라고 고발인에게 통보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공연기획사 대표 “신동빈 추가 고발 예정”

신 회장은 2011년 10월에도 검찰에 또 다른 건으로 피소된 바 있다. 공연기획사 대표인 옥 아무개씨는 고소장에서 “인도국제영화제(IIFA)를 지원해준다는 조건으로 신동빈 회장이 술 접대와 고가 선물을 포함한 수억 원의 향응을 제공받고도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당시 사건을 각하 처리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민사 소송이 진행되다가 현재는 모두 종료된 것으로 알려졌다. 옥씨는 현재 신 회장을 상대로 반격을 준비 중이다. 그는 7월3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석연치 않은 이유로 검찰이 각하 처분을 내렸다. 조만간 검찰에 추가로 고소장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취임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신동빈 회장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갈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롯데홈쇼핑 납품·횡령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로 홈쇼핑업계의 구조적 문제가 일부 드러났다. 뒷돈을 받는 수법이 갈수록 지능화되고 있는 점이 우선 눈에 띈다. 가장 먼저 검찰에 구속된 전 생활부문장(이사) A씨는 이혼한 전처의 한 달 생활비 300만원을 납품업체에서 대납하도록 했다. 이런 식으로 A씨가 2018년 12월부터 2012년 10월까지 상납받은 돈은 9억원에 이른다.

수석 MD(상품 기획자) 출신인 B씨는 내연녀 동생의 계좌까지 이용했다. B씨는 상장이 예상되는 주식에 투자했다가 거액의 손실을 입었다. B씨는 납품업체에 이 주식을 고가에 되사게 하는 방식으로 2012년까지 1억4000만원의 뒷돈을 챙겼다.

검찰 조사 과정에서 조직적인 상납 고리도 드러났다. 고객지원부문장(이사) C씨는 상사인 방송지원본부장(전무) D씨와 신헌 전 대표에게 정기적으로 상납을 했다. 상납금이 부족할 경우 개인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거나 회사 시재금(보유 현금)을 가불 받아 전달했다. 이후 협력업체와 허위 거래를 통해 돌려받은 비자금으로 다시 손해를 메우는 수법을 썼다.

검찰은 이 같은 관행이 롯데만의 문제는 아닐 것으로 보고 있다. 롯데·GS·CJ·현대 등 6개 TV홈쇼핑업체의 매출은 2011년 10조3075억원에서 지난해 13조3256억원으로 2년 만에 3조원 이상 증가했다. 그 이면에 갑을 관계를 이용한 업계의 구조적 비리가 있을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서영민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장은 “자본력이나 인지도가 낮은 중소 납품업체는 많은데 허가된 홈쇼핑 채널은 6개에 불과하다”며 “뒷돈을 주고서라도 납품업체들이 로비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홈쇼핑업체 임직원들과의 인맥을 이용해 방송을 알선해주고 뒷돈을 챙기는 ‘로비형 벤더’(브로커) 문제가 심각했다. 구속된 벤더업자 E씨는 “나를 통해서만 롯데홈쇼핑 론칭이 가능하다”며 30억원대의 수수료를 받았다. 이 중 5억7000만원 상당을 롯데홈쇼핑 임직원에게 상납했다. 그는 실무급인 MD와 부문장 이상 직급을 따로 관리했다. 서 부장검사는 “TV홈쇼핑이 갑을 관계를 악용해 사리사욕을 채우는 도구로 악용되고 있다”며 “공정위 등에서도 홈쇼핑업계의 고질적인 비리를 방지하기 위한 실태 조사에 착수한 상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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