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노사정 합의안 거부한 민주노총…격랑 속으로
  • 이민우 기자 (mwlee@sisajournal.com)
  • 승인 2020.07.24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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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위기 극복 노사정 합의안, 임시 대의원대회서 부결
김명환 지도부 사퇴 후 선거국면…현 정부 내 사회적 대화 어려울듯

민주노총이 끝내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합의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노사정 합의안 찬반 투표를 진행한 결과, 반대표가 더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로써 22년 만에 민주노총이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는 무산됐다. 민주노총은 지도부 사퇴 등으로 또다시 격랑에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당분간 사회적 대화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민주노총은 23일 온라인으로 임시 대의원대회를 열고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합의안 찬반 투표를 진행했다. 투표 결과, 재적 대의원 1479명 중 1311명이 투표에 참여해 805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61%의 반대로 부결된 것이다. 찬성은 499명, 무효 7명이었다. 표결은 이날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전자투표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같은 결과는 사실상 이미 예고됐다. 노사정 합의안 반대파에선 20일 재적 대의원의 과반인 809명으로부터 합의안 폐기를 위한 서명을 받았다며 명단을 공개했다. 투표 결과, 대의원 연서명이 거의 그대로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민주노총 내 반대파는 민주노총이 요구해온 '해고 금지'가 노사정 합의안에서 빠진 점을 집중적으로 문제 삼았다. 해고 금지가 '고용 유지'라는 추상적 용어로 대체됐다는 불만이었다. 경영계의 요구를 일부 반영한 부분에 대해서도 '독소 조항'이라며 비판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23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노사정 합의안이 부결된 직후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굳은 표정으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23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노사정 합의안이 부결된 직후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굳은 표정으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노사정 합의안은 정세균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지난 5월 출범한 노사정 대표자회의에서 40여 일 간의 논의를 거쳐 마련됐다. 코로나19 사태 대응을 위한 고용 유지와 기업 살리기, 사회 안전망 확충 등의 협력 방안을 담고 있다. △고용유지지원금을 90%로 상향하고 3개월 연장 추진 △고용유지를 위한 노사의 고통분담 △기간산업안정기금 등 자금 지원 △전국민고용보험 도입 △고용보험 재정건전성 확보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민주노총 내에서 합의안이 부결되면서 노사정 합의안은 '반쪽 짜리'로 전락하게 됐다. 물론 민주노총이 서명하지 않더라도 노사정 합의 자체는 효력을 낼 수 있다. 민주노총이 반드시 참여해야 효력이 생기는 '법적 합의'가 아닌 '선의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다만 국내 최대 노동단체인 민주노총의 합의 거부로 그 의미는 절반으로 줄게 됐다.

노사정 합의안 부결에 따라 김명환 위원장을 비롯한 민주노총 지도부는 24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거취를 포함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올해 말까지가 임기였던 김 위원장은 부결될 경우 사퇴하겠다는 뜻을 이미 밝혔다. 지도부가 사퇴하면 민주노총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린 후 선거국면에 접어든다. 이어지는 선거 국면에서 정파 갈등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민주노총의 운명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당분간 노사정 대타협을 기대하기도 어렵게 됐다. 이번 투표 결과 민주노총 내 사회적 합의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재차 확인됐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IMF 위기 때인 1998년 노사정위원회 합의에 참여했다가 내홍을 겪은 '트라우마'가 있다. 2005년에도 노사정위원회 참여 여부 등을 놓고 격하게 내부 갈등을 겪기도 했다. 2017년 말 사회적 대화를 공약으로 내걸고 김 위원장이 당선되면서 변화의 바람이 불었으나, 대의원대회에서 번번히 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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