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의원직 승계’ 정은혜…번지수 잘못 찾은 학벌·배경 비난
  • 오종탁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19.08.09 17:3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라대 학사·하버드대 석사 이력 놓고 일부 네티즌 “학력세탁” “금수저”
가난한 목회자 가정 출신…멀어져가던 정치 꿈 다시 잡은 反轉
'다준다연구소 청년리더특강'을 통해 하버드 케네디스쿨 유학 경험을 전하고 있는 정은혜 전 민주당 상근부대변인 ⓒ '다준다연구소' 유튜브
'다준다연구소 청년리더특강'을 통해 하버드 케네디 스쿨 유학 경험을 전하고 있는 정은혜 전 민주당 상근부대변인 ⓒ '다준다연구소' 유튜브

8월9일 개각 직후 '정은혜'란 이름이 화제를 모았다. 임명된 장관 4명, 장관급 6명, 차관급 1명 중 이런 이름은 없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37세 여성 정치인이었던 정은혜씨가 관심을 모은 건 의원직 깜짝 승계 때문이다. 

민주당 비례대표 의원인 이수혁 의원이 이날 주미 대사로 내정됨에 따라 정씨는 이 의원 후임으로 의원직을 승계하게 됐다. 정씨가 갖고 있던 직함은 전(前) 민주당 상근부대변인이었다. 공당에서 상근부대변인의 역할은 미미한 게 사실이다. 이 타이틀마저 3년 전인 2016년 8월까지 유지했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출마했다가 떨어지고는 별다른 정치 활동도 없던 젊은 정치인. 20대 의원 임기가 9개월여밖에 안 남은 상황에서 극적으로 국회에 입성하게 된 반전(反轉)이다. 자연스레 정씨의 '공백기' 이력인 하버드대 케네디 행정대학원(하버드 케네디 스쿨) 유학에 관심이 쏠렸는데, 이는 때아닌 '학벌·배경' 논란으로 번졌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포털 사이트에서 정씨의 의원직 승계 관련 뉴스에 달린 댓글은 온통 학벌 얘기였다. '하버드대 졸업으로 널리 알려지고 있는 정씨가 학부를 부산 신라대(국제관계학과)에서 마쳤다'는 사실을 놓고 비난하는 네티즌이 많았다. 신라대가 지방대에 상위권 대학이 아닌 점을 들며 정씨가 '학력 세탁'을 했다고 주장하는 등 인신공격이 주를 이뤘다. 해당 댓글들엔 다른 네티즌들의 '공감'이 덧대어졌다. 

한 네티즌은 "신라대 출신 하버드 대학원? 돈 많은 집안인가 보다. 민주당은 서민을 대변한다는 소리를 집어치우길"이라고 댓글을 썼다. 다른 네티즌도 "신라대 (졸업) 이후 연세대·하버드대 석사면 꽤 사는 집안일 텐데, 별다른 사회 경험도 없는 부잣집 자녀가 (여당인) 민주당 도움으로 의원이 됐다. 좀 그렇다"고 비판했다. 정씨는 하버드대 유학 전, 19대와 20대 총선 사이 연세대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정치권과 정씨의 과거 언론 인터뷰 등에 따르면, 네티즌들이 비난하는 내용과 실제는 다르다. 정씨는 아버지가 작은 개척교회 목사인 집안에서 가난하게 컸다. 정씨 아버지는 교인이 스무 명도 채 되지 않는 교회에서 목회를 하며 헌금을 독거노인 무료급식, 미혼모 지원 등에 대부분 쓴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는 식구들과 반지하 집에 살며 고등학교는 정부에서 한 반에 한 명에게 주는 등록금 지원 혜택을 받고 다녔다고 회상했다. 대학에 입학해서는 학자금 대출, 아르바이트 등으로 등록금을 마련했고 대학원에선 조교를 하며 학비를 댔다. 

