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내가 김정은이라면?’…전격 서울 답방할 것
  • 손기웅 한국DMZ학회장·前 통일연구원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3.08 16:00
  • 호수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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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방북 추진, 푸틴과의 정상회담도 필요해
국제적 비난에 직면할 섣부른 군사도발은 상황 완전히 꼬이게 할 뿐

북한이 미국의 압박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후속 조치를 펴기 시작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다음 수순은 무엇일까.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의 관점에서 향후 전망을 분석하는 글이 쏟아졌지만, 막상 김 위원장의 입장에서 북·미 관계를 바라보는 글은 별로 없었다. 따라서 필자는 ‘내가 김정은이라면~’이라는 시각으로 향후 한반도 문제를 접근해 보고자 한다. 

“우린 1분이라도 더 중요하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기자들에게 던진 김정은 위원장의 이 한마디는 현재 북한이 처한 상황을 대변한다. 그만큼 김정은은 다급하다. 경제의 혈액인 에너지가 부족하고 지난해 수확량이 50만 톤가량 줄어들어 금년에 약 150만 톤의 식량 부족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북제재 영향을 받은 것은 물론이지만, 북한 경제의 구조적 결과 탓이기도 하다. 당장 부족분을 시급하게 채워야 하고 하루빨리 경제 전반에 걸쳐 대대적인 보수공사가 절실하다. 내년에 완결돼야 할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의 이행은 현재로선 무망하다. 사실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에서 주장한 대로 자력갱생의 사회주의 건설의 새로운 진격로를 열어 나가기 위한 동력을 얻을 것을 확신하면서 느긋하게 하노이로 향했다. 기차 여행이 그것을 보여줬다.  

김정은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권력안정이다. 국가와 인민을 위해 65시간의 장거리 여정을 마다 않고 달려가는 ‘인민이 바라고 덕을 볼 수 있는 일이라면 천사만사를 제쳐놓고 달라붙어 무조건 해내야’ 한다는 상황을 연출하며 지지확보를 꾀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공식방문을 마치고 3월5일 오전 전용열차로 평양에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 연합뉴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공식방문을 마치고 3월5일 오전 전용열차로 평양에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 연합뉴스

對美, 절제된 비판 속 실무회담 전개

중국을 관통한 열차 여행은 김정은에 대한 중국의 안전보장과 지지를 보여준다. 확실하게 밀어줄 테니 미국에게 고개를 숙일 필요 없다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주문이다. 김정은은 비핵화와 관련해 3단계 북·미 정상회담을 구상했을 것이다. 싱가포르와 하노이가 첫 단계이고, 평양과 워싱턴에서의 3·4차 정상회담이 두 번째,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다음 미국 대통령(트럼프 혹은 차기 대통령)과의 회담까지 고려했을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자신의 체제가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3단계 중 첫 번째인 ‘권력 안착기’가 완성되는 단계로 생각했을 것이다. 3차 평양 정상회담은 두 번째 단계인 ‘권력 도약기’의 출발이다. 4차 워싱턴 회담은 권력 도약기의 완료로, 5차 정상회담 이후는 세 번째 단계인 ‘권력 성숙기’로 구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노이 회담 결렬로 구상은 크게 틀어졌다. 비핵화와 체제안정의 구도가 대폭 수정돼야 한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첫째, 북·미 대화를 재개할 수밖에 없다. 이견에 의한 결론이지만 트럼프와 쌓은 정(?)을 완전하게 걷어차기는 곤란하다. 절제된 대미 비판을 전개하되, 당분간 스웨덴에서와 같은 비공개 북·미 실무회담을 진행할 것이다. 재선을 위해 트럼프가 손을 내밀 때가 타이밍이다. 

둘째, 시진핑 주석의 방북 추진이다. 하노이 회담에서 미국이 제기한 새로운 핵시설에 관해 북·중 간 사전 교감이 있었는지는 알기 어렵다. 그러나 김정은은 중국이 지지하는 단계적 비핵화를 여기에 포함시키려 했을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미국의 무리한 요구를 설명하기 위해 중국에 특사를 파견하고 시진핑의 조속한 답방을 요청할 것으로도 예상된다. 북·중 우호관계를 과시하고 미국을 압박하면서 대북제재의 부분 해제 요구, 중국의 대북 인도적 지원과 경협 제고를 노릴 것이다. 시진핑 입장에서도 이번 기회에 김정은을 확실하게 챙길 필요가 있다. 사실 이번 김정은의 기차 여정은 시진핑의 상징인 ‘일대일로’를 실현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동북아와 동남아를 육상으로 연결하고 그 중심에 중국이 존재하고 있음을 전 세계에 보여줬다.  

셋째, 러시아와 정상회담을 개최해 러시아의 지지도 확고히 하고자 한다. 대북제재 완화뿐만 아니라, 북한이 간절히 필요한 에너지의 확보, 그리고 시베리아 개발과 철도 연결을 위해서도 이는 필요한 부분이다. 푸틴도 북핵 문제와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증대, 미국과의 수 싸움에서 새로운 패를 확보하는 차원에서 그의 방문을 마다할 리 없다. 극동지역에서의 정상회담 개최를 선호할 것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열차를 통한 모스크바 방문도 가능하다. 

넷째, 전격적인 서울 답방이다. 북·미 합의에 의한 제재 완화와 그 대가 확보는 시일이 소요된다. 당장 외화 유입, 식량을 포함한 인도적 지원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서는 남쪽으로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다. 4·27 판문점 선언 1주년이 그 시점이 될 수 있다. 남한 주민들에 대한 강렬한 평화 이미지 구축을 원할 것이며 이를 위해 대중 접근을 요구할 것이다.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2만여 명을 대상으로 한 연설을 통해 핵 폐기 의지를 거듭 천명하고 민족공조를 강조할 것이다. 지난해 평화공세를 통해 남한 사회 내에서 ‘김정은 위인 맞이 위원회’ 발족을 목도한 김정은은 서울 답방을 통해 ‘미 제국주의에 주체적으로 대항하는 김정은 지지’ ‘북한 주민 돕기 인도적 지원 촉구’ ‘김정은 지지 금강산 관광 캠페인’ 등을 기대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문재인 정부가 미국 설득에 나설 것을 원한다.


중·러 지지 위해서라도 군사도발은 힘들어

이런 상황에서 군사적 도발은 어렵다. 하노이 회담 결렬의 주된 쟁점이 북한의 추가적 핵시설과 완전한 비핵화 의지였기 때문이다. 북·미가 합의문을 채택하고 이를 미국이 이행하지 않을 경우엔 미사일 발사와 같은 군사행동에 나설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이 감추고자 했던 핵 시설물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는 현 상황에서의 도발은 도무지 명분을 얻기가 어렵다. 섣불리 군사행동에 나설 경우 중국과 러시아도 북한을 외면하는 더욱 거센 국제적 비난에 직면할 것이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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