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아베, 뜨는 이시바…한·일 관계 변수 될까
  • 류애림 일본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7.01 11:00
  • 호수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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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 측근 금품수수 비리 후, ‘친한파’ 이시바 총리 후보 급부상

일본 아베 신조 총리의 지지율이 하루하루 낮아지는 가운데, 그에게 또 다른 악재가 발생했다. 가와이 가쓰유키 전 법무상과 그 부인 가와이 안리 참의원이 금품 선거 혐의로 체포된 것이다. 일본 중의원에 7차례 당선된 가와이는 아베 총리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2012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는 아베를 지지하며 추천인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고, 이후 아베 정권의 내각총리대신 보좌관으로 임명돼 주로 문화와 외교를 담당했다. 2019년 9월에는 법무상에 취임했지만 한 달여 만인 10월31일 사퇴했다. 부인 가와이가 참의원 선거운동 과정에서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는 의혹이 주간지를 통해 보도되었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자민당 본부로부터 1억5000만 엔(약 17억원)의 자금을 지원받아 치른 선거였다. 2020년 들어 가와이 부부의 비서들이 체포·기소되기에 이르렀고, 6월18일에는 표를 모아 달라는 부탁과 함께 지방의원 등에게 약 2570만 엔(약 3억원)의 금품을 건넨 혐의로 부부가 모두 체포됐다.

아베 총리의 측근이라는 이유로 같은 당의 다른 의원들보다 10배에 달하는 지원금을 받고, 이 지원금을 표를 매수하는 데 부정하게 사용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측근을 법무상에 앉히고, 그 부인의 선거를 적극적으로 지원한 아베 총리에게 책임을 묻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아베 총리의 위기가 고조되면서, 그의 정적인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이 ‘포스트 아베’로 부상하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왼쪽)과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 ⓒAP 연합
아베 신조 총리(왼쪽)과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 ⓒAP 연합

아베 지지율 급락하자 ‘차기 총리’ 관심 커져

6월23일 발표된 NHK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베 내각 지지율은 36%로 지난 2월부터 계속 떨어지고 있다.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대답은 49%에 달해, 2012년 12월 제2차 아베 내각이 발족한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같은 날 결과가 발표된 아사히신문의 여론조사에서는 가와이 부부의 체포와 관련해 가와이를 법무상으로 임명한 아베 총리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58%가 책임이 크다고 대답했다. 또 왜 1억5000만 엔이나 지원했는지 자민당 총재로서 아베 총리의 설명이 충분했느냐는 질문에는 무려 80%가 충분하지 않다고 대답했다.

아베 총리의 임기는 약 1년3개월 남았다. 하지만 계속 떨어지는 내각 지지율에 중의원 해산 목소리도 여기저기에서 나오고 있으며, ‘포스트 아베’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기 시작했다. 자민당의 각 파벌들은 ‘포스트 아베’를 준비하기 위해 서로에게 접근해 지지 기반을 만들기 시작했고, 일본 관료들이 다음 총리가 될 가능성이 큰 인물을 방문하는 일도 잦아졌다. 현시점에 ‘포스트 아베’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사람은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이다.

아사히신문의 여론조사에서 아베 총리 이후 차기 자민당 총재에 누가 적합한가라는 질문에 31%가 이시바 시게루를 지목해 1위를 차지했다. 지난 2월 조사 때의 25%에 비해서도 높아졌지만, 지난해 9월의 18%와 비교하면 크게 높아진 것을 알 수 있다. 이시바는 아베의 ‘천적’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그에 비해 아베가 지지한다고 알려진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은 4%를 획득해 지난 2월과 지난해 9월의 6%에 비해 하락했다.

2012년 9월의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는 지방의회 의원과 국회의원이 모두 투표하는 1차 투표에서는 1위를 차지했지만, 국회의원만 참가하는 2차 투표에서 89표를 얻어 108표를 획득한 아베에게 패배한 전력이 있다. 2015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는 출마하지 않았고, 2018년 총재 선거에서 또다시 아베에게 패했다. 이시바의 패배와 불출마가 곧 아베 총리의 장기 집권으로 이어졌다.

 

이시바, 역사 인식에서 아베와  큰 차이

그간 이시바는 아베 정권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지난 2월 잡지인 분게이주(文藝春秋) 기고에서는 “아베 총리의 ‘벚꽃을 보는 모임’에 대한 설명이 불충분했다” “아베 정권에는 총리에게 귀가 아픈 소리를 해 주는 이가 없다”는 등의 지적을 하기도 했다. 가와이 부부의 체포에 대해서는 “금품이 움직이고, 그에 따라 판단이 왜곡되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모독과도 같다”며 강하게 비판했는데, 이는 비단 가와이 부부를 향한 비판만은 아니라는 게 일본 정가의 평가다.

이시바의 경우 역사 인식에서도 아베 총리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지난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에 대해서도 2019년 8월23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생각을 밝혔는데, 근본적인 원인이 일본에 있다는 입장이었다. 그 글은 ‘오부치-김대중 시대와 같은 양호한 관계’로의 복귀를 바란다며 시작된다. 이어 한·일 관계의 문제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 빠졌지만, 일본과 한국 모두 ‘이대로는 곤란하며, 해결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적었다. 이어 이시바는 ‘일본이 패전 후, 전쟁 책임과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았던 것이 많은 문제의 근저에 있고, 그것이 오늘날 여러 가지 형태로 표면화했다고 생각한다’며 역사적 책임을 회피해 온 일본의 태도를 지적했다.

실제 이시바는 2002년 방위청장관에 임명된 이후로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도 하지 않고 있으며, 2008년에는 야스쿠니 신사에서 A급 전범을 분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전쟁에 가라고 말한 사람과 그 말을 믿고 나라를 위해 전장에 나간 사람은 입장이 완전히 다르다” “전쟁 지도자와 소집된 쪽은 다르다”는 것이 그 이유다.

3선까지 가능한 현재의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 규정을 고치지 않는 한 아베 총리에게 남아 있는 임기는 1년 남짓이다. 물론 당규를 고치면 4선까지도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 여론은 4선을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다. 아사히신문의 여론조사 결과 69%가 4선에 반대했고, 자민당 지지층에서도 54%가 반대한다는 응답을 했다. 지난 2월의 각각 60%와 43%에 비하면 반대 의견이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조기 해산을 통해 여론을 반전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만큼, 지금 아베로선 4선은커녕 1년3개월의 남은 임기를 지키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할 지경이다. 물론 현직 일본 총리가 중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예는 없지만, 아베 총리가 사면초가에 놓인 것은 사실이다.

그에 비해 이시바 전 간사장은 차근차근 총재 선거를 준비하고 있는 듯하다. 일본 총리는 국민에 의한 직접선거가 아니라 여당 국회의원들에 의해 간접 선출된다. 따라서 여론조사 결과보다는 현재 여당인 자민당 내의 파벌 지지가 중요한데, 이시바는 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간사장에게 접근해 니카이가 이끄는 파벌의 지지를 얻어낸 듯하다. 니카이는 6월8일 회견에서 “장래에 더 높은 곳을 목표로 전진해 줬으면 하는 기대주”라고 이시바를 평가하기도 했다. 여론을 등에 업고 다음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가 승리할 수 있을지, 아베와는 정반대의 역사 인식을 가지고 있는 이시바가 차기 총리가 된다면 지금 최악인 한·일 관계가 개선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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