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것의 사주명리학 [최보기의 책보기]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thebex@hanmail.net)
  • 승인 2020.09.16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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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명리 인문학》ㅣ김동완 지음ㅣ행성B 펴냄ㅣ476쪽ㅣ2만2000원

‘태어날 때 정해진 운명을 타고 난다’는 사주팔자에 대해 어렸을 때부터 겪었던 이야기 중 몇 가지를 먼저 말해야겠다. 중학교 때 국어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점쟁이에게 갔는데 모월 모시에 죽을 것이란 점괘가 나왔다. 그날이 닥치자 그 사람은 방안에 앉아 꼼짝도 않고 하루가 가길 기다렸다. 그런데 마침 천둥이 치면서 천장에 매달아 두었던 물건이 떨어져 머리에 맞고 죽었다’고. 국어 선생님은 사람은 정해진 운명대로 살게 된다는 운명론자였다.

고등학교 때 역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점쟁이에게 가서 손금을 봤는데 재물선(財物線)이 짧아 가난하게 살겠다고 예언을 했다. 이 사람이 집에 돌아와 칼로 손바닥을 그어 재물선을 길게 연장시켰는데 나중에 큰 부자로 살았다’고 했다. 역사 선생님은 운명 개척론자셨다.

아주 옛날 같은 동네에 사는 심마니 세 명이 산삼을 캐러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높은 절벽 끝에서 자라는 거대한 산삼 두 뿌리를 발견했다. 두 명의 심마니는 각각 산삼 한 뿌리씩을 나눠 갖기 위해 다른 한 명을 절벽 아래로 밀어버렸다. 그런데 얼마 후 절벽 아래로 떨어졌던 남자가 큰 수레에 산삼을 가득 싣고 나타났다. 사연인즉 절벽으로 굴러 떨어지던 남자가 나무에 걸려 목숨을 건졌는데 그곳에는 수백 년 묵은 산삼이 무더기로 자라고 있었다. 남자는 산삼을 모두 캔 후 기다리다 절벽위로 타고 오르는 칡넝쿨 덕분에 살아 돌아와 큰 부자가 됐다. 화가 복이 되고, 복이 화가 되기도 한다는 중국의 고사 새옹지마(塞翁之馬)가 생각나는 이야기다.

고대 그리스 작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은 태어나자 마자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는다. 오이디푸스가 커서 아버지 라이오스 왕을 죽이고 왕비인 어머니 이오카스테를 아내로 삼을 것이라는 예언 때문이었다. 들판의 목동 덕분에 목숨을 건진 오이디푸스는 성장해 자기도 모르게 아버지를 죽이고 테베의 왕이 돼 어머니를 아내로 삼게 됐는데, 끝내 그 사실을 알게 돼 스스로 눈을 찔러 장님이 돼 들판을 헤매다 죽었다. 신에 의해 정해진 운명은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이 소포클레스의 메시지다.

이렇게 되면 사주팔자 운명론과 개척론 중 어느 쪽 말이 맞는지 가늠이 잘 되지 않는다. 여기서 국내 사주명리학의 대가로 알려진 김동완 교수의 《사주명리 인문학》을 읽고 내린 결론은 이렇다.

사주명리학은 ‘잘 맞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운명이 무엇인지, 절실하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것이다. 역학(易學)의 원리를 바탕으로 인간의 운명을 예지하고, 긍정적 기는 살려주고, 부정적인 것들은 막아주는, 인간의 삶을 분석하는 학문이다.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별의 아름다움보다 발을 딛고 선 현실세계의 아름다움을 볼 줄 알아야 사주명리학을 공부하는 의미가 있다.

《논어》의 <안연> 편에 애지욕기생(愛之慾基生)이 나오는데 ‘사랑이란 사랑하는 사람이 제 삶을 온전히 다 살도록 돕는 일이다’는 뜻이다. 사주명리학이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답을 주는 통찰이다. 혹시 주변에 사주명리학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람, 부적이나 복채로 유혹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현혹되지 말기 바란다. 운명학은 자신을 알아가는 많은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마치 산티아고 순례길를 걷고 또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의 내면에 이르러 깨달음을 얻는 것과 같은 이치다.

피흉추길(避凶趨吉 흉한 일을 피하고 좋은 일로 나아간다)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동양오술(東洋五術)이 있다. 명(命), 복(卜), 의(醫), 상(相), 산(山)이 그것인데 명은 타고난 운명, 복은 가까운 미래의 예측, 의는 운명의 극복, 상은 관상, 산은 풍수학이다. 《사주명리 인문학》은 동양오술은 물론 성명학, 점성술, 타로, 토정비결, 생활역학까지 ‘거의 모든’ 운명학에 관한 총론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보다 깊이 운명학을 공부하고 싶은 사람은 저자가 펴낸 분야별 전문서를 보거나, 유튜브나 대학에서 저자의 강의를 듣는 방법이 있다.

저자에 따르면 백범 김구 선생께서 《마의상서》를 읽으며 관상을 공부했는데 자신의 관상에 낙심하다가 ‘얼굴의 상이 제아무리 좋아도 몸(신체)이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는 구절을 보고 국가와 민족을 위한 삶을 선택하게 됐다고 한다. ‘신은 모든 인간이 공평하게 자신의 미래를 알 수 없게 했다’는 말이 맞다면 사주명리학은 미래를 ‘맞히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개척하는 학문이어야 함이 당연하다. 젊은 저자가 사주명리학에 뜻을 품고 역학자 박재완 선생 문하로 들어갔을 때 어느 날 선생께서 금고에서 초록 비단에 쌓인 고서를 꺼내시더니 “1년간 다른 일을 하지 말고 이 책만 보거라”고 하셨다. 그 책이 바로 《초씨역림(焦氏易林)》이라는 비서(秘書)였다고 전한다. 그때 스승의 말씀은 이러했다.

“초씨역림은 그 어떤 책보다도 신비한 책이니 함부로 타인에게 내용을 전하지 마라. 이 책은 혼란스러운 시대에 버팀목이 될 것이니 그때에 가서 세상에 내놓거라.”

시대의 사주명리학자 김동완은 ‘초씨역림’을 세상에 내 놓았는지, 아직 감추고 있는지 일개 서평가는 그것이 알고 싶다.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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