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가 된 OTT, 빅뱅이 시작됐다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0.10.27 14:00
  • 호수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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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 없는 것, 여기에 있다
넷플릭스 틈새 파고드는 토종 OTT의 차별점

“찻잔 속 태풍이 될 것”이라던 전망은 틀렸다. 국내에 상륙할 때 달렸던, 성공에 대한 물음표는 일찌감치 뗐다. 국내 유료방송 시장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 채 사그라질 것이라던 넷플릭스는 돌풍이 돼 OTT(Over The Top·온라인동영상서비스) 시장 판도를 뒤흔들고 콘텐츠 생태계까지 바꾸고 있다. 넷플릭스가 구성한 콘텐츠 왕국은 독보적이다. 그러나 독점은 아니다. OTT가 TV를 밀어내고 주류 플랫폼 자리에 올라선 지금, 그리고 넷플릭스가 OTT의 가능성을 입증해 낸 지금, OTT 빅뱅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국내 OTT 업체들은 넷플릭스의 성공을 견인한 핵심 키와 자체적인 장점이라는 카드를 동시에 쥐고 콘텐츠 전쟁에 발을 들였다.

정해진 요금을 내고 영화, 예능, 다큐 등 다양한 장르의 영상 콘텐츠를 즐긴다. 시간과 공간에 제한 없이 콘텐츠 이용이 가능하다. 선호하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업체를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다수의 인원이 ‘공식적으로’ 한 계정을 이용할 수도 있다. 이런 OTT의 장점들이 대중의 취향을 저격했다. 그 덕에 시장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국내 시장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올해 한국 OTT 시장 규모가 7801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미 시청자들이 TV보다 OTT를 선호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지난달 SKT가 내놓은 조사 결과에 따르면 베이비붐 세대(55~69세)를 제외한 모든 연령층에서 TV 대신 OTT를 선호했다.

OTT 시장을 본격적으로 연 것은 넷플릭스였다. 넷플릭스는 2016년 한국에 상륙했다. 한국은 외국에 비해 유료방송 가격이 낮은 편이었기 때문에, 진입 초기 넷플릭스는 한국 이용자들에게 크게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콘텐츠의 양도 많지 않았고, 드라마 수급도 원활하지 않았다. 그러나 넷플릭스는 꾸준히 자신들의 전략을 펼치며 사세를 넓혀 나갔다. 먼저 집중한 것은 오리지널 콘텐츠(해당 플랫폼에서만 시청할 수 있는 독점 콘텐츠)다. 거대 자본을 기반으로 국내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나선 넷플릭스는 《옥자》를 내놓으면서 대대적인 주목을 받았고, 뒤이어 한국형 좀비물 《킹덤》으로 흥행몰이를 했다. 《킹덤》을 보기 위해 넷플릭스를 구독하는 사람이 늘어났으니, 넷플릭스가 한국에서 성공한 동력 중 하나는 ‘오리지널 콘텐츠의 힘’인 셈이다. 넷플릭스는 지난해에만 150억 달러(약 18조원)를 콘텐츠 투자에 쏟았다.

로컬 콘텐츠에 집중하는 이유

넷플릭스는 일명 ‘콘텐츠 왕국’을 열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독식 구조가 그려지지 않은 데는, 다른 OTT 플랫폼에 대한 선호도 꾸준히 이어지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를 살펴봐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10월22일 기준 넷플릭스의 한국 TOP10 콘텐츠 분야에서 《청춘기록》 《스타트업》 《아는 형님》이 1~3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 드라마인 《에밀리, 파리에 가다》만이 5위권 안에 들어 있을 뿐,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한국 드라마와 예능이다. 넷플릭스를 구성하는 수많은 콘텐츠 중에서도 국내 이용자들이 선택하는 콘텐츠는 토종 콘텐츠라는 것이다. 국내 동영상 OTT 이용자들이 국내 콘텐츠를 더 선호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2019년 조사에 따르면 국내 OTT 플랫폼 등에서 국내 콘텐츠를 이용하는 비중은 티빙 87.5%, 푹 79.3%, 옥수수 98.2%, 유튜브 96.8% 등으로 나타났다.

