닻 올린 박영선호, 위기에 빠진 제1야당 구할 수 있을까
  • 김현│뉴스1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4.08.14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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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에 권력, 한 손에 독배 든 ‘잔다르크’

7·30 재·보궐 선거에서 참패한 새정치민주연합의 재건을 책임진 박영선호(號)가 닻을 올렸다.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의 사퇴로 위기에 빠진 새정치연합을 구할 구원투수로 박영선 원내대표가 8월4일 의원총회에서 비상대책위원장(국민공감혁신위원장)으로 선택된 것이다. 의총 전 사흘간 단위별 비상회의를 개최해 의견을 수렴했던 박 위원장은 “다들 (독배를) 마시라고 하니 마시고 죽겠다”며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했다. 이로써 박 원내대표는 차기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가 치러지기 전까진 대표 직무대행과 비대위원장까지 겸하는 막강한 권한을 쥐게 됐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다른 한 손엔 자칫 정치인으로서 명운이 걸린 독배를 들게 됐다. 박 위원장이 새정치연합은 물론 수렁에 빠진 야권 전체를 구해낼 ‘잔다르크’가 될 수 있을지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시한부’ 비대위가 풀어야 할 실타래 산더미

박영선 위원장에게 주어진 과제는 적지 않다. 박 위원장은 우선 당내 파열음을 최소화하며 당을 혁신해야 함은 물론 7·30 재보선 참패의 핵심 원인으로 꼽히는 공천 제도의 밑그림을 새롭게 제시해야 한다. 또한 지난 8월4일 의원총회에서 내년 1~3월께로 합의한 바에 따라 차기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도 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한 시·도당 개편대회, 지역위원장 선정 등 당 조직 재정비는 만만치 않은 과제다. 여기에 더해 이번 재보선을 통해 명확한 한계를 드러낸 후보 단일화를 극복할 야권 통합 방안도 찾아내야 한다.

8월5일 박영선 새정치연합 비상대책위원장(왼쪽 두 번째)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박 위원장은 8월5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향후 자신이 추진할 당 혁신과 재건 방안의 일면을 선보였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무당무사(無黨無私·당이 없으면 개인도 없다)’와 ‘무민무당(無民無黨·국민이 없으면 당도 없다)’을 기치로 내걸며 당의 재건과 완전한 통합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김대중 정신, 노무현 정신, 김근태 정신, 안철수 현상, 손학규 정치 철학 등을 거론하며 당내 고질병인 계파 갈등 극복과 낡은 과거·관행과의 단절로 ‘투쟁 정당 이미지’를 탈피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아울러 야권 내 통합 대상으로 꼽히는 정의당과의 통합에 대해선 “열린 마음으로 생각해볼 것”이라고 여지를 남겨뒀다.  

박영선호가 순항할 수 있을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당내 의원들이 만장일치로 박 위원장을 추대하긴 했지만, 당 안팎에선 여전히 박 위원장의 리더십에 의구심을 갖는 시각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 3선 의원은 기자와 만나 “감정 기복이 심한 박 위원장이 중요한 순간에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그간 박 위원장의 소신이 국민의 눈높이와 전혀 맞지 않았는데, 그것이 한 번에 변할 수 있겠느냐”라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박 위원장이 이번 재보선 직전 ‘세월호특별법 통과 없이는 국회에서 그 어떠한 법도 우선할 수 없다’고 보이콧을 선언한 것을 거론하며 “원내대표는 아무리 그런 말을 하고 싶어도 하지 않아야 하는데, 그것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며 “지도자는 자기 지지층 결집을 위해 밖에다 그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내 지지층을 설득해 앞으로 나아가 상대 지지층의 지지까지 얻어내야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수도권의 한 재선 의원은 전화통화에서 “박 위원장 주변엔 강경한 입장만 내는 초선 의원들로 가득하다. 물론 그들이 도와줄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힘을 받을 수 있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지 않으냐”며 “19대 국회 후반기 상임위원회 구성 때 강경파 초·재선들을 다 간사로 임명했다. 그게 말이 되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당내 각 계파들의 협조가 원만하게 이뤄질지도 물음표다. 정세균계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박영선 비대위 체제에선 당직을 맡을 생각이 없다”며 “비대위 체제가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새로 선출되는 지도부에서 당직을 맡는 게 훨씬 낫다”고 말했다. 정세균 상임고문과 가까운 전병헌 전 원내대표는 최근 잇따라 “말로만 혁신해선 안 된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세대의 교체’가 아니라 ‘생각의 교체’”라며 날을 세웠다.

