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아직 충분히 울지 않았다
  • 김재태 | 편집위원 ()
  • 승인 2014.08.20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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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종교를 믿지 않더라도 고매한 인품을 지닌 성직자들의 남다른 언행에는 마음이 저도 모르게 끌리게 됩니다. 그들은 신자·비신자를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에게 지혜로운 삶의 방향을 일러주는 나침반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고 김수환 추기경도 그런 분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이미 고인이 되었음에도 아직 많은 사람이 그분이 남긴 숭고한 행적들을 기억하며 그의 부재를 아쉬워합니다. 시사저널이 1989년 창간호부터 매년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해오고 있는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설문조사에서 19회 연속으로 10위권에 오른 사실에서도 그에 대한 한국인들의 선망을 확연히 읽을 수 있습니다. 그의 영향력은 단순히 추기경이라는 성직의 특수성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서슬 퍼런 군사 독재 시절을 거쳐 오는 동안 그가 보여준 도덕적 신념에 따른 용기와 민중과 고락을 함께하려 했던 깊은 사랑에서 우러나온 힘임을 우리는 압니다.

세계 가톨릭교회의 구심점이자 상징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에 왔습니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그는 우리와 똑같이 군부 독재의 아픔을 겪었던 아르헨티나 출신입니다. 암울했던 세월을 민중과 함께 온몸으로 통과해온 인물입니다. 혹자는 그가 군부 독재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다고 비판하지만, 그는 드러나지 않게 피해자들을 도왔습니다. 또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로 재임하던 2000년에는 군사정권 시기 가톨릭교회의 죄를 고백하는 <내 죄>라는 고해성사를 내놓는 데 앞장서기도 했습니다. 거기에는 “우리는 자유와 인권을 해친 사람들에게 너무 너그러웠다. 책임 있는 이들의 침묵을 용서해달라”라는 참회가 담겼습니다. 그런 참회가 교황으로 하여금 거침없이 낮은 곳으로 향하게 하는 용기를 주지 않았을까 여겨집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금 스스로 권위를 내려놓고, 가난하고 힘없고 고통받는 사람들 곁에 서 있습니다. 그 낮은 곳에서 상처받고 아픔을 겪는 사람들을 보듬습니다. 이번 방한 기간에도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과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었습니다.

바티칸 전문 기자 안드레아 토르니엘리는 그의 저서 <따뜻한 리더, 교황 프란치스코>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보여주는 글로벌 리더십의 원동력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을 주는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을 주는 그 카리스마의 원천은 바로 ‘용기’일 것입니다. 바른말 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마피아와 같은 거대악과도 당당히 맞설 줄 아는 그 용기가 그를 ‘행동하는 신앙’으로 이끌어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에게 두려움이란 오직 “희망과 포용력을 잃고 다른 사람에게 사랑스러운 손길을 뻗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번 방한에서도 프란치스코 교황은 특유의 소탈한 모습을 보이며 우리에게 특별한 기억을 남겨주었습니다. 나지막하면서도 울림이 큰 그의 웅변은 우리 사회에 드리워진 갈등과 분열, 불평등의 그늘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합니다. 세월호 등 잇단 사건·사고와 부조리로 얼룩진 비극의 악순환에도 우리 사회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처럼 ‘아직 충분히 울지 않았습니다’. 이제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라보는 ‘소통’과 ‘화해’의 세상, ‘평화’와 ‘정의’의 세상을 우리 모두가 함께 좀 더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볼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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