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불시착》, ‘코로나 블루’에서 세계를 구원하다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6.20 10:00
  • 호수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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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통해 해외 시청자 사로잡아…“힐링 콘텐츠” 평가

tvN에서 올 2월 종영한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 세계적으로 화제다. 미국 매체 옵서버가 발표한 ‘코로나19 사회적 격리 기간(3월21~27일) 동안 많이 시청된 넷플릭스 TV쇼’ 영화 순위에서 6위에 올랐다. 미국 PC매거진은 ‘전 세계 OTT에서 가장 많이 본 콘텐츠’ 순위에서 《사랑의 불시착》을 4위로 꼽았다.

일본에선 제2의 《겨울연가》라는 평도 나왔다. 아베 총리의 한국 때리기가 극에 달한 상황인데도 《사랑의 불시착》이 한류 바람을 일으킨 것이다. 일본 넷플릭스의 5월 시청 1위작이 바로 《사랑의 불시착》이었다. 한국 드라마의 저변도 넓혔다. 《겨울연가》의 주 시청층은 40~50대 주부였는데, 이 작품은 10~30대 젊은 여성들과 50대 남성들에게도 인기를 얻고 있다.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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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고증이 만들어낸 실감 나는 北 묘사

《별에서 온 그대》를 쓴 박지은 작가의 작품이다. 한류 신화를 만들어온 로맨틱코미디 멜로 경쟁력이 다시 한번 빛을 발했다. 거기에 분단이라는 한국만의 특수한 배경을 녹여냈다. 재벌 상속녀 윤세리(손예진)가 패러글라이딩 사고로 북한에 넘어가 북한군 총정치국장의 아들로 엘리트 장교이며 피아니스트이기도 한 리정혁 대위(현빈)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이다.

멜로 드라마의 왕자님 코드는 보통 재벌 2세로 나타나는데, 여기선 총정치국장(군 서열 1위)의 아들로 바뀌었다. 북한은 자본가가 없고 권력자의 위상이 강해 왕자님 코드의 북한식 변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 멜로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은 무일푼 캔디지만 여기선 재벌 상속녀다. 하지만 북으로 넘어간 순간부터 무일푼 신세로 남주인공 집에 얹혀살며 보호를 받게 된다. 반면에 남주인공은 영민한 두뇌, 특수요원급 전투력, 아버지의 권력으로 여주인공을 보호하고 피아니스트의 섬세함과 다정다감함으로 감싸주는 완벽남이다. 게다가 요리까지 잘한다.

이렇게 전형적인 구도이기 때문에 국내 방영 당시 큰 호평을 받진 못했다. 시청률 21.6%로 tvN 드라마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워 성공작으로 남긴 했지만 박지은 작가와 현빈, 손예진이 만난 기대작치고는 조용하게 넘어간 편이었다. 그런데 2월 국내 방영이 끝나자마자 넷플릭스에 소개돼 나라 밖에서 대박이 났다.

열풍이 거세자 일본 후지TV 시사정보 프로그램 《도쿠타네》는 15분여에 달하는 특집방송을 내보냈다. 첫째, 주연 두 명의 압도적인 인기. 둘째, 코로나19로 인한 OTT 이용자 증가. 셋째, 리얼한 북한 묘사. 《도쿠타네》는 이 세 가지를 인기 요인으로 꼽았다.

코로나19로 인한 OTT 이용자 증가가 인기 요인으로 꼽힌 것은, 젊은 세대와의 접점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기존 한류 드라마는 전문 채널, DVD 시장, 지상파 방송 등의 경로로 소개됐는데 주로 중장년 여성층이 대상이었고 한국과의 시차도 커서 2년 이상 지난 작품이 많이 방영됐다. 반면에 넷플릭스는 젊은 층이 선호하는 미디어이고, 최신 한국 드라마를 곧바로 소개했다. 코로나19로 넷플릭스 시청자가 늘어나자 한국 드라마가 주목받게 됐다. 거꾸로 한국 드라마 때문에 넷플릭스 시청자가 늘어나기도 했다. 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에 주목한 이유를 여기서도 알 수 있다.

북한에 대한 묘사가 리얼하다는 것은 국내 방영 당시 탈북자들도 인정한 부분이다. 박지은 작가가 탈북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고증에 공을 들였다고 한다. 그래서 생소했던 북한 일반 마을의 모습이 재현됐다. 전기가 수시로 끊어지는 모습이나 냉장고를 대신하는 음식물 저장고, 온갖 물건이 거래되는 장마당, 기차가 중간에 멈춰 노숙을 할 정도로 열악한 교통 사정, 피폐한 일반인과 차별되는 평양 상류층의 부유한 모습 등이 관심을 모았다.

이 때문에 북한 당국이 이 드라마를 불편해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박지은 작가는 북한 최고 권력을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내용만은 제외해 논란을 차단했다. 이 북한 묘사 부분이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다. 캐나다 ‘밴쿠버위클리’는 “국경을 넘은 러브스토리뿐만 아니라 북한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들의 완벽한 케미스트리로 눈길을 사로잡는 드라마”라고 썼다.

 

“우울한 시기, 아로마 캔들처럼 희망을 준 드라마”

뛰어난 완성도도 또 다른 인기 요인이다. 황당한 상상을 어색하지 않게 구현했고, 영상도 아름다웠다. 마을 주민들과 현빈 부하병사들의 코믹한 설정으로 부담 없이 가볍게 볼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콘텐츠가 됐다.

발전된 자본주의 산업사회에선 보기 힘든 풍경이 따뜻한 느낌을 줬다. 휴전선 인근의 시골 마을인데 우리로 치면 60년대 같은 분위기였다. 공동체의 정이 살아 있는 우화 같은 풍경. 커피콩을 볶아 원두커피를 만들어 먹고, 면을 뽑아 국수를 만들어 먹는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 같은 모습이 나왔다. 각박한 산업사회의 사람들이 위로받을 모습이다.

이렇다 보니 보수층으로부터 ‘북한 미화 드라마’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너무 살 만한 세상으로 그렸다는 지적이다. 북한에서 자유롭게 거리를 오가는 게 말이 안 된다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수용소 같은 통제사회라도 그 안에서 일상적인 삶은 이어지는 법이다. 자본주의가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순박한 상태라는 점도 짐작할 수 있다. 북한 체제가 비인도적이고, 북한 지도자들이 호전적인 언사를 일삼는 것과 일반 주민이 소소한 일상을 보내는 것은 별개의 사안이다. 《사랑의 불시착》은 미지의 저개발 국가 북한의 소소한 일상을 우화적으로 그려 각박한 삶에 지친 사람들을 위로해 줬다. 일본의 한 기자는 이렇게 썼다. “더없이 우울한 시기. 마음에 아로마 캔들처럼 희망을 주었던 것이 한국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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