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대통령은 어디 있나
  • 소종섭 편집국장 (jongseop1@naver.com)
  • 승인 2020.11.02 09:00
  • 호수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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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입가경(漸入佳境)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단어 뜻을 살펴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하는 짓이나 몰골이 더욱 꼴불견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렇게 나옵니다. 원래는 들어갈수록 경치가 점점 재미있다는 뜻이었는데 요즘에는 변형된 의미로 더 많이 쓰이는 듯합니다. 느닷없이 사자성어를 떠올린 것은 지난 국정감사를 보면서입니다. 21대 국회 들어 처음 한 국정감사인데 의미 있는 정책 논쟁은 기억나는 게 없습니다. 목소리 컸던 야권도 권력형 비리 의혹 등과 관련해 새로운 것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날 선 공방만 떠오릅니다.

10월22일 오후 추미애 법무부 장관(왼쪽)이 외출을 위해 경기도 정부 과천청사 내 법무부 청사를 빠져나가고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 국정 감사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10월22일 오후 추미애 법무부 장관(왼쪽)이 외출을 위해 경기도 정부 과천청사 내 법무부 청사를 빠져나가고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 국정 감사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 장관과 윤 총장의 갈등이 어제오늘 일은 아닙니다. 추 장관이 취임한 것이 올 1월3일이니 벌써 10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인사를 통해 윤 총장과 측근들을 떼어놓았습니다. 수사지휘권을 두 번 발동하기도 했습니다. 장모 등 친인척 관련 수사를 통한 압박도 가시화했습니다. 급기야 윤 총장에 대한 감찰 카드까지 꺼내 들었습니다. 과거 같으면 총장이 사퇴했어도 몇 번 했을 일들입니다. 그런데 윤 총장은 “임기를 마치겠다”며 지방 검찰청 순회에 나섰습니다. 윤 총장은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다며 임기를 마치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할 검찰 개혁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추 장관이 쓸 수 있는 카드는 거의 썼습니다. 그런데도 윤 총장이 계속 버티니 추 장관도 답답할 것입니다. 한 번 칼을 뺐으면 상대를 베거나 치명타를 입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모양이 좀 그렇습니다. 권위가 손상됐다고나 할까요. 어느 한쪽도 쉽게 물러설 수 없으니 결국은 양쪽의 버티기 싸움이 계속될 가능성이 큽니다. 지난 호 커버스토리 제목처럼 이것은 ‘승자 없는 싸움’입니다. 검찰 개혁을 소리 높이 외치는 추 장관은 ‘검찰 장악’ 선봉장처럼 비칩니다. 부당하다고 강조하는 윤 총장은 ‘검찰 지킴이’ 이미지가 굳어집니다. 갈등만 부각되는 와중에 검찰 개혁의 본질인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와 관련한 논의는 사라졌습니다.

문제는 두 사람이 모두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두 사람의 갈등은 여야의 싸움이 아닙니다. 크게 보면 여권 내 갈등입니다. 야권에서 이 틈을 적극 활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 임명장을 준 문 대통령은 갈등 국면에서 보이지 않습니다. 10개월 갈등이 이어지는 동안 이와 관련한 문 대통령의 명확한 메시지는 나온 것이 없습니다. 두 사람의 끝 모를 갈등을 지켜보는 국민도 지쳤습니다. 코로나19 등으로 삶이 팍팍한데 잊을 만하면 갈등이 불거지니 ‘나라가 왜 이래!’ 소리가 나옵니다. 이제는 어떤 식이든 정리가 필요합니다. 둘 다 자리를 지키면서 할 일을 하라고 하는 방법, 둘 중 한 사람을 바꾸는 방법, 둘 다 바꾸는 방법 중 선택해야 합니다. 또 다른 방법이 있다면 그것도 고려하면 됩니다. 어쨌든 두 사람에게 임명장을 준 문 대통령이 이 문제에 대해 이제는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나라를 위해서나 국민을 위해서나 그게 맞는 길입니다. 소모전이 너무 길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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