쇳조각 삼킨 아프리카 아이 한국 의사가 살렸다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20.09.29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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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살 남수단 여아 이역만리 한국에서 수술로 새 생명 찾아 

아프리카 남수단에 사는 4살짜리 여아 글로리아는 지난해 7월 가슴 통증을 호소했다. 인근 병원에서 X선 검사를 받아보니 아이 가슴에 쇳조각이 있었다. 수술이 필요했지만 남수단에서는 수술할만한 병원이 없었다.  이 소식을 들은 이웃들은 경제 사정이 좋지 못한 글로리아 가족을 위해 십시일반 돈을 모았다. 약 2000달러를 손에 쥔 아버지 톰베 간디씨는 이웃 나라인 수단에서 글로리아의 수술을 진행했으나 실패했다. 수술과 입원비로 쓰고 남은 돈은 200달러. 다시 버스로 이틀을 달려 이집트 병원에 도착했다. 그러나 쇳조각이 식도를 뚫고 나와 수술이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수술비도 없었다. 

간디씨는 알음알음으로 한국인 선교사를 찾았다. 선교사를 통해 글로리아의 소식은 우리나라 세브란스병원에까지 전달됐다. 세브란스병원은 수술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글로리아 가족에게 보냈다. 그러나 코로나19 유행으로 이집트 공항이 폐쇄됐다. 다행히 글로리아의 소식을 접한 주이집트 한국대사관과 한인회가 전세기를 마련해 글로리아 가족은 지난 5월5일 한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세브란스병원=(뒷줄부터 시계방향으로) 박성용 흉부외과 교수, 김경원 소아호흡기알레르기과 교수, 글로리아, 간디씨
ⓒ세브란스병원=(뒷줄부터 시계방향으로) 박성용 흉부외과 교수, 김경원 소아호흡기알레르기과 교수, 글로리아, 간디씨

 

세브란스병원 흉부외과가 글로리아의 상태를 검사한 결과, 쇳조각은 식도를 뚫고 기관지를 밀고 들어가 자칫 대동맥 파열로 이어질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1년 가까이 쇳조각이 몸 안에 있었기에 쇳조각 주변의 염증도 심했다. 이 때문에 글로리아는 호흡이 어려웠고 식사도 불가능한 상태였다.

박성용 세브란스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영상의학과, 소아호흡기알레르기과, 소아외과, 소아심장혈관외과 등과의 협진을 통해 글로리아의 상태를 파악하고 수술 계획을 세웠다. 다행스럽게 수술로 쇳조각을 제거했다. 그 쇳조각은 나사나 볼트를 조일 때 사용하는 와셔(washer)로 100원짜리 동전만 한 2.5cm 크기였다. 

수술 후 염증도 줄어들었고 호흡에도 무리가 없었다. 쇠붙이를 제거한 부위도 잘 아물었다. 그러나 식도와 기관지 사이의 구멍은 오랫동안 손상된 조직이라 완전히 아물지 않아 1mm 크기로 남아있었다. 이 때문에 음식물이 기관지로 넘어가서 글로리아는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의료진은 1mm짜리 구멍을 봉합하기 위한 2차 수술을 진행했다. 2주간의 회복 기간을 거쳐 글로리아는 정상적으로 호흡하고 식사도 가능하게 됐다. 박 교수는 “글로리아가 힘든 수술을 견디고 건강을 되찾았다. 수술을 집도한 의사로서 보람을 느낀다. 글로리아를 치료하기 위한 아버지의 노력과 글로리아를 위해 함께 치료 방침을 상의하고 헌신적으로 치료한 의료진 공동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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