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과 협업해 창업하는 시대 올까 [이형석의 미러링과 모델링]
  • 이형석 한국사회적경영연구원장․KB국민은행 경영자문역 (ls@sisajournal.com)
  • 승인 2020.02.13 08:00
  • 호수 1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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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상 변하면서 사고방식도 다변화…‘이합집산형’ 창업 주류 등장 전망

이번 호에는 다소 도발적인 이슈로 미래의 창업 환경을 예측해 보려고 한다. 청년 시절, 이성 간 미팅을 하면 으레 따라붙는 이슈가 ‘사랑의 방법론’이었다. 참여자들은 대체로 플라토닉 사랑(platonic love), 순수하고 정신적인 연애가 우선이며 나중에 따라오는 것이 육체적 사랑(eros)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사랑이 정신에서 육체로 옮아가듯, 반대로 육체에서 정신으로 넘어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그로부터 수년 후, 우연히 논문 하나를 발견했다. 정신적 사랑과 육체적 사랑의 비중이 55 대 45 정도라는 내용이었다. 어느 쪽으로 가든 사랑의 관계는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최근 수직 사회에서 수평적 네트워크 사회로 바뀌면서 창업 트렌드 역시 변화하고 있다. 사진은 중국에서 개최된 빅데이터 전시회 모습 ⓒ 연합뉴스
최근 수직 사회에서 수평적 네트워크 사회로 바뀌면서 창업 트렌드 역시 변화하고 있다. 사진은 중국에서 개최된 빅데이터 전시회 모습 ⓒ 연합뉴스

PC 시대 사고는 현재와 안 맞아

이번에는 물상의 세계로 넘어와 좀 더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봤다. 1990년대 초까지 우리는 관계가 단절된 PC(Personal computer)를 썼다. PC는 글자 그대로 개인용 컴퓨터여서 서로를 연결하지 못했다. 당시 우리 사회는 수직사회였다. 톱다운(Top-down)으로 이어지는 상하관계였다. 윗사람이 퇴근한 후에야 아랫사람이 눈치 보며 퇴근하던 시대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 우리는 기능적(Integration) 사고에 익숙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PC는 온라인으로 연결된다. 각각의 PC가 병렬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물상의 병렬 연결은 인간사회를 수평관계로 이끌었다. 그때부터 조직관계는 네트워크 사회로 진입한다. 직급과 근무연수에 연연하지 않고, 각기 가진 역량과 관심도에 따라 관계망이 형성됐다. 윗사람이 퇴근하는 시간과 관계없이 업무 성과에 따라 출퇴근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던 즈음이었다.

정확하게 2000년 1월1일, 한 포털사이트의 인터넷 가입자 비중은 53 대 47로 여성이 남성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양성평등이 이슈로 떠오르기 시작한 때도 이즈음이다. 성별과 나이 차가 아닌 마인드로, 산출량(Output)이 아닌 결과(Outcome)에 따라 연봉이 결정되는 시대로 옮겨간다.

우리의 생각 역시 기능적(Integration) 사고에서 통합적(Convergence) 사고로 바뀐다. 마치 인터넷이 PC 간 연결인 것처럼 둘 이상의 제품이나 아이디어를 통합해 신제품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2010년대까지는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

2020년대로 접어들면서 로봇, 즉 인공인간 시대가 됐다. 인간을 대상으로 한 표적집단면접조사(Focus Group Interview)보다 빅데이터 해석이 우선시되는 세상이 도래했다. 현실보다 가상의 세계가 더욱 중요해지는 시대로 옮아온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의 생각도 빅데이터가 전해 주는 생각을 검증 없이 이어받아 즉각적이고 직관적이며 단순해졌다.

개인의 의견보다 인터넷 세상의 의견이 우선시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인터넷에 띄워진 나는 ‘내가 아닌 내 아바타’가 사는 세상이다. 매일같이 SNS를 끼고 살다 보니 실제 나보다 가상의 페르소나가 나처럼 인식된다. 인터넷으로 수집된 모든 빅데이터는 이렇게 내 페르소나가 배설한 사상과 행동들의 데이터이며 세상은 이런 데이터로 나를 조종하고 구매를 유도한다.

더스틴 호프먼이 주연한 1982년작 《투시(Tootsie)》를 살펴보자, 영화 속 호프먼이 분한 ‘도로시’는 여장 남자다. 전미비평가협회로부터 남우주연상을 받을 정도로 가장 지적이고 완벽했다. 감독인 시드니 폴락은 호프먼에게 ‘바뀐 역할이 재미있고 낭만적이며, 지극히 현실적이어야 하고, 부드러우면서도 흔들림 없는’ 역할극을 요구했다.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도 관객들은 도로시를 완벽한 여성으로 생각할 정도였다.

지금 우리는 ‘도로시’ 같은 ‘드랙(Drag) 사회’로  넘어왔다. 드랙은 여자와 남자가 서로 반대 성별의 옷차림을 하는 ‘크로스 드레싱’의 한 종류다. 즉, 내가 아닌 또 다른 나의 정체성이 필요한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이제 우리는 혼란스럽지만 두 개의 정체성을 가진 이중인간으로 살아간다.

2020 인공인간 시대에는 통섭(Consilience) 역량을 요구한다. 사물이나 지식을 널리 통합해 사고하는 개념이다. 즉 수직에서 수평으로, 다시 통섭으로 넘어오면서 인간관계나 감정도 이와 같이 변하고 있다. 통섭의 다른 해석은 이질적 물상 간의 조화로움이다. 전혀 다른 물상에서 필요한 부분만 추려 묶는 생각의 패턴인 것이다.

 

필요 따라 헤쳐 모이는 매시업 창업 시대

이제 창업으로 넘어가 보자. PC가 주된 도구였던 수직사회에서는 정형화된 비즈니스 모델이 대부분이었다. 제조, 무역 혹은 치킨집, 빵집같이 이미 모델링이 완성된 업종으로 창업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인터넷 시대, 즉 수평적 네트워크 사회로 넘어오면서 비정형 비즈니스 모델이 속속 등장한다. 정형화돼 있지 않다 보니 혼자 창업하기는 어려운 시대가 온 것이다. 이에 따라 협업이 중요한 창업 조건으로 떠올랐다. 수직사회에서 창업한 월마트의 샘 월튼(Sam Walton)이나 맥도날드의 레이 크록(Ray Krok)은 혼자서 창업했다. 하지만 수평사회에서 창업한 이베이의 피에르 오미디어(Peirre Omidyar)는 3명이, 알리바바의 마윈(馬雲)은 무려 17명이 공동 창업했다.

그렇다면 인공인간 시대에는 어떤 창업 경향을 보일까. 예측하건대 이질적 이합집산형 창업이 주류를 이룰 것이다. 창업 동지가 끝까지 동행하지 않으며, 파트너도 동맹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헤쳐 모여서 세상에 없는 산출물을 만들어내는 매시업(Mash-up) 시대로 바뀔 것이다. 분야에 구분이나 제한 없이 기능과 콘텐츠를 묶는 새로운 창업 패러다임이다. 로봇이 제공한 재료로 인간과 로봇이 함께 창업하는 매시업 창업시대.

지금 우리는 로봇을 그냥 인공지능을 가진 기계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1990년대 초기 인터넷 공간을 사이버 스페이스라 했듯이 앞으로 로봇은 인공인간으로 인간의 실제 세상에서 함께 생각하고 함께 행동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창업도 인공인간과 협업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주류를 이룰 것이며, 그 서비스의 대상 소비자도 실제 인간이 아닌 가상공간에 사는 인간 페르소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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