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이 글로벌해지자 쏟아지는 비판들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8.01 14:00
  • 호수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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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핑크와 노라조의 사과가 의미하는 것

최근 그룹 노라조 멤버 조빈이 노래 《카레》와 관련된 논란에 대해 사과했다. 무려 10년 전인 2010년의 곡이다. 최근 세븐틴 멤버들이 《카레》를 부르는 장면이 방송됐는데, 해외 시청자들은 《카레》의 가사가 인종차별적이며, 뮤직비디오 역시 인도에 대한 고정관념이 담겨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조빈이 “노라조는 인종차별이나 종교 모독의 생각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인도 본고장 느낌을 내기 위해 사용한 몇 가지 단어가 그 말을 사용하시는 그 나라 분들에게 어떤 의미로 쓰이고 또 얼마나 신성한 말인지 제대로 된 뜻 파악이 되지 못했다. 분명한 저희의 실수”라며 사과했다.

최고의 한류 걸그룹으로 떠오른 블랙핑크도 현재 활동곡인 《How You Like That》과 관련해 홍역을 치렀다. 뮤직비디오에 힌두교 신 가네샤 신상이 부적절하게 사용됐기 때문이다. 가네샤는 코끼리의 머리를 가진 지혜와 행운의 신인데, 뮤직비디오에서 신상이 바닥에 놓여 있는 것을 본 팬들이 종교 모독이라고 비판했다. 블랙핑크 측은 모독의 의도가 없었다고 사과하고 해당 장면을 삭제했다.

논란이 된 노라조의 《카레》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노라조 뮤직비디오 영상 캡처
논란이 된 노라조의 《카레》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노라조 뮤직비디오 영상 캡처

K팝에 적용되기 시작한 문화적 전유 논란

마마무도 논란에 휩싸였다. 콘서트에서 브루노 마스의 《업 타운 펑크》를 패러디한 공연을 했는데 얼굴의 검은 칠 때문에 ‘블랙 페이스’ 논란이 일었다. 블랙 페이스는 과거 미국에서 백인 배우가 흑인 역할을 하며 얼굴에 우스꽝스럽게 검은 분장을 했던 것으로 인종차별의 상징이다. 소속사는 차기 공연부터 해당 패러디를 삭제하겠다고 사과했고, 마마무 멤버들도 블랙 페이스를 사용한 점에 대해 사과했다.

아이즈원은 《환상동화》 뮤직비디오의 일부 장면을 수정하기도 했다. 이마에 보석을 착용한 권은비의 모습이 힌두교의 빈디 보석을 연상시킨다는 비판이 나왔기 때문이다. 결국 이마 보석을 삭제했다. 모모랜드가 여러 나라의 전통의상을 입고 등장한 《Baam》의 뮤직비디오도 일부 해외 팬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해외에선 문화적 전유(Cultural Appropriation)가 그전부터 논란이 돼 왔다. 문화적 전유란 ‘어느 한 문화집단이 다른 문화집단의 문화를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 특히 그 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 사용하는 것’을 뜻한다. 이 밖에 타 문화의 코드를 가져다 쓰면서 그 문화권의 사람을 배제하는 것 또는 차별적 의미를 담는 표현 등을 포괄적으로 가리키기도 한다. 다른 문화권의 자산을 자기 것처럼 쓰는 도용과 다른 인종에 대한 차별이 뒤섞인 모호한 개념이다.

해외에서 이런 논란이 커진 것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백하고 그 피해가 누적되어 왔기 때문이다. 백인들, 특히 미국 백인들이 타 인종을 멸시하거나 착취했었다. 흑인 및 소수인종이나 약소국 국민들이 이 문제를 점점 심각하게 인지하게 됐다. 요즘 소수자와 다양성, 정체성의 정치, 정치적 올바름(PC), 이런 것들이 화두가 되자 과거의 차별적 전통에 대해 강한 반발이 나타났다.

팝스타 케이티 페리가 공연장에서 기모노를 입고 등장하자 문화적 전유 논란이 일어났다. 케이티 페리의 《Dark Horse》 뮤직비디오에선 그가 고대 이집트 여왕 차림으로 등장했는데 옆에서 시중드는 남성이 이슬람을 상징하는 목걸이를 착용해 논란이 일었고 결국 사과했다. 에이브릴 라빈이 《헬로 키티》 뮤직비디오에서 일본식 표현을 차용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비욘세가 콜드플레이 뮤직비디오에 인도풍으로 등장한 것도 논란이 됐다.

