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개가 기피 음식이 됐다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0.06.18 08:00
  • 호수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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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바뀐 직장인 식사 문화…정부도 감염에 취약한 식문화 개선 나서

김치찌개 4인분에 라면 사리 하나. 직장인들이라면 자주 시켜봤을 메뉴다. 한식 중의 한식, 여러 명이 상에 둘러앉아 음식을 함께 먹는 한국식 문화까지 완벽하게 접목된 김치찌개는 수년 동안 한국 직장인들이 자주 먹는 점심식사 메뉴 톱3 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사랑받는 메뉴였다. 누군가는 김치찌개가 담긴 큰 냄비에 숟가락을 넣어 국물을 떠먹기도 하고, 자신의 젓가락을 냄비에 넣어 휘휘 저으며 라면 사리를 건져 먹는 이도 있었다. 테이블당 한 접시씩 놓이는 반찬들은 공용이다.

반찬과 찌개까지 ‘공유’하는 식사 문화. 밥을 같이 먹고 수저를 부딪히며 ‘정’을 나눈다는 명목 아래, 함께여야 하는 분위기를 거절할 수 없어 억지로 식사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가장 한국적이며 가장 정 있는 밥상 메뉴는 같이 먹는 찌개이기에. 그러나 이제 찌개의 위상은 달라졌다. ‘정’이 아니라 ‘침방울’을 나누는 대표적인 음식으로 찌개가 인식되기 시작했다. 식당에서 비말을 통해 코로나19에 확진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불안감은 더 커졌다. 찌개는 이제 직장인들이 주의하고 기피해야 할 메뉴가 됐다.

ⓒ시사저널 임준선
ⓒ시사저널 임준선

직장인 73.4% "찌개 메뉴 주의해야"

코로나19는 많은 것을 바꿨다. 일상, 여가, 업무 형태까지도 바꿔버렸으니, 코로나가 근 다섯 달 동안 사람들의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는지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식(食)문화다. 음식과 관련된 변화는 단순히 배달 시장이 확장된 데 국한되지 않는다. 코로나19로 인해 음식에 대한 기준과 인식 자체가 바뀌고, 전통적인 것으로 여겨왔던 식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6월3일 내놓은 흥미로운 조사 결과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9~59세 직장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직장인의 점심시간과 관련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에 따르면, 본래 직장인들이 즐겨 먹는 메뉴는 김치찌개(52.7%·중복응답)와 짜장면(50.1%)이었고, 그 뒤를 짬뽕(42.4%)과 돈가스(40.9%), 햄버거(38.6%), 제육볶음(36.6.%)이 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발생한 이후 직장인들의 점심 풍경에는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음식을 나눠먹는 것을 꺼리는 태도가 강해지면서 김치찌개나 부대찌개 등 찌개류에 대한 선호도가 곤두박질쳤다. ‘찌개처럼 다 함께 먹는 메뉴는 주의해야 한다’는 것에 직장인들의 73.4%가 동의했고, 특히 ‘찌개 메뉴를 기피한다’는 응답도 전체의 절반 이상(53.0%)을 차지했다. ‘찌개처럼 다 함께 먹는 메뉴를 먹게 되는 경우에는 새 수저를 이용해 퍼먹는 편’이라는 직장인이 2명 중 1명(48.8%)에 달했다.

직장인들이 찌개 등 ‘공용 메뉴’를 기피하는 경향을 보이면서 도시락 등 1인 상차림으로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인기를 끌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다 함께 메뉴' 기피 비율, 중장년층에서 가장 높아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연령대에 있다. 찌개류를 기피하는 경향이 중장년층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 것이다. 혼밥에 익숙하고, 음식 공유 문화를 기피하는 성향은 본래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에서 두드러졌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전파에 대한 두려움은 이 세대보다 중장년층에서 더 높았고, 비말 전파 우려가 있는 음식을 꺼리는 비중도 더 높게 나타났다. 20대의 48%, 30대 50%, 40대 52.8%, 50대 61.2%가 ‘다 함께 먹는 메뉴를 기피한다’고 응답했다. 찌개류를 먹을 때 새 수저를 이용하는 비중은 20대에서 40.4%, 50대에서 64%였다.

