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월세, 강제된 무소유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8.10 09:00
  • 호수 160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 여당 의원의 한마디 말이 멀쩡하던 마음을 아프게 후볐다. 달리 방도가 없어 월세살이를 해야 했던, 지금은 떠올리기조차 싫은 한 시절의 불편한 기억을 소환했기 때문이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 방송에 나와 “전세는 선(善)이고, 월세는 악(惡)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자신도 현재 월세살이를 하고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지만 더 이상의 돈도, 더 이상의 수단도 없어 월세를 마지못해 선택해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그가 진심으로 이해하고 있는지는 의심스럽기만 하다.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 때, 월세 세입자는 지상에 존재하는 여러 주거 형태 가운데 가장 밑바닥, 즉 최하층에 기거하는 사람이다. 매달 소득의 3분의 1이나 그 이상을 주거비용으로 내놓아야 하는 그들의 삶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앞으로 나아가기가 어렵다. 그래서 그들의 생활은 그냥 하루하루를 힘들게 버텨야 하는 ‘강제된 무소유’의 삶에 고정된다. 이렇게 어쩔 수 없이 월세살이를 하게 된 사람들의 처지에서 월세는 충분히 ‘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진의야 어떻든 그 의원의 억센 표현이 더는 밀려날 곳이 없는 ‘주거 약자’들의 마음을 다치게 했으리라는 점은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정부의 잇따른 부동산 대책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오르는 집값과 정작 규제로 인해 서민 실수요자도 내 집 마련이 어렵게 됐다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와 여당은 앞으로 종합 부동산 대책 마련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3일 오후 서울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강남구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정부의 잇따른 부동산 대책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오르는 집값과 정작 규제로 인해 서민 실수요자도 내 집 마련이 어렵게 됐다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와 여당은 앞으로 종합 부동산 대책 마련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3일 오후 서울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강남구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누구든 실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한다. 부동산은 특히 ‘심리’로 움직이는 시장이다. 정책 관련자나 정치인들의 말 한마디가 시장에 어떻게든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공감하기 힘든 언설로 시장의 화를 돋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런 마당에 여당의 지도부까지 기름을 끼얹고 나섰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당 최고위원회의 발언을 통해 “부동산 폭등을 초래한 원인 중 하나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간 누적된 부동산 부양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당의 한 의원도 “2014년 말 새누리당(현 통합당)이 주도해 통과시킨 부동산 3법, 이른바 ‘강남 특혜 3법’ 통과로 강남발(發) 집값 폭등은 시작됐다. 말이 부동산법이지 ‘강남 부자 돈벼락 안기기’였다”고 거들었다.

물론 여당의 입장에서 이전 정부의 잘못이 큰데도 현 정부만 정책 실패자로 찍혀 집중 공격을 받는 것이 억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야당 탓을 하며 현 상황을 얼버무리려 한다면 그것은 도리가 아니다. 남 탓을 하기에는 176석이라는 몸집이 너무 아깝고, 물색도 없다. 전임 정권에 잘못이 있었다면 그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이제라도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현 정부가 할 일이다. 스스로 당당하다면 이전 정부보다 나은 정책 능력을 현실에서 보여주면 된다. 탓만 하고 있다가는 더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다.

9주째 내림세를 이어가던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7월말 조사에서 지난 3월 이후 최저치인 44%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다음 조사에서 다소 반등하기 했지만, 하락세가 완전히 꺾였다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역시 7월말에 실시된 서울 지역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는 집권당인 민주당이 통합당에 상당한 폭으로 뒤지기까지 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가 한창이던 지난해 10월 이후 43주 만에 나타난 역전 현상이라고 한다.

여론이란 늘 유동적이고,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엎치락뒤치락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한 가지 이치는 있다. ‘추락하는 모든 것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