지상파 3사의 푹과 SK브로드밴드의 옥수수를 합쳐 만들어진 국내 2위 OTT 플랫폼 웨이브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로컬 콘텐츠 확보를 핵심적인 전략으로 삼는다. 이태현 웨이브 대표는 “웨이브의 자본력이 글로벌 OTT보다는 부족하지만, 이용자들이 원하는 양질의 로컬 콘텐츠를 많이 제공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지상파 3사가 소유한 콘텐츠 라이브러리는 웨이브의 강점이다. 그럼에도 이미 오리지널 콘텐츠로 성공의 맛을 본 넷플릭스의 선례가 존재하기 때문에 오리지널 콘텐츠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끊임없이 부각된다. 웨이브는 올해 《꼰대인턴》 《SF8》 등을 비롯해 드라마 7편, 《레벨업 아슬한 프로젝트》 등 예능 4편, 콘서트 1편 등 12편의 시리즈를 내놨다.

토종 콘텐츠 확보 측면에서 비슷한 장점을 보이는 곳은 티빙이다. 티빙은 국내 인기 드라마와 예능을 다수 확보하고 있다. ‘넷플릭스에는 없는 것’이 다른 OTT의 장점이 되는 지금이기에, 최근 국내 대표 콘텐츠 강자로 자리매김한 CJ ENM과 JTBC의 간판 예능과 드라마는 이용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충분한 요소가 된다. 이 외에도 티빙은 ‘넷플릭스에 없는 영화’ 코너를 통해 《라라랜드》 《1917》 등 영화를 공개하고, 부산국제영화제를 기념해 국제영화제 수상작을 소개하며 이용자들과의 거리를 좁히고 있다.

국내 OTT 활성화를 위해 제안되는 것 중 하나는 IP 활용이다. 디즈니가 세계 최대의 콘텐츠 회사가 된 원동력이 양질의 IP 다수 확보인 것처럼, 국내 회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IP를 확보해 콘텐츠화한다면 그 저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대규 현대HCN 정책연구원은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기고를 통해 “지상파와 CJ ENM 등이 보유하고 있는 IP가 상당한 편이다. 이를 이용해 자사 OTT 오리지널 콘텐츠로 제작하는 시도를 할 필요가 있다”며 “과거에 인기였던 IP나 최근 떠오르는 IP를 이용해 스핀오프 시리즈를 만드는 방법, 인기 시트콤을 현대판으로 구성하는 방식으로 IP를 활용하는 방법 등이 있다”고 조언했다.

 

빅데이터를 활용해 콘텐츠 ‘픽’

스타트업으로 출발한 왓챠는 미드의 제왕이라고 불리는 미국 HBO의 인기 드라마 《왕좌의 게임》과 《체르노빌》, 박찬욱 감독의 《리틀 드러머 걸》 등 ‘킬러 콘텐츠’를 확보해 구독자를 늘렸다. 왓챠는 구독자를 불러들일 수 있는 콘텐츠 ‘확보’뿐 아니라, 콘텐츠를 ‘추천’하는 데 그 저력이 있다. 왓챠는 이용자들의 소비 패턴에 주목해 콘텐츠를 확보한다. 많은 대중이 지나간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 집중한다는 사실에 착안해 국내외 다양한 콘텐츠 제작사들이 보유한 과거 콘텐츠들을 확보하는 데 집중했다.

최대 장점은 빅데이터를 활용한 추천 알고리즘이다. “넷플릭스에서 뭘 볼지 찾는 데 1시간이 걸린다”는 우스갯소리처럼, 많은 콘텐츠의 범람 속에서 고민하는 소비자들을 위해 넷플릭스보다 정확한 ‘취향 분석’을 들이밀었다. 넷플릭스의 콘텐츠를 개인별로 추천해 주는 맞춤형 서비스 ‘왓플릭스’를 왓챠가 선보인 것도 일종의 자신감 표현이다. 이용자 데이터를 분석해 알맞은 콘텐츠를 추천하고, 이용자들이 원하는 콘텐츠를 들여와 고객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왓챠의 전략이다. 의사 결정권자가 고르는 콘텐츠가 아니라, 보는 이들이 원하는 콘텐츠를 선점한다는 것을 경쟁력으로 삼았다.

왓챠는 해외 진출을 선언하면서 글로벌 OTT로의 도약을 시작했다. 9월16일 일본에서 정식 서비스를 오픈했다. 국내 OTT 플랫폼 중 정식으로 해외 서비스를 시작한 첫 사례다. 일본 정식 출시에 앞서 진행한 베타테스트에 참여한 이용자 중 92.3%가 왓챠를 통해 처음 발견한 작품을 보고 만족했고, 80.5%는 왓챠의 예상 별점이 정확하다고 응답했다. 추천 알고리즘과 빅데이터가 기반이 된 왓챠만의 장점을 증명하는 지점이다.