대부분 모든 연령층에서 성별을 불문하고 공용 메뉴를 주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젊은 층보다는 중장년층에서, 남성보다는 여성이 개인의 주의가 필요하다는 데 더욱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찌개 같은 메뉴를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데 여성의 80.8%, 남성의 66%가 동의했고, ‘찌개 등 메뉴를 기피한다’는 항목에는 여성의 62.2%, 남성의 43.8%가 동의했다. 다 함께 먹는 메뉴를 지양하자는 제안을 하는 일도 늘어났다. ‘해당 제안을 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하는 직장인은 26.8%에 그쳐, 음식을 나눠먹는 것을 피하는 경향이 대부분의 직장 문화로 자리 잡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음식을 나눠먹는 식문화는 이제 ‘비위생적’, ‘피해야 할 문화’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전부터 감염병이 나타날 때마다 음식 공유 문화가 비위생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감염을 막기 위해 되도록 앞접시에 음식을 덜어먹고, 공용 국자 등을 이용하자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었다. 2003년 신종 감염병 사스가 전 세계를 강타하자 ‘국자 사용 운동’이 등장했고, 2009년 신종플루 때는 ‘같이 먹기 주의보’가 내려졌으며, 2015년 메르스 때는 ‘음식 덜어먹기 캠페인’이 벌어졌다. 그러나 감염병이 주춤해지면 위험성은 다시 간과됐다. 국자와 앞접시를 이용해 각자 따로 떠먹기를 원하던 사람들은 단체생활 속에서 타인의 타액을 공유해야 하는 상황에 속앓이를 했다. 덜어 드시라고 한 소리 했다가는 ‘내가 더럽냐’는 역습을 당하기도 하고 말이다.

정부도 코로나19 계기로 식문화 개선 나서

함께 먹는 식문화가 감염병에 취약하다는 지적은 올해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다시 제기됐다. 지금이 식문화의 새로운 표준을 정립할 때라는 것이다. 역시 음식을 함께 먹는 문화가 일반적인 중국도 비상이 걸렸다. 중국에서는 음식을 배분할 때 사용하는 공용 젓가락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실험을 하기도 했다. 항저우 질병예방통제센터 전문가들의 실험 결과, 여러 명이 함께 식사하면서 개인 젓가락으로 음식을 나눠 먹을 경우에 남은 음식에서 검출된 세균은 공용 젓가락을 사용할 때에 비해 최대 250배 많았다. 젓가락에 묻어 있는 침은 위염, 위궤양, 십이지장궤양, B형 간염까지 전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을 통해 식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중국 내에서 나오고 있다. 베이징시는 6월1일부터 공용 젓가락과 국자 사용 등을 규정한 ‘문명행위’ 조례를 시행했다.

우리 정부도 식문화 개선에 나섰다. 함께 먹는 문화가 감염병에 취약해지는 원인이 된다고 판단, 이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수립한 것이다. 정부는 업계 간담회 및 지자체 우수 사례 등을 통해 음식 덜어먹기, 위생적 수저 관리, 종사자 마스크 쓰기를 ‘3대 식사 문화 개선과제’로 선정했다. 일부 지자체는 개인접시에 덜어먹을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하는 등 방역수칙을 준수하는 외식업체를 ‘안심식당’으로 지정하고 있는데, 이러한 사례를 전국으로 확대해 안전한 식사 문화가 조성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음식을 나눠먹을 수 있는 맞춤형 식기를 발굴하고 보급하기 위해 공모전을 개최하고 상품화시키는 등 연관 산업을 활성화하고, 각종 매체를 통한 릴레이 실천 캠페인도 추진할 계획이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쓰던 젓가락으로 고기 굽지 않기’ ‘상대방 접시에 음식 얹어주지 않기’ 등의 캠페인도 열고 있다.

이미 오피스가와 대학가를 중심으로 1인 상차림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이 성업 중이다. 한 쟁반 안에 개인 반찬과 메인 메뉴를 담아주기 때문에 반찬을 덜어먹을 필요도, 함께 먹지 않으려고 눈치를 볼 필요도 없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사실 각자 반찬을 따로 먹는 1인 1상 문화는 과거 우리의 전통이었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까지는 1인이 한 상에서 밥을 먹는 독상이 일반적이었다. 민가부터 사대부 집까지 집집마다 소반이 갖춰져 있었고, 주식인 밥과 함께 여러 반찬을 상에 올려 한 사람씩 먹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이 문화는 바뀌었다. 군수물자로 쓰기 위해 놋그릇 등을 차출하면서 식기가 부족해지자, 일본은 터져 나오는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온 가족이 한 상에서 밥을 먹어야 한다'는 캠페인을 벌였다. 그때부터 음식을 공유하는 문화가 시작됐다. 이후 한국전쟁으로 인해 물자난이 이어지면서 겸상 문화가 지속됐고, 마치 전통처럼 자리 잡게 됐다. 이렇게 식문화는 그 시대의 상황에 맞춰 변했다. 코로나19로 많은 변화를 겪고 있는, 개인위생이 가장 중요하게 대두되는 지금. ‘따로 먹기’라는 식문화는 과연 새로운 ‘뉴노멀’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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