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 가는 검찰개혁” 경찰, 수사권 조정-자치경찰제 집단 반발
  • 조해수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20.09.24 14:00
  • 호수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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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개혁 역행” “졸속입법” 비판…‘수사 경과 반납 운동’ 등 집단행동 재현 가능성

검찰개혁과 ‘한 세트’라 할 수 있는 경찰개혁이 시작부터 흔들리고 있다. 경찰은 검경 수사권 조정(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 시행령이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를 과도하게 확대해 ‘수사는 경찰, 기소는 검찰’이라는 검찰개혁 취지에 역행하고 있다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자치경찰제 역시 ‘권한 분산’이라는 당초 취지와는 달리 국가경찰에 종속되는 일원화 체제로 변경되고, 현장 경찰관들의 의견수렴도 없이 추진되는 등 졸속입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수사권 조정 안 하느니만 못하다”

경찰 내 반발은 직장협의회(직협)와 온라인 커뮤니티 ‘폴네티앙’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각 지역 직협들이 앞다퉈 비판 성명을 발표하고, 전국 경찰서 곳곳에는 이와 관련된 플래카드가 우후죽순 걸리고 있다. 폴네티앙은 경찰관들의 서명을 받아 탄원서를 국회에 전달하고, 법무부에도 반대 의견서를 제출했다. 단체행동까지 예고되고 있다. 정학섭 폴네티앙 회장(부산북부서 경위)은 “경찰 내부망인 ‘폴넷’에는 검찰 개혁-경찰 개혁을 비판하는 글이 줄줄이 올라오고 있다. 한마디로 개혁이 ‘산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라면서 “검경 수사권 조정 시행령이나 자치경찰제 법안의 수정이 없다면 ‘수갑 반납’ 등 전국적인 집단행동까지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검경 수사권 조정 시행령의 입법예고 기간이 9월16일 종료됐다. 경찰은 △시행령의 해석과 개정의 주관부처를 행정안전부 없이 법무부만 단독으로 지정한 점 △검찰이 압수수색 영장만 있으면 모든 사건을 직접 수사할 수 있도록 한 점 △마약범죄와 사이버범죄를 경제, 대형참사 범죄로 분류해 검찰의 직접수사가 가능하도록 한 점 등을 문제 삼았다.

경찰은 이를 수정하기 위해 총력전을 벌였지만 결국 헛수고에 그쳤다. 시행령은 이제 법제처 심사, 차관회의, 국무회의 등의 절차를 남겨두고 있다. 김창룡 경찰청장 등 수뇌부는 이 과정에서 시행령 수정을 계속 요구할 방침이지만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일선 경찰관들의 반발은 예사롭지 않다. 다음은 경찰 내부망에 올라온 ‘검찰 개혁, 수사권 조정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글 중 일부다.

“이런 식(시행령)이라면 사실상 거의 모든 범죄가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에 포함된다. 검찰이 마음만 먹으면 6대 범죄(부패범죄, 경제범죄, 공직자범죄, 선거범죄, 방위사업범죄, 대형참사범죄)를 수사한다는 명분으로 다른 범죄와 직간접 연관성을 들어 얼마든지 별건수사도 가능하다. 잠정안(시행령)대로라면 현재의 경찰과 검찰 수사의 현실도 명문화하지 못했다. 검찰 개혁이 산으로 가고 있다.”

시행령은 내년 1월1일부터 시행된다. 경찰로서는 3개월여의 시간만 남아 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경찰이 2011년 검경 수사권 조정 당시처럼 집단행동에 나설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당시 경찰은 내사까지 검찰의 수사지휘를 받도록 한 시행령에 반발해 수사 경찰직을 포기하는 ‘수사 경과(분과) 반납 운동’을 펼쳤다. 이 집단행동에는 전국 경과자의 약 90%가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사회도 경찰 손을 들어주고 있다. 참여연대는 “검경 수사권 조정 시행령은 기존에 검찰이 직접 수사해 온 범죄 대부분을 포함한다. 마약범죄를 경제범죄의 하나로, 사이버 테러범죄를 대형참사 범죄의 하나로 포함시키는 등의 내용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여러 비판이 나오는 사안에 대해 법무부가 제대로 된 의견수렴이나 협의 과정 없이 독단적으로 입법을 진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자치경찰, 주차단속원으로 전락할 것”

자치경찰제는 더 큰 문제다.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8월4일 ‘경찰법 전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에는 기존에 논의됐던 별도 자치경찰 신설 대신, 국가경찰 내에 자치경찰을 두고 사무만 분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처럼 일원화된 자치경찰제를 두고 경찰 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관 9285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한 결과, 자치경찰 도입 반대 의견은 86.3%였다. 도입 찬성 의견은 8%에 불과했다. 또한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자치경찰제 모델’은 64.8%가 이원화라고 답했으며, 일원화 모델은 13.6%였다.

경찰관들은 자치경찰이 주차단속원이나 경비 역할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걱정하고 있다. 경찰청 자치경찰추진단의 현장 의렴수렴(8975건) 결과, 지방자치단체의 사무 전가로 인한 ‘긴급신고 대응력 약화 우려’ 등 과도한 업무에 대한 내용이 34.1%로 가장 많았다.(표 참조) 김영배 의원의 법안에 따르면, 본래 지자체에서 주로 맡았던 노숙인 보호조치 관련 업무, 공공청사 경비, 지역축제 행사 교통 및 안전관리 등을 자치경찰이 맡도록 했다. 또한 ‘자치경찰 사무에 관한 구체적인 상황과 범위를 시·도 조례로 정한다’는 조항까지 있어 자치경찰의 업무 범위가 더 늘어날 여지도 있다.

정학섭 폴네티앙 회장은 “70년 넘게 유지해 온 국가경찰제를 자치경찰제로 바꾸는 중차대한 조직 변화에 대해, 12만 경찰관들의 의견수렴 없이 정치권에서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 경찰관들의 서명이 담긴 탄원서를 김영배 의원실에 전달했다”면서 “충분한 기간 동안 시범실시를 통해 문제점을 찾고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함에도 당장 내년 1월1일부터 시행하도록 했다. 시행 과정에서많은 혼란이 일어날 우려가 있으며 그 피해는 결국 국민들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치경찰제 일원화 관련 경찰관 서명부

“실효적 자치경찰제, 검찰 개혁 필수조건”

자치경찰제는 경찰권 비대화를 막기 위한 권한 분산 측면에서 추진됐다. 2018년 6월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 주도로 발표된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에는 “검경 수사권 조정을 자치경찰제와 함께 추진하기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 이행계획에도 ‘실효적인 자치경찰제 도입’이라고 나와 있다. 실효적 자치경찰제는 국가경찰의 권한·인력·예산 등을 자치경찰로 이전·전환하고, 자치경찰은 국가경찰과 대등한 지위에서 치안의 주체로 일반적 수사권 등 충분한 권한을 보유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자치경찰을 통한 경찰 권한의 분산 없이는 검찰 개혁은 완성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치경찰의 국가경찰로부터의 분리는 어느새 ‘일원화’로 바뀌었다. 이와 관련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일원화 모델에서의 자치경찰은 신분이 국가직으로 소속 시·도경찰청과 경찰서의 지휘를 받는다. 경찰 전체가 국가경찰 소속이고, 국가경찰의 지휘를 받도록 돼 있다”면서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른 경찰권의 비대화에 대한걱정이 높은 상황에서 자치경찰제의 후퇴는 경찰 권력 비대화로 이어질 우려가 높다. (이는) 권력기관 권한 분산이라는 경찰 개혁 방향과 배치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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