당 밖에서도 비판론이 나오긴 마찬가지다. 지난 대선평가위원장을 맡았던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8월4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자신과 박 위원장의 과거 경험을 언급한 뒤 “박 위원장 같은 분이 비대위를 끌고 가면 (당은) 전망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생각과 행동으로 비대위를 끌고 간다고 하는 것은 상당히 공포스럽다”고 혹평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박 위원장이 과거 법사위원장 시절과 같은 선명성만 강조하는 리더십으로 비대위를 운영한다면 전망은 그리 밝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세월호특별법 합의 후폭풍에 리더십 도마

박 위원장의 리더십은 당직 인선과 ‘국민공감혁신위원회’로 명명된 비대위 구성을 놓고 1차적인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당직 인선은 계파 극복이, 비대위 인선에선 중도층 등 외연 확대가 가능한 외부 인사 영입이 박 위원장에게 난제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도 이를 의식한 듯 ‘계파 초월’을 강조하며 당직 인선 등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그가 처음으로 단행한 사무총장 인선에선 당내 손학규계로 분류되는 조정식 의원을 발탁했다. 계파의 수장이었던 손 상임고문이 정계 은퇴를 선언한 점은 있지만, 자신의 의중을 직접적으로 수행해야 할 사무총장 자리에 타(他) 계파 인사를 기용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장엔 당내 대표적인 전략통으로 평가받는 민병두 의원을 선임했다. 민 의원은 김한길계로 분류되며, 김한길 대표 체제의 민주당 시절 전략홍보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이와 함께 박 위원장은 자신의 강경한 이미지를 불식시키는 데도 주력하고 있다. 세월호특별법 처리와 관련해선 재보선 전까지 스스로 강경파의 목소리를 대변했지만, 7일 재보선 이후 처음으로 열린 여야 원내대표 간 주례회동에서 특별검사 추천권 등 그간 요구해왔던 데서 한 발짝 물러서며 전격적인 합의를 도출해냈다. 박범계 원내대변인은 “이번 세월호특별법 합의에 주목해야 한다. 유가족 등에게 미흡할지 모르지만, 세월호특별법을 둘러싼 갈등으로 인해 국민적 피로감이 극대화되지 않도록 박 위원장이 결단한 것”이라며 “박 위원장이 추구하는 혁신의 일면을 보여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유가족과 시민사회는 물론 당 내부에서조차 반발하고 나서면서 박 위원장의 리더십이 첫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이들은 박 위원장이 특검 추천권을 야당 또는 진상조사위에 부여하는 것을 관철시키지 못했다며 재협상 등을 요구했다. 박 위원장은 진상조사위 구성에 유가족 추천 몫을 늘린 점을 강조하며 설득하고 있지만, 수습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당내 의원들도 삼삼오오 대책회의를 가지는 등 내분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새정치연합의 한 관계자는 “그간 강경한 목소리만 내왔던 박 위원장이 이번 사안에 대해 지도부로서 어떤 리더십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박영선호의 순항 여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박 위원장이 당직 및 비대위 인선을 무난하게 마무리한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과제인 공천 제도 개혁과 당 조직 재정비라는 큰 산이 기다리고 있다. 정치권에선 박 위원장에게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조언이 적지 않게 나온다. 김철근 새정치전략연구소장은 “박 위원장이 너무 큰 욕심을 내선 안 된다”며 “계파 갈등 해소와 공천 제도 개혁이 가장 큰 과제이기 때문에 차라리 여기서 성과를 내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박 위원장이 오픈프라이머리 도입 등을 제시한 만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합의를 통해 선거법에 이를 명시하고, ‘몸은 풀고 돈은 묶는’ 방향의 상시 선거운동이 가능하도록 함께 개정한다면 한국 정치문화를 바꾸는 큰 업적을 남기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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