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당신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20.06.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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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이제훈 회장
“아이들이 불행한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마냥 안전한 것만은 아니다. 수많은 학대 피해가 가정 내에서 발생하고 있다. 2018년 기준 1만8919명의 아이들이 부모에 의해 학대 당했다. 하루 평균 52명의 아이들이 부모 손에 맞거나 정신적·성적 수모를 겪고 있는 것이다. 경남 창녕에서 9살 여자 아이에게 목줄을 채우고 뜨거운 프라이팬으로 화상을 입게 한 것 역시 그의 친아빠였다. ‘아이들이 안전하고 행복한 세상’은 실현 가능한 사회인 걸까.

이제훈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하 어린이재단) 회장(80)은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위해서는 “아동을 부모의 소유물로 여기는 인식을 바꾸는 것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어린이재단은 국내 아동복지전문기관 중 최대 규모이자 가장 역사가 오래 된 단체이다. 어린이재단은 1948년 CCF(기독교아동복리회) 한국지부로 활동을 시작한 이래 현재 국내 163만여 명, 해외 75만여 명의 아이들에게 직간접적 도움을 주고 있다. 이 회장은 어린이재단에서 10년째 회장을 역임 중이다. 6월12일 어린이재단 사무실에서 이 회장을 만나 아동학대의 근본 원인과 근절 대책 등에 대한 고민을 들었다.

이제훈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회장 ⓒ 시사저널 최준필
이제훈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회장 ⓒ 시사저널 최준필

매년 아동학대 사건이 2만여 건 넘게 발생하고 있다. 수많은 캠페인과 종합대책에도 불구하고 아동학대 사건이 근절되지 않는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나.

“아이들에 대한 기본 인식 자체에 문제가 있다. 아이를 부모의 소유물로 여기는 분위기 말이다. 아이들은 존중받아야 할 인격체이며 그 자체로 귀중한 생명체이다. 부모라 할지라도 아이들을 함부로 대할 수 있는 권리는 없다. 어린이재단은 이 같은 인식 개선을 위한 캠페인에 앞장서고 있다.

또 육아가 부담스러워진 사회 구조도 한 몫 한다고 본다. 워낙 경제가 어렵다보니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가 짐처럼 여겨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과거에는 대가족이 함께 살면서 육아에 대한 지혜를 나눴지만, 현재에는 가족 해체 현상으로 인해 (아이들이) 외롭게 크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런 사회 구조 속에서는 불행한 아이들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아동학대 자체도 심각한 문제이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구조적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아동학대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 솜방망이 처벌이 꼽히는데. 현행법상 아동학대 처벌 수위가 적당하다고 보는가.

“아동학대 가해자 중 징역 10~15년 중징계를 받은 사례는 3건밖에 없다. 대부분 5년 이하의 형을 받는 데 그친다. 솜방망이 수준이 맞다. 아동학대는 명백한 범죄다. 정부가 강력하게 개입해서 범죄를 차단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아동학대의 기저에는 ‘체벌은 훈육’이라는 왜곡된 인식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이에 법무부는 친권자의 자녀 징계권 조항인 민법 915조를 삭제하고 체벌 금지를 명문화하기로 했다. 적절한 조치라고 보는가.

“좋은 시도다. 해당 법조항은 학대 가해자들의 변명거리로 활용돼 왔던 것이 현실이다. 아동학대에 대한 우리사회의 인식변화를 위해서라도 징계권을 삭제하는 것은 필요한 조치다. 다만 동시에 효과적인 자녀의 훈육 방법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당장 ‘체벌하지 않으면 어떻게 아이를 키우라는 말이냐’ 따위의 반발이 나오고 있지 않은가. 무조건 체벌을 법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어떻게 교육하면 좋을 지 그 대안을 함께 고민할 시점이다.”

 

아동 대상 성학대도 심각한 현실이다. 최근 한국사회를 뒤흔든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의 피해자 대부분이 미성년자였다. 또 한국인이 운영한 세계 최대 아동성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W2V)’에서는 2~3세의 유아가 성폭행당하는 장면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큰 충격을 안겼다. 일련의 사건에 대한 어린이재단의 입장은 무엇인가.

“어린이재단은 아동옹호대표기관으로서 아동청소년법 개정에 대한 목소리를 높여 왔다. 가해자에 대한 일벌백계도 중요하지만, 피해아동에 대한 보호와 지원에 신경 써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가장 목소리를 높였던 부분이, 성매매의 대상이 된 아동이 피해 사실을 스스로 입증하지 못하면 ‘대상 아동’으로 분류돼 형사처벌에 준하는 처분을 받게 되는 현실이었다. 이는 미성년자가 성적착취를 당했는데도 처벌이 두려워 피해를 신고하지 못하게 만드는 데 악용됐다. 이에 대한 서명 운동을 진행해왔다. 이에 지난 4월29일 재단의 목소리가 반영돼 아청법이 개정됐다.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성범죄 처벌은 강화되어야만 한다.”

 

코로나19 여파로 경제가 어려워졌다. 어린이재단 후원금 규모에는 영향이 없나.

“오히려 후원금액이 늘었다. 전년동월대비 모금액 총액이 12%나 증가했다. 한국 사람들은 어려울 때 서로 돕는 기질이 있는 것 같다. IMF 당시에도 어린이재단 후원금액은 줄어들지 않고 계속 유지됐다. 다만 최근 정의기억연대의 회계 부정 논란으로 인해 어린이재단의 회계 투명성에 대해 문의하는 후원자들이 늘었다. 그러나 투명성 만큼에는 자신 있다. 후원금에 의존하는 NGO들의 생명은 투명성에 있다는 것이 나의 소신이다. 후원금을 엉뚱한 데 기록도 없이 가져다 쓰는 등의 부정행위는 절대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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