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사죄상’에 발끈하는 日…“한·일관계 결정적”
  • 이혜영 객원기자 (applekroop@naver.com)
  • 승인 2020.07.29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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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언론 ‘위안부에 사죄하는 아베 조형물’ 일제 보도
아사히 “찬·반 양분”…마이니치 “한·일관계 한층 악화 가능성”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한국자생식물원 내에 건립된 조형물 '영원한 속죄'의 모습 ⓒ 연합뉴스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한국자생식물원 내에 건립된 조형물 '영원한 속죄'의 모습 ⓒ 연합뉴스

이른바 '아베 사죄상'(작품명 영원한 속죄)이 일본 내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모습을 한 남성이 위안부 소녀상 앞에서 무릎 꿇고 머리 숙여 사죄하는 조형물에 일본 정부는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일본 주요 언론은 한·일 관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주요 일간지들은 29일 아베 사죄상이 강원도 평창에 있는 한국자생식물원에 설치된 점을 언급하며, 한·일 양국 간에 외교적 논란이 일고 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민간 시설인 한국자생식물원에 '영원한 속죄'라는 작품명으로 설치돼 내달 제막을 앞두고 있던 이 조형물은 지난 26일 국내 보도로 처음 알려졌다. 이후 일본 인터넷 매체들이 이를 인용해 보도하면서 일본 내에도 알려졌다.  

전날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기자회견에서 아베 사죄상에 대해 "(한 나라 행정 수반에 대해) 국제 예의상 허용되지 않는 일"이라고 밝히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스가 장관은 아베 사죄상이 한국에서 설치된 것이 사실이라면 한·일 관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아사히신문은 해당 사진을 곁들인 29일자 지면 기사에서 스가 장관의 전날 논평을 전하면서 김창렬 한국자생식물원 원장의 해명을 소개했다. 아사히는 김 원장이 "한국에 소녀상이 많지만 책임있는 (일본) 사람이 사죄하는 모습의 상을 만들면 더 좋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조형물 제작 배경을 설명했다면서 논란이 일고 나서 예정했던 제막식 취소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아사히는 이번 논란에 대해 한국 외교부 관계자가 "정부로서는 외국 지도자에 대한 국제적 예양(禮讓, 국가 간에 행하는 예의)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한국에선 '작게 만들어 전 국민이 갖게 해야 한다'는 주장과 '외교적 마찰을 초래해 한국을 우호적으로 생각하던 일본인까지 눈살을 찌푸리게 할 것'이라는 우려 목소리가 나오는 등 찬·반으로 의견이 갈리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도쿄신문은 일본 국민을 대표하는 지도자를 "모욕적"으로 표현한 것에 대해 일본 외무성 간부가 출입 기자단에 "기분좋은 얘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또 한 일본 정부 관계자는 "(아베) 총리뿐만 아니라 일본이 모욕당한 것과 같다"고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일본 내 최다 발행 부수를 자랑하는 요미우리신문은 "한국 인터넷상에서 '유치하다'거나 '대립을 부추길 뿐'이라는 비판이 잇따르면서 올 8월로 예정됐던 제막식이 취소됐지만, 조형물 자체는 자생식물원에서 공개된다"고 보도했다.

요미우리는 이와 함께 이 조형물이 아베 총리만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면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누군가에게 사죄받고 싶다는 개인적인 생각에서 설치했다. 정치적 의도는 전혀 없다"라고 한 김 원장의 발언을 덧붙였다.

마이니치신문은 나카야마 야스히데(中山泰秀) 자민당 외교부회장이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이상한 행위다. 민간 영역의 일이라고 하지만 간과할 수 없고, 한국 정부에도 관리 책임이 있을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면서 한·일 관계가 이번 논란으로 한층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일본의 주요 일간지 가운데 가장 먼저 전날 지면에 '아베 사죄상' 관련 기사를 게재했던 우익 성향의 산케이신문은 이날 스가 장관의 비판 발언 위주로 관련 내용을 소개했다. 산케이는 '국제 의례상 허용할 수 없다'는 스가 장관의 전날 발언은 역대 최저 수준으로 악화한 한·일 관계의 현주소를 상징하고 있다면서 이번 논란을 계기로 "모두가 한국이 지독한 나라라고 생각할 것"이라는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의 발언을 전했다.

논란이 커지자 김 원장은 "'아베 총리도 조형물의 남성처럼 사죄하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말한 것이 오해를 불러온 것 같다"며 "조형물은 정치적 의도가 전혀 없고 사회적인 문제가 되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일본 정부의 지적에 대해서는 "민간 식물원 앞마당에 내 돈으로 개인의 생각을 표현한 것을 간섭하는 것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며 "우리 정부에서도 (조형물 설치를) 간섭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문제는 과거에 머물지 않고 독도를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거나 무역 갈등을 일으키는 등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며 "때는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잘못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정중히 사죄한 뒤 새롭게 거듭나길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한국자생식물원 내에 건립된 조형물 '영원한 속죄'의 모습. 사비로 조형물을 제작한 김창렬 원장은 조형물 속 남성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특정한 것은 아니라고 28일 설명했다. ⓒ 연합뉴스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한국자생식물원 내에 건립된 조형물 '영원한 속죄'의 모습. 사비로 조형물을 제작한 김창렬 원장은 조형물 속 남성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특정한 것은 아니라고 28일 설명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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