대세는 모바일…새로운 형태로 진화하는 OTT

새로운 게임체인저인 카카오TV의 등장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카카오는 OTT가 서비스되는 온라인 생태계의 리더나 다름없다. 음악, 엔터테인먼트, 웹툰 등 각종 콘텐츠 사업에서 생태계를 넓혀오던 카카오는 9월1일 OTT 플랫폼 카카오TV를 출시했다. 출시와 함께 레진코믹스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아만자》, 네이버 웹툰을 기반으로 한 《연애혁명》, 이경규와 권해봄(모르모트) PD가 출시한 《찐경규》 등 드라마 2편과 예능 5편을 내놨다. 외부 콘텐츠를 들이기보다는 오리지널 콘텐츠로 카카오TV를 운영할 계획이다. 다수의 연예 매니지먼트와 영화·제작사를 자회사로 두고 있다는 점도 카카오TV의 성장을 뒷받침한다.

기존 OTT와의 차별점은 분명하다. 기존 OTT와 달리 10~20분 내외로 구성된 ‘숏폼’ 콘텐츠를 주로 제공한다. 카카오톡의 샵(#) 탭에 있는 카카오TV 항목으로 들어가 이용할 수 있는 간편한 이용 방식도 다르다. “모바일로도 볼 수 있는 콘텐츠가 아닌, 모바일로 보기 때문에 더욱 재미있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선보이겠다”는 신종수 카카오M 디지털콘텐츠사업본부장의 말처럼, 모바일 유저에 최적화됐다는 점이 카카오TV의 최대 장점이다. 다른 앱을 깔 필요도, 다른 기기를 활용할 필요도 없이 모든 것이 카카오톡 안에서 이뤄진다. 웹툰과 웹소설 등 카카오가 확보한 작품이 많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지금까지 확보한 작품 수는 7000여 편에 이른다. 자체 IP를 통해 제작된 《미생》 《이태원 클라쓰》 등 작품의 흥행을 보더라도, 앞으로 카카오가 보유한 작품들의 콘텐츠화가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는 평이 나온다. 기획과 제작, 유통을 아우르고 있는 전례 없는 모바일 주력 플랫폼인 셈이다.

결국 글로벌 공룡 OTT와 토종 OTT의 공존은 가능할 것인가. 넷플릭스는 이렇게 말한다. “각 업체가 서로 다른 매력과 가격 경쟁력을 갖춘 콘텐츠를 가지고 있다면 소비자는 다수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할 것이다.” 넷플릭스를 창업한 리드 헤이스팅스 최고경영자(CEO)의 말처럼, OTT 시장은 여전히 많은 기업에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신은정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웨이브는 넷플릭스와 다른 성격의 OTT로서 국내 콘텐츠 및 차별화된 오리지널 콘텐츠 제공을 통해 세계적 OTT와 경쟁하기보다는 같이 성장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박태훈 왓챠 대표 역시 OTT 시장은 승자독식이 불가능한 구조로 돼 있다고 본다. 향후 OTT 시장은 가구당 3~5개 OTT를 구독하는 형태로 발전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넷플릭스에 비해 성장세는 약하지만 국내 OTT들도 각자의 사세를 넓혀가는 과정에 있고, 각 플랫폼의 장점을 내보이면서 이용자들을 공략하고 있다.

이상원 경희대 미디어학과 교수는 저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과 동영상 OTT 산업》을 통해 “국내 미디어 사업자들이 제공하는 동영상 OTT 플랫폼은 한국인이 선호하는 국내 콘텐츠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 독점적이고도 차별화된 프리미엄 킬러 콘텐츠를 제공하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며 “이와 함께 OTT 이용자의 이용 행태에 대한 빅데이터를 면밀하게 분석한 후 이를 기반으로 콘텐츠 제작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OTT 부흥의 핵심은 콘텐츠이기에, 여전히 강조되는 것은 콘텐츠에 대한 투자다. 국내 OTT가 오리지널 콘텐츠를 위한 투자를 시작하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웨이브는 2023년까지 3000억원 이상을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고, 왓챠 역시 오리지널 드라마를 새로운 승부수로 띄운다. 이르면 내년 출시를 목표로 인력을 충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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