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지 말고 맛있게 먹어야”
  • 조철│문화 칼럼니스트 (.)
  • 승인 2015.10.29 17:19
  • 호수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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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든한 내면 만드는 ‘독서 레시피’ 제시한 김이경 작가

책 읽기에 딱 좋은 계절이라지만 사람들은 어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잘 모른다. 그저 책을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잡히는 대로 건성건성 읽고 책 한 권 읽었다고 말한다. 왜 그 책을 읽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목적이 있어 구입한 책이라 해도 막상 펼치고 나면 다른 여느 책 읽듯이 해버리니 도움이 될 책이 재활용 쓰레기 가방에 들어가기 일쑤다.

독서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작가가 독서법을 다룬 책을 냈다고 하니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가을이 깊어가는 10월의 오후, 서울 덕수궁 인근 카페 옆 벤치에서 김이경 작가를 만났다. 나이가 편견을 부른다며 나이와 학벌을 싹 없앤 저자 소개 글에 걸맞게 김 작가는 그냥 독서 모임의 큰언니 같았다. 김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책을 읽는다고 무슨 도움이 될까요?”라고 반문했다. <책 먹는 법>이라는 책을 내놓은 이유는 그래서다.

ⓒ 시사저널 최준필

“자기 안에 질문 있을 때 읽어야 도움 돼”

김 작가는 “책 읽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람은 책을 읽는 이유가 없거나 그 이유가 분명치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열심히 일과 공부에 임하듯 결국 독서는 삶의 문제와 연결돼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간단하고 근본적인 책 읽는 이유를 잊어버린 상태로 책을 읽으니 책장을 펼치자마자 졸음이 몰려오는 것이리라.

취업을 위해서, 성적 향상을 위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정신적 치유를 위해서, 요리를 잘하기 위해서…. 책 읽는 이유가 분명해도 책을 읽어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면 그 이유는 또 무엇일까.

“자기 안에 질문이 있을 때 읽어야 도움이 된다. 사람들은 저마다 제자리에서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면서 생기는 온갖 다양하고 절실한 구체적 질문들을 만난다. 그런 문제들을 풀고자 할 때 독서를 하라는 것이다. 알고 싶은 것, 모르는 것이 있을 때 곁에 뒀던 책을 펼치면 크게 도움이 된다.”

책 읽는 시간이 아까워 책 읽는 대신 강의를 듣는 사람도 많이 늘어났다. 이런저런 강의들이 인기를 얻는 것에 대해 독서 칼럼니스트로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세태를 보면 강의만 들으려고 하고 책은 안 읽는 것 같다. 도서관이 평생학습관으로 바뀌면서 책이 더 있어야 할 공간이 강의실로 변경되고 문화센터 개념으로 바뀌었다. 그건 문제라고 본다. 강의를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강의로는 도저히 안 되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없으면 배울 수 없는 것들이 있으니까. 몸으로 배우는 게 가장 좋지만, 몸으로 배울 때조차 혼자 생각하는 방법을 모르면 성장하기가 어렵다. 만약 경험과 지혜가 비례한다면 노인들은 모든 면에서 지혜로워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경험 자체를 정리하고 숙고해서 하나의 철학으로 만드는 훈련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건 독서가 해결해주는 문제다.”

나이 들수록 공부를 더 해야 한다는 말이 김 작가의 말과 오버랩된다. 나이 들었으니 이젠 책을 덮고 산이나 다니고 골프나 치러 다니겠다던 사람에게 어울릴 만한 조언이다. 평생 독서를 하고 책을 쓰는 사람이니 좋은 부모를 만났을 것 같아 부모에 대해 물었다. “얼마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다섯 남매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었다. 너무 가난해서 초등학교도 졸업을 못하신 분이지만 똑똑하고 지적이고 세상을 많이 아는 분이셨다. 배울 기회는 놓쳤지만 계속 책과 신문을 읽으셨기 때문일 거다. 아버지는 미국 방송도 챙겨 보셨고, 새벽부터 라디오 뉴스를 항상 들으셨다. 신문도 여러 개를 보셨는데, 언론마다 입장이 다르고 주요하게 생각하는 면이 다르고, 기자마다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여러 종을 봐야 한다고 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니 신문의 행간을 읽으신 거다. 아침에 신문이 배달되면, 아버지가 읽으시고 그다음 오빠들이 읽고 나야 내 차례가 됐다.”

“스스로 알아가려는 마음 가졌으면 한다”

소설가, 번역자, 편집자, 논술 교사, 독서 모임 강사 등 책과 관련한 다양한 일을 해온 김 작가. 그는 <책 먹는 법>을 통해 읽기 시작하는 법, 질문하면서 읽는 법, 있는 그대로 읽는 법, 다독법, 정독법, 여럿이 함께 읽는 법, 어려운 책 읽는 법, 쓰면서 읽는 법, 소리 내어 읽는 법, 아이와 함께 읽는 법, 문학 읽는 법, 고전 읽는 법 등 여러 가지 상황과 처지에 맞게 책을 접하는 방법을 전한다. 김 작가 또한 직업이기 이전에 책을 통해 큰 도움을 얻었기에 이런 ‘독서 레시피’를 내놓은 것이다.

“어머니가 아프셨을 당시 난 직업이 없어서 어머니 옆을 오랫동안 지켰다. 어머니를 보면 안쓰럽고 마음이 아팠지만, 젊은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기도 해서 속으로는 화가 났다. 그때 죽음에 대한 책들을 많이 읽었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 도대체 책을 읽는 게  무슨 도움이 되느냐고 하는데, 어머니가 아프실 때 정신분석학 책을 여러 권 읽으면서 내가 느끼는 이런 불만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알게 됐다. 처음에는 부모를 원망하다가 부모도 하나의 인간일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물론 심리 상담을 받아도 도움이 된다. 그런데 스스로 힘들게 깨닫는 것과 남이 이야기해줘서 빨리 깨닫는 것은 좀 다른 것 같다. 책을 읽는 내내, 내면의 갈등을 겪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람들이 뭔가를 너무 빨리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스스로 알아가려는 마음을 꼭 가졌으면 좋겠다.”

김 작가는 ‘질문에 답하는 독서’를 하면 좋은 이유를 이렇게 정리한다. “첫째, 무엇보다 책을 더 잘 읽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가 눈앞에 있을 때는 어려운 책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집요하게 파고들어 해답을 찾아내고자 하기 때문이다. 둘째, 스스로를 성찰하게 한다. 왜 이 책을 읽는지, 이 책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질문을 거듭할수록 책의 내용이 던지는 무게가 커지고 생각이 깊어진다. 그리고 나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무엇을 바라고 무엇이 부족한지 숙고하게 된다. 나는 어떤 인간이며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스스로 파악하는 일은 자신의 성숙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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