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 다독이는 진정한 영웅이 왔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4.08.14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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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에서 발원해 태풍처럼 몰아친 ‘이순신 신드롬’

영화 <명량>이 이순신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면서 우리 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열풍은 20대부터 60대까지 연령층을 가리지 않고 전 세대에서 발원하고 있다. 40대 이상에게 충무공은 ‘국민교육헌장’만큼이나 박제된, 일종의 강제성을 띤 ‘국민 계몽’ 콘텐츠였다. 이들은 1971년 작 <성웅 이순신>이나 1977년 작 <난중일기> 두 편 중 한 편, 또는 두 편 다 학교에서 단체 관람을 했을 것이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사회 통합의 아이콘으로 ‘구국의 성웅 이순신’을 내걸었다. 1967년 현충사 본전을 신축하고 박정희의 친필 휘호를 내걸었다. 이어 1968년 4월27일 세종로 네거리 광화문을 등지고 충무공 동상이 세워졌다. 1970년 10월 100원짜리 동전에 이순신 장군의 얼굴이 새겨졌다. 1971년 당시로는 엄청난 제작비를 들인 <성웅 이순신>이 제작됐고, 77년에는 2억원을 들인 <난중일기>가 만들어졌다. 정부는 이런 계몽성 영화 제작을 적극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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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사망 이후 충무공은 한동안 대중문화에서 잊혀졌다. 그가 다시 대중의 눈높이에서 되살아난 것은 2001년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를 통해서였다. <칼의 노래>는 2004년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2014년 <명량>이 등장했다.

정권 수호 아이콘에서 민생의 아이콘으로

다른 점이 있다면 1970년대의 이순신이 정부가 주도해 만든 구국의 아이콘이었다면 21세기의 이순신은 정권 수호자의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살아서 먹을 수 있어서 좋구나”라고 말하는 번뇌하는 영웅이라는 점이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명량>의 이순신은 나약하면서도 고통을 통해 단련되고 능력을 발휘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스타일의 영웅으로 되돌아왔다”고 설명했다. 영화는 할리우드 스타일의 액션 스펙터클에 버금가는 해상 액션을 보여준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무능한 공권력과 무기력한 리더십에 신물이 난 국민은 고통을 인내와 ‘백성을 향한 충(忠)’으로 돌파하는 이순신이 보여주는 ‘액션 스펙터클’에 환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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