'02학번'인 정씨는 2003년 민주당원이 됐고, 2004년 총선에는 신라대가 위치한 부산 사상구에서 민주당 후보의 선거운동 자원봉사를 했다. 이후에도 각종 선거운동을 돕다가 2011년 민주정책연구원 미래기획팀의 인턴연구원이 됐다. 자신의 '짠내 나는' 성장기를 바탕으로 청년들이 진짜 필요로 하는 정치를 하고 싶다는 희망을 품었다.

정은혜 전 민주당 상근부대변인은 하버드 케네디스쿨 유학 준비 과정을 설명하며 "정치 활동 등을 하면서 10년여간 준비했다"고 말했다. 사진은 그가 유학 준비 과정에서 사용한 노트 등을 찍은 것이다. ⓒ  '다준다연구소' 유튜브
정은혜 전 민주당 상근부대변인은 하버드 케네디 스쿨 유학 경험을 설명하며 "정치 활동 등을 하면서 10년여간 준비했다"고 말했다. 사진은 그가 유학 준비 과정에서 사용한 노트 등을 찍은 것이다. ⓒ '다준다연구소' 유튜브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2012년 19대 총선 비례대표에서 27번을 받았다가 탈락했다. 4년 뒤 20대 총선에선 좀 더 앞인 비례 16번을 달았으나, 역시 고배를 마셨다. 정씨는 2016년 총선 일정을 끝내고 2006년 대학 졸업 즈음부터 10년 동안 준비했다는 미국 유학길에 나섰다. 하버드 케네디 스쿨에서 현재 남편을 만나 아이를 낳았다. 청년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고 벼르던 정씨는 어느덧 40대를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정치인으로서의 꿈은 다소 멀어지는 듯도 했다. 

2018년 5월 하버드 케네디 스쿨 석사 과정을 마친 뒤 남편의 학업 종료와 함께 지난 2월 귀국한 정씨는 6월8일 페이스북에 답답함을 내비쳤다. 정씨는 청년 정치인이 살아남기 힘든 국내 정치 현실을 꼬집은 기사를 링크하며 공감을 나타냈다. 그는 "지역구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경선에서부터 수천만 원, 본선을 가기도 어렵지만 가더라도 수억 원의 돈이 필요하다. 현직 정치인도 아니기 때문에 합법적으로 후원금을 모을 수도 없다"며 지난 19, 20대 총선 때 자금 마련이 어려웠었다고 토로했다.

ⓒ 정은혜 전 민주당 상근부대변인 페이스북
ⓒ 정은혜 전 민주당 상근부대변인 페이스북

하버드 케네디 스쿨 유학 경험에 대한 소회도 담담히 밝혔다. 정씨는 "한국에서 나의 (정치) 경험은 '커피나 타고, 율동이나 하는 청년'으로 평가됐다. 반면 케네디 스쿨에서는 에세이와 이력서를 보고 '아무런 대가가 주어지지 않아도 세상을 바꾸고 싶어 행동하는 청년'이라며 나의 과거 행동을 값지게 평가해 줬다"며 "정권이 바뀌고 세상이 바뀌어도 다시 돌아온 대한민국에서 내가 마주한 것은 아직도 뒤편에서 세상이 변하기를 외치고 있는 청년들이었다. 그들이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하고, 그들이 살아갈 미래를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씨는 하버드 케네디 스쿨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오히려 '바보가 됐다'고 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고민을 곁들이면서다. 그는 "내가 고민하는 문제들을 그곳에서 풀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 문제들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복잡하고 해결이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왔다. 한 사람의 잘난 리더가 아니라 다양한 관점을 가진 사람의 논의를 통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며 "학교를 졸업하고 아이 엄마가 됐다.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해야지 할지 고민이 된다"고 글을 맺었다.

현역 국회의원 300명 중 만 39세 이하 의원은 단 2명(0.6%)에 불과하다. 이제 정씨가 국회에 입성하게 되면 3명이 된다. 정치 꿈을 접어야 할 뻔했던 '청년 의원' 정씨의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