콘서트에서 브루노 마스의 《업 타운 펑크》를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패러디한 마마무 ⓒ마마무 콘서트 영상 캡처
콘서트에서 브루노 마스의 《업 타운 펑크》를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패러디한 마마무 ⓒ마마무 콘서트 영상 캡처

맥락 다를 땐 적극 해명도 필요

2012년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에서 여성 모델이 인디언 깃털 모자를 썼는데, 인디언 사회에서 깃털 모자는 전사나 추장이 쓰는 것으로 원래 여성용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왔다. 구찌는 2018년 패션쇼에서 시크교도의 터번을 선보여 공분을 샀고, 샤넬은 2017년 샤넬 로고가 박힌 부메랑을 판매했다가 논란을 일으켰다. 이 밖에 대표적인 문화적 전유로 미국의 전통 뮤지컬인 민스트럴 쇼에서 백인이 흑인으로 분장한 블랙 페이스,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공대》의 미국 영화판에서 주인공이 백인으로 등장한 것과 같은 ‘화이트 워싱’ 등이 그동안 많은 비판을 받았다.

한국 관련 논란도 있었다. 미국 액션영화 《레모》에서 한국인 무술 사부가 냉장고에서 밥을 꺼내 먹는 기이한 인물로 등장했다. 영화 《야전병원 매쉬》에선 한국이 동남아 같은 모습으로 그려졌다. 《어벤져스》는 첨단 도시로 그리겠다며 서울에서 촬영했는데 막상 영화에선 후미진 뒷골목 이미지도 나왔다. 한국에 대한 존중이나 이해 없이 한국을 그저 이국적인 이미지의 소스로 가져다 쓴 사례들이다. 이런 논란에 대해 우리는 주로 미국을 비판하는 입장이었는데 우리가 논란의 대상이 되니 감회가 새롭다.

이는 K팝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과거엔 우리가 어떤 표현을 하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이젠 미국 문화처럼 국제적 관심과 비평의 대상이 됐다. 우리 입장에선 억울한 일이다. 미국은 초강대국으로 군림하며 다른 나라들을 차별했기 때문에 반발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우린 제국주의 열강에 침략당한 피해국이라서 서양과는 입장이 전혀 다르다.

마마무의 블랙 페이스 논란도 그렇다. 흑인 노예제와 민스트럴 쇼의 흑인 분장 문제는 미국 국내 이슈인데 그 논리를 한국 가수에게 그대로 적용하는 건 부당하다. 이것 자체가 서구 중심적인, 자신들의 문제를 절대시하며 다른 나라에 강요하는 고압적인 태도다. 욱일기는 용인하면서 한류스타가 나치 이미지와 연관되면 눈에 불을 켜고 공격하는 태도도 그렇다. 아시아인 차별엔 무신경하면서 한류스타에게 흑인 차별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내라고 요구한다.

따지고 보면 부당하지만 K팝 입장에선 따지기 어렵다. 판매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판매자에게 중요한 건 논리적 시시비비가 아니라 소비자의 마음이다. 판매자가 소비자의 마음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문화적 전유가 애매한 개념이고, 우리가 당하기엔 일부 부당한 측면도 있지만 어쨌든 소비자들이 문제라고 느낀다면 판매자가 주의해야 한다. 미국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문화상품을 팔기 때문에 조심할 사안을 학습해 왔다. 초강대국이라서 어느 정도는 비판을 무시하는 측면도 있다.

우리는 이런 일이 처음이기 때문에 아직 학습되지 않았다. 초강대국이 아니라서 무시할 수도 없다. 그러니 미국보다 더 조심해야 한다. 각 문화권별 금기들을 확인하고 업계가 공유해야 한다. 다만 마마무가 ‘블랙 페이스’를 인정하고 사과했는데, 이러면 낙인이 찍히기 때문에 이런 경우엔 미국의 블랙 페이스 맥락과 한국의 맥락은 전혀 다르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